개인의 私的 이익 양보하고 公共善 추구하는 게 共和인데
계파 싸움만 일삼는 여당과 정부 발목만 잡는
야당은 公黨을 참칭하는 私黨…
공화에 역점 둔 교육으로 민주공화국 시민 양성해야
헌법 제1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민주(民主)'는 확실한데 '공화국(共和國)'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987년 이후 우리는 민주화의 가도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지만 '공화'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제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덜 나쁜' 제도이기 때문에 채택되고 있을 뿐이다. 서양 정치사상에는 플라톤에서 토크빌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공화'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중우(衆愚)정치로 타락할 수 있음을 역사는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기상천외의 키메라(서로 다른 생물들이 한 개체에 공존하는 괴물)가 공화국의 이미지를 더럽히고 있지만 공화국은 실상 매우 훌륭한 개념이다. 그 말은 카이사르의 독재에 맞서 로마 공화국을 지키려 했던 키케로가 국가를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고 정의한 데서 유래한다. 공화주의란 미덕을 갖춘 시민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양보'하여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로 흐르기 십상이다. 공화주의에서 공공선(公共善)을 생각하는 것은 그래야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도 더욱 증진되기 때문이다. 그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공화국 시민들은 일정한 법체계에 동의하며 교육을 통해 시민적 자질을 배우고 토론을 통해 무엇이 공익(公益)인가에 합의하는 과정을 갖는다. 그와 같은 제도가 정착되어 있을 때 그 정체(政體)가 무엇이든 진정한 공화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영국은 비록 입헌군주국이지만 공화주의를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는 아직 공화국에 도달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지난번 신공항 선정에서 드러났듯이 지역 주민들과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국적 안목을 갖추어야 할 중앙의 정치인들조차 사적(私的) 이해관계에 똬리를 틀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과학비즈니스벨트나 LH 이전을 두고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대학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구화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소양을 갖춘 학생들을 배출해 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학부제가 삐걱거리고 있다. 교수들이 자기 학문의 자리 지키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公)을 중시하지 않는 풍토는 적어도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공에 대한 엄격한 성리학적 도덕률이 있었지만 문제는 공을 구성하는 가치들이 상호 충돌할 때 드러났다. 부모에 대한 효(孝)와 임금에 대한 충(忠)이 우선순위를 다투는 갈등이 발생하면 충이 효에 밀렸던 것이다. 1908년 일본 침략에 저항하던 의병대장 이인영이 서울로 진격하다가 부친의 운명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졌다"며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효가 충에 우선하는 사회규범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문 단위로 행동하게 마련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조선의 지배층에게는 공인(公人)의 의무보다 가족과 가문에 대한 관심이 우선한다고 관찰했다.
오늘날도 100여 년 전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들이 과연 공당(公黨)일까. 그저 공을 참칭하는 사당(私黨)으로만 보인다. 공당이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에서는 당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협조해야 마땅하다. 한나라당 내 계파 싸움은 붕당(朋黨) 수준보다도 못하다. 민주당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국익에 합당하건 아니건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야당이 여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목적은 오로지 정부의 성공을 방해하기 위한 공격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 점에서는 과거 정권 때 한나라당도 다를 바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들은 정부를 도와 나라가 잘되게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정부·여당을 곤란하게 만들어 다음 선거에서 집권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쏟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은 국민대로 사적이고 단기적인 판단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이 진정 공공선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신중한 고민보다는 당장 내 호주머니 돈이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공화에 역점을 둔 교육을 통해 민주공화국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 사적 이익과 공익을 지혜롭게 조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개인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명분이 된다. 늦었지만 시민적 자질에 대해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북쪽의 사이비 공화국을 추종하는 어리석은 세력의 재생산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