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찌무라 간조 선생은 당시에 일본이 조선을 강제합병하고 만주에 이어 중국까지 침략하던 때에 반전운동, 평화운동을 펼쳐 극도의 어려움을 당하였다. 일본군이 전쟁 초기에 연전연승하는 전황이 보도되자 일본 국민들은 모두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분위기에 맞지 않게 비판을 가하였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였다.
“일본이 아세아 평화에 기여하여야 나라의 장래가 있다. 지금처럼 서구제국주의 흉내를 내어 이웃 나라들에 대한 침략전쟁을 계속한다면 가미사마(하나님)께서 일본하늘에 불벼락을 떨어뜨릴 것이다.”
참으로 탁월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가는 곳마다 전승(戰勝) 분위기에 들떠 있던 때에 전쟁을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용기다. 당연히 그는 세인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비국민(非國民)으로 매도하였다. 일본사회에서 비국민이란 말은 매국노(賣國奴)에 해당하는 말이다. 직장에서 추방당하고 일본 사회 어느 곳에도 발붙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초지일관되게 소신을 펼쳤다.
결과로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되자 『성서연구』란 제목의 잡지를 발간하며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였다. 동경의 자기 집 6평 짜리 방에서였다. 그는 ‘일본이 성서 위에’ 세워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성서로 청년들의 혼을 깨우쳐 성서의 진리 위에 신일본을 건설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전후에 그의 성서연구반 출신들이 새로운 일본을 세워나감에 큰 기둥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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