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삶과 죽음이 여기 있으매

鶴山 徐 仁 2007. 6. 13. 23:17
2007년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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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여기 있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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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로또복권 당첨보다도 더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은 하루에 약 2억 마리의 정자를 만들며 최소한 1억 마리를 사정하여야 임신을 시킬 수 있다. 여자들은 아이의 씨인 난자를 자기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가 딸의 난소 속에 넣어준 난자를 사용한다. 태어날 때 약 200만 개의 난자를 어머니로부터 받는데 이중에서 약 500개가 임신을 위하여 배란되는 것이다.

10살에 생리를 시작하여 50살까지 약 40년간을 매달 한 번씩 생리를 한다면 생리 2주전에 한 번씩 배란이 되어 난자가 나오므로 약 480개의 난자를 배란하게 되는 셈이다. 그 수많은 난자와 정자들 중 선택받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란을 만들고 이 수정란이 약 60조 개로 늘어나서 우리 몸을 만들게 된다.

우리 몸의 세포는 일초에 약 50만 개, 하루에 약 432억 개의 세포가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우리 몸을 오랫동안 지탱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셈이다. 각 세포 속에는 정자를 통해 온 30억 개의 아버지 유전부호와 난자에서 온 약 30억 개의 어머니 유전부호가 2m 길이의 DNA속에 들어있게 된다. 하루에 합성되는 유전자 길이를 펼쳐놓으면 달나라를 122회나 다녀올 만큼 엄청난 길이가 된다. 이때 합성되는 유전자의 부호는 하나의 오차도 없어야 된다. 만약 오차가 생기면 암세포가 출현할 수 있다.

정자가 여성의 질에 들어가면 20분 내에 나팔관에 도착하게 되고 여기서 난자를 만나 결합하게 되는데, 하나의 난자에 정자가 들어가면 수정란이 된다. 이 수정란에는 난자 속 23개의 염색체와 정자 속 23개의 염색체가 합쳐져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이며, 또한 완전한 개체이다. 이 수정란이 8번 세포 분열할 무렵 자궁에 착상하게 되고, 41번 세포분열 할 때쯤이면 아기가 되어 태어나게 된다. 즉, 수정란 이후의 과정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므로 수정 시점 이후부터는 잠재적 생명체로 평가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사망의 기준은 심장, 폐 그리고 뇌의 기능이 영구적으로 정지한 시점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현대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 심장박동기, 인공호흡기 등을 통해 이러한 정지를 어느 기간 동안 유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단순히 심·폐·뇌 정지라는 기준으로는 죽음을 정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최근 장기 이식의 활성화와 함께 의학적으로 뇌사의 개념이 정립되었다. 뇌사란 뇌간(腦幹: 대뇌와 척수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뇌의 부분, 뇌의 가장 아랫부분으로 숨뇌, 다리뇌, 중간뇌로 구성됨)을 포함한 뇌 전체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된 시점을 말한다. 이 시점에는 기계의 도움으로 생명활동을 일정기간 지속시킬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환자는 일정 기간 후에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하게 된다. 이러한 뇌사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뇌파의 완전한 정지를 포함한 엄격한 기준이 있다.

여기서 일반인들이 흔히 혼동하는 것이 식물인간이다. 식물인간은 뇌파가 완전히 정지하여 궁극적으로 심폐기능이 모두 정지하는 뇌사와는 달리 뇌의 피질(皮質)이라고 하여 생각하고 감각을 받아들이고 운동을 하는 것을 관장하는 부분만 손상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의지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뇌간의 기능이 살아있기 때문에 숨도 쉬고 심장도 정상적으로 뛰게 된다. 이렇듯 생명의 끝, 즉 사망의 기준은 의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보다 복잡한 요소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변치 않는 것은 죽음이란 생물학적으로, 법적으로 그리고 문자 그대로 절대적이며, 불가역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의학적으로는 모든 생물학적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서 이미 80세에 가까워온 지가 오래다. 그러나 개개인이 모두 그때까지 사는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오랫동안 질병을 갖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이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의사들의 예측이 빗나가는 수가 종종 있다. 80년대 초 대학강사 시절, 당시 69세이던 큰어머님의 위암 수술을 부모님의 권유로 내가 집도한 적이 있다. 위암이 췌장까지 퍼져 위만 절제하고 췌장 부위는 절제를 못하고 전기 칼로 태우기만 하였다. 사촌형님들께 “한 6개월 밖에 못 사실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20여 년을 더 사시고 노환으로 92세가 되어 돌아가셨다.

레지던트 때 제주도 도립 병원으로 파견 나가 외과 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뱃일 하시는 분이 목이 부러져 응급실로 오셨다. 배를 밧줄로 부둣가 기둥에 묶어 고정시키다가 파도에 배가 밀리면서 밧줄에 목이 감겨 목뼈가 부러진 것이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목을 지나는 신경이 잘려 하반신 마비가 오지 않도록 조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멎었다. 기도가 으스러져 숨길이 막힌 것이다. 순식간에 의료용 칼로 기도를 열어 숨을 쉴 수 있게 하여 죽을 뻔했던 사람이 살아난 경험이 있다. 바로 죽음과 삶이 순간에 왔다 갔다 하는 경우이다.

의료분야에 종사하는 나도 언제 어느 순간에 갑자기 사고가 나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예방을 못한 어떤 질병으로 고생하다 사망할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은 종이의 앞뒷면과 같아서 어느 순간 삶이 죽음으로 바뀔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축복이다. 

누구나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며,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또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서 계속 슬퍼만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자유로워진 영혼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새 출발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출생은 첫 번째 행운이요, 죽음은 두 번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행운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품위 있게 맞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다. 
 

박재갑/서울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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