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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향수"
우리 인생에서 삶의 질이라는 게 좋은 옷 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좋은 집에 사는 것인 가? 예전 워낙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하루의 세끼 끼니를 어떻게 할 까 하고 걱정해야 했으니 먹을 꺼리부터 걱정하고 챙겨야 했었지만 우리의 자식들은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 걱정은 없는 시대에 태어나 이러한 걱정들은 다른 나라의 일인양 직접적인 느낌이 없는 가운데 한 세월을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의식주 걱정이 없어졌다고 행복한 인생이라 할 것인 가? 물질의 풍요로움만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닐 터이니, 현재가 과거보다 행복하다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을 텐가? 행복은 각자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 결정된다 하니,
일상의 풍요로움만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듯, 지난 세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거쳐온 사람으로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실을 돌아다 보노라면 절로 깨닫는 바가 적지 않으니, 결코, 인생은 물질의 풍요로움만이
행복의 잣대에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더욱 더 절감하고 있다.
갖 가지 편리한 전열기구와 가전제품으로 채워져 있는 도심의 고층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게, 비싼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을 걸치고 각종 영양가 풍부한 맛있는 음식의 밥상을 대하며,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자동차로 달릴 수 있다 해도,
그리 멀지 않은 지난 세월, 시골 고향의 초가 삼칸 부엌 아궁이에 솥을 걸고 쪼구려 앉아서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보리밥과 김치에다 숭늉으로 끼니를 떼우며 모처럼 한가위에 햅쌀밥을 겨우 맛 보았지만
정성과 사랑이 담겨진 그 보리밥 생각이 간절하며,
흙 자갈 길, 덜컹거리며 오가던 그 옛날 고향 길의
소달구지 자가용이 그리워집니다.
지금도 고향 땅을 되돌아 보노라면 산천은 그냥 그대로 예전과 크게 변함이 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현대화 바람과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 사시사철 흐르든 맑은 냇물은 바닥을 들어낸 채 메말라 가고 해마다 가을이면 새옷으로 단장하던 정겨운 초가는 자취를 감추고, 시멘트 길에, 아담한 초가 대신 콩크리트 건물들이 덩그렇게 서 있어 고향 땅, 고향 집 앞을 거닐어도 낯설은 나그네 같으니 긴 세월, 짧은 인생살이 가운데 옛 정취마져 찾을 길이 없다.
그리운 고향이라고 한들, 남은 세월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도 그릴 수도 없게 되었으니 추억으로 가슴 속에다 묻어야만 할 것 같다. 안일과 편리함만을 추구해 나가다 보면, 점점 더 인간의 정서는 더욱 더 메말라 가지 않을 까,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고향의 향수도 없고, 사람의 향기마져도 잃어 버린 채 너무 삭막한 삶을 살아가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웃도 친척도 모르는 개인주의 물결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도 출가 후에는 만나기가 힘든 세상이니 정녕 진정한 삶의 가치관조차 점점 혼돈스러위지고, 대가족의 해체를 넘어서 소가족, 핵가족화된 세상에서 선대에 의한 격대교육의 기회가 전무하고 보니, 장차는 세대 간의 사랑이나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낱말조차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이 세상의 모든 게 생성사멸의 과정을 거치며 원인없는 결과도, 뿌리없는 나무도 없을 터인데, 이마져도 망각하고 살려는 세대가 도래하는 것만 같아 때로는 한심한 생각도 하게 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간간히 밀려오는 아련한 고향의 향수에 젖어서 추억의 그리움에 가슴이 메이기도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니,
그리운 사람들도 고향의 모습도 어찌 그대로 있을 건가! 자신은 그나마 고향의 언저리에서 살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받고, 때마다 보고플 땐 언제라도 고향 산천을 거닐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고향의 향수는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는 귀한 삶의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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