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신뢰받는 국가
<경기일보 시론 5. 24. 게재> 이영해 한양대 교수, (사)21세기분당포럼 이사장
최근 부실 저축은행 사건, 대형 국책사업에 의한 갈등, 법조계 전관예우 문제, 정부 인사 등을 접하면서 국민들에게 국가의 신뢰가 상당히 떨어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특임장관실이 지난 2·4월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받고 있는 집단이 어디냐”는 질문에 불과 국회 2.9%, 청와대 3.4%, 검찰·법원 8.1%, 공무원10.2% 라는 답변이 나왔다.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약 97%나 된다는 것이다.
정부나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시적인 감정의 표현도 아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구조적인 불신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가 급속한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투명성보다는 인맥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고 목적달성에만 집착한 결과 소통보다는 상호 불신의 사회를 만든 것이다. 또한 상당수 경제인들과 정치인들의 부정직성 및 언행의 불일치, 권력 남용, 금권정치 등이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와 기업을 불신하는 데 일조했다.
각종 비리로 국가 신뢰 하락
최근 발생한 부실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직전 예금인출 사태 과정에서 드러난 대주주 및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 감독기관의 문제 등은 신뢰를 바탕으로 은행을 이용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놓고 사는 꼴이 됐다.
민주화의 진전과 정보시스템의 발달로 사회가 예전보다 투명해지고, 경제 환경이 상호의존적으로 바뀌면서 신뢰는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으며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이 국민, 소비자, 주주, 직원 등 구성원과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되는 시대가 됐다.
신뢰는 사람 사이에 있어서도 중요한 덕목이지만 정부와 국민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중요한 가치이다. 국가시스템에서 신뢰가 구축되지 못하면 국민들의 불신으로 좋은 정책들이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국민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돼야만 잘 작동되는 훌륭한 제도이다.
공자는 ‘어떻게 해야 정치를 잘 하는 것인가’ 하는 자공의 물음에 백성들의 먹는 문제를 넉넉하게 해결해 주고, 외부 침략에 대비한 병력을 튼튼하게 갖추고, 그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신뢰’를 들었다.
리더십 전문가인 스티븐 코비 박사는 “신뢰의 수준이 올라가면 발전 속도는 올라가고, 비용은 내려간다”고 했다. 신뢰를 얻으면 경제적, 사회 발전 속도는 증가하고 비용은 줄어드는 반면, 신뢰를 잃으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고 사회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신뢰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가 깨지는 것은 순간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뢰의 기본이다. 약속을 어기면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부가 국책사업 공약을 번복할 때 해당 사업의 경제성 관점에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숨겨진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불신과의 전쟁’ 선포해야
신뢰의 기초는 ‘상생’의 정신에 있다. 서로 존중하는 정신, 더불어 사는 정신, 솔선수범과 희생의 리더십이 없을 때 그 사회에서는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상생과 동반성장을 위한 노력과 정책 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행이라는 말로 부정에 눈감는 일도 없어야 한다.
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국민은 구호만 요란했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 정부도, 국회도, 법조계도, 기업도 국민의 신뢰 없이는 지속적인 존속과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정부와 사회 지도층은 지금부터라도 ‘불신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신뢰를 되찾는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신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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