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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선생 ⑤

鶴山 徐 仁 2010. 4. 18. 18:53

 
   
   
  서정후 님께 드립니다.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선생 ⑤

우찌무라 간조 선생이 비국민(非國民)으로 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자신의 집 여섯평 다다미 방에서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전심을 기울였다.  “일본을 성서위에 세우겠다”는 일념을 품고 성경으로 젊은이들의 혼을 깨우치는 일에 몰두하였다. 일본이 제국주의 근성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에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가미사마(하나님)께서 일본 하늘에 불벼락을 내리실 것이란 발언으로 말미암아 그는 모진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과연 그의 말대로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원자탄이란 불벼락이 떨어지게 되고 일본이 패전케 되자 사람들은 우찌무라 간조야말로 시대의 양심이요 예언자라 칭송하는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경공부반에서 길러진 인재들이 전후의 신일본 건설에 쓰임 받게 되었다. 그의 성경공부반 출신으로 동경대학 총장이 4명이나 배출되었고 교육부 장관도 4명이 배출되었다. 수상도 한 명이 배출되었는데 오오히라 수상이다. 지금도 일본 복지계를 이끌고 있는 일꾼들의 70%가 크리스천들이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0.3%임에 비하면 복지계의 70%란 엄청난 비율이다. 그 이유인즉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문하생들이 전후에 복지 분야를 주도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우찌무라 간조 선생이 이끄는 청년성경공부반에 동경에서 유학 중인 조선인 유학생들이 몇명이 있었다. 그들이 1927년 1월에 모여 조선성서연구회를 결성하고는 “조선을 성서워에 세우자”는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유석동 여섯 동지들이 중심인물이었다. 우찌무라 간조 선생이 ‘일본을 성서위에’ 세우자는 비전을 들으면서 이들 조선의 청년들은 ‘조선을 성서위에’ 세우자는 비전을 품게 되었다. 이들의 운동을 ‘성서조선 운동’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