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아시아 중동圈

[스크랩] 터키 풍경

鶴山 徐 仁 2007. 3. 3. 13:53
 

터키의 지하도시와 대상(隊商) 숙소 *隊商은 사막 지방의 원시적인 상업 단체임(이상백)




터키의 지하도시와 대상숙소

일시 : 2006.06.11. ~20.
날씨 : 계속해서 맑고 더운 날씨
사용카메라 : 니콘 D-200 (18~200 즘렌즈 사용)
글과 사진 : 화니



터키에는 여러곳에 지하도시가 있으며 그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데린쿠유] 입니다.
본래 이곳의 지하 1층과 2층은 고대 힛타이트인(초기 철기인)이 살았던 흔적이 있으며,
그 이후 유대인, 시리아인, 희랍인들이 살았는데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하기이전에
기독교를 박해 하다보니
이를 피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지하도시를 건설해서 살았으며
정확한 규모는 알수 없으나 대략 20,000~ 40,000 여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있으며
현재 지하 20층까지 발굴했으나 그 아래에도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재 개방은 지하 8층까지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주거공간(침실,화장실,주방등)은 물론 교회, 신학교 등
거의 모든 시설이 되어 있어서 어린이나 여자들은 동굴에서 나오지도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건장한 남자들만 동굴에서 나와 먹거리를 구하러 다녔으며
동굴에서는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량 음식을 섭취하고 살았답니다.
물론 가끔 영양실조나 아사자가 나왔겠지요.
1980년대 양치기 소년이 양을 잃었는데
땅속에서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서 들어갔다가 발견되었기에
발견된 시기는 최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2년전에는 일본인 신혼부부가 여기서 길을 잃어 2일만에 찾았으며
그 이후 조명이 추가되고 곳곳에 위치를 알리는 비상벨이 설치되었습니다.
↓1. 지하도시 입구

 

↓2. 지하굴은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위해서 완전히 미로로 되어있습니다



↓3. 사진촬영직후 바로 일행이 보이지 않더군요



↓4.거의 스폰지를 확대한것 같은 구조 입니다



↓5. 내리막길 일부에는 영화 인디아나존스에서 보듯이 돌문이 설치되었음(현재는 시멘트로 고정)



↓ 6. 지하 7층 한쪽에 있는 교회(십자가 모양의 굴)



↓ 7. 일부 굴은 철문으로 출입을 막았습니다



↓ 8. 우리일행이 약 40분간 돌아다녔는데 ... 들어가지 않았던 방향 입니다



↓ 9. 아랫층과 통하는 공기구멍인데 빠질까봐 청망으로 막아놓았습니다



↓10. 그을림이 있는 부분은 주방이 있던 곳 이며 연기는 내부에서 순환되어 외부로는 연기가 나오지 않았답니다



↓11. 동굴내의 신학교이며 이곳에서 육아와 교육까지 모든과정이 ......



↓ 12. 신학교 바로 옆의 침례장소(물로 세례를 주던) 입니다



↓13. 지하에서 생활 하다가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자 밖에나와 살면서 세운 교회라고 합니다



위 지하도시에서 떨어진곳에서 숙박했는데
가까운 곳에 아주 커다란 지하 동굴카페가 있습니다
밖에는 더운 날씨 이지만 이곳에는 서늘해서 반필티는 안되고
긴팔 소매에 얇은 잠바를 권할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굴의 구조는 가운데에 공연을하는 홀이 있고 
사방에 가지굴(각각30 좌석 정도)이 7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약2시간의 민속공연이 있으며 주류는 입장료에 포함되어 무제한 무료

↓14. 동굴카페 중앙부



↓15. 민속춤 공연



↓ 16. 중간중간에 관객도 불러내어 함께 진행하는 순서도 있습니다



↓ 17. 밸리 댄스를 추는 터키무희



↓ 18. 밖에 나와서 본 동굴카페 지붕(굴뚝 같은 것이 통풍구)


이스탄불에 있는 고대시대부터 사용하던 지하 물저장고
여기서 007시리즈 영화의 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하의 면적이 매우 넓었습니다

↓19.



↓20. 그 유명한 메두사 조각(똑바로 보면 죽는다나? 미친다나?)



↓21. 옆으로된 메두사도 있습니다


터키는 고대 실트로드의 종점인 이스탄불을 향하는 부분으로
약 35키로미터 마다 대상이 쉴수 있는 대상숙소(오늘날의 휴게소)가 있는데
대부분 가까운 곳에서 물을 확보할수 있는곳에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특히 바로 뒤에 끝이없는 오아시스가 있어 유명한 곳 입니다
특이한 점은 세워진 건축물의 돌들이 이곳저곳의 오래된 유적지에서 뜯어와 지었다는점 입니다.
그래서 멋진 문양의 조각도 있고 일부 깨진 모습도 있고, 큰 조각 작은조각등 멋대로 입니다.

↓22. 외부 모습



↓23. 내부 모습 : 아치 한개 한개가 하나의 커다란 방(약 15평~20평) 입니다



↓24. 바로 뒤의 오아시스 / 깊이를 알수 없다고 하며 오른쪽에서 보듯이 현재도 농업 용수로 사용(직경은 약 100미터)

터키의 지하도시 중 하나인 데린쿠유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데린쿠유는 최대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지하도시다. 
적의 공격을 피해 마치 개미굴처럼 땅 속을 파고들어 지하 120미터까지 내려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피난민들은 점점 늘어났고, 자연적으로 더 큰 공간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옆으로 혹은 아래로 계속 파고 들어가 복잡한 미로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고 한다.

   데린쿠유에는 층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구멍이 있어 예전의 우물 역할 뿐 아니라 지하 
  내부 공기 환풍기, 그리고 동시에 통신 역할도 
  했 다고 한다. 지하 1층과 2층에는 양이나 기타 
  가축이 기거하던 마굿간과 곡물 저장 창고, 비상
  시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포도주 
  만드는 기구들, 돌로 만든 두 개의 긴 탁자가 놓여

  져 있는 식당 및 부엌과 긴급한 일이 발생할 시에
  모여서 대책을 논의했던 집회 장소, 지하도시에 
  모여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교실이 위치
  하고 있고, 지하 3,4층에는 거주지와 성당,
  병기고, 터널 및 고해소 등이 있었으며, 그 외에
  특징적인 것은 기타 다른 지하 도시들과 마찬

  가지로 죽은 자의 시신을 보관하는 곳이 마련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통로와 여러 개의 방들은 복잡한 미로처럼 되어 있으며 
  혹시 모를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또다른 지하도시로의 대피를 위해 만든 비밀통로도 있었다.

 


트로이 유적 / 소피아성당 등등

너무도 유명한 트로이로 향하면서  
가이드가 "세계 3대 썰렁 유적지중에 으뜸이 트로이" 라고 한마디 하더군요. 
나는 그래도 설마 했습니다. 
썩은 트로이 목마 조각이 조금 있을테고 뭐하면.. 모형이라도 있을테고... 
성벽과 궁전터 등등.... 머리속으로 상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제 상상을 깨트렸습니다

↓1.터키관광청에서 엉성하게 만들어 놓은 트로이 목마



↓2. 트로이 유적지의 신전터 두개의 우물이 있는데
하나는 제물(주로 양과 염소)을 정결하게 씻는데 사용하고
하나는 제물로 잡은 동물의 피를 씻는데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3.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이 한참 지난뒤.... 로마제국시대의 원형극장



그리고는 몇십미터의 성벽 몇개뿐... 이것이 트로이의 전부 이었습니다. 정말 왕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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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성당]
소피아성당은 1500년이 넘었음에도 완벽한 모습이 남아 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합니다.
이슬람제국 당시 이스탄불의 서양 건축물은 모두 파괴했으나
이 건물은 너무도 아름답고, 크고, 좋아서 남겨서 사방에 탑을 세워서 이슬람사원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스탄불이 비잔틴제국의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던 6세기에 건조되었다.
1453년 이후 터키의 지배 아래 들어가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되고,
4기(基)의 미너렛(첨탑)이 추가되어 아야 소피아로 부르게 되었으나
본래는 하기아소피아대성당이라 부르던 비잔틴건축의 걸작이다.
<하기아소피아>란 <신성한 예지(叡智)>, 즉 성삼위일체의 제 2 의 페르! 소나인 로고스,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으로 여겨진다.
4세기의 콘스탄티누스제와 후계자의 시대에 건조된 성당(36년 헌당식)이 532년의 반란으로 파손된 뒤,
유스티니아누스제(재위 527∼565)는 전연 새로운 설계에 근거하여 재건을 시작하였다.
설계는 트랄레스의 안테미우스와 밀레투스의 이시도로스가 담당하고,
100명의 감독 밑에서 1만 명의 공인이 작업을 하여 5년 10개월만에 완성하였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속도이며, 537년 12월 7일에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기본적으로는 라틴십자형플랜의 삼랑식(三廊式) 바실리카에 대원개를 씌운 원개식 바실리카형 성당인데,
중앙에 대원개를 둔다고 하는 당시의 건축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안깊이 77m,
나비 71.7m로 하였으므로 거의 정사각형의 그리스십자형플랜에 가깝다.
지름 33m, 바닥면으로부터 56m 높이인 대원개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하여 4개의 큰 지주와 대아치,
삼각궁우(穹隅)를 채용, 동서로 원개와 같은 나비를 가진 2개의 반원개를 설치하는 등, 독창적인 구조이다.
헌당식에 임한 황제는 깊이 감동하여, <오오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에! 게 이겼도다!>라고 외치며
경건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 무종교의 박물관이 되어 있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미국고고학단원의 청소작업으로,
이슬람교 지배 아래 오랜동안 석회칠로 덮여 있던 모자이크벽화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헌당 당시의 것은 장식모티프 등의 사소한 것에 불과하고,
거의가 이코노클라슴(성화상파괴운동) 종결 후인 9세기 이후의 것이다.


↓4. 이스탄불의 명물 소피아사원 /서기532년에 세움/본래 사방의 탑은 없었음

소피아성당을 개조해 사원으로 사용하던 도중에
술탄 아흐메르가 소피아성당보다 더 크고 더 좋게 사원을 세우라고 해서
바로 소피아성당 맞은편에 서기 1000년경 세운 아흐메르사원 입니다.
소피아성당보다는 약 500년 젊고? 잘 관리해서 현재도 사원으로 사용합니다


↓5. 아흐메르사원



↓ 6. 아흐메르사원 내부의 천정



↓ 7. 공원에있는 독일분수 (오스만터키제국 당시 독일 황제가 만들어서 보냈다고함)



↓ 8. 3500년된 이짚트 오벨리스크(이짚트에서 통채로 가져왔다함)



↓ 9.로마의 콘스탄틴누스 황제때 세운 오벨리스크 (높이 34미터)




[톱카프 궁전]

성 소피아 교회 바로 옆에는 이스탄불 최고의 관광 명소인 톱카프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을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새로운 궁전” 혹은 단순히 “궁전” 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19세기 중반부터 사람들이 이 궁전을 톱카프 궁전
(대포문 궁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궁전 앞에는 언제나 커다란 대포가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궁전 앞에 들어서면 궁전을 둘러싼 성벽 중간을 열어 문을 만든 듯한 출입문이 보인다. 이것을 ‘제국의 문’이라
고 부른다. 당시에는 마차가 자유롭게 지나 다닐 수 있는 거대한 문이었지만, 현대인들의 시선에는 버스 한대 겨우
지나 다니는 협소한 문으로서, 궁전의 방대함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준다.
‘제국의 문’ 앞에는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장식한 분수대(?)가 있다. 외부에서 수돗물을 끌어와서, 궁전을 출입하
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세수를 하고 몸을 단장하! 면서 궁전 출입 허가를 기다렸다고 한다. 궁전 앞에 왜 이토록 웅
장한 분수대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궁전을 들어설때부터 방문자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제국의 문을 통과하면, 톱카프 궁전의 첫 마당에 발을 딛게 된다. 오스만 제국이 처음부터 이곳에 궁전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정복왕이란 칭호를 얻고 있는 술탄 메흐멧은 처음에는 그랜드 바자르 근처의 베야지트 지역에 조
그만 궁전을 세우고 그곳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후 폐허가 된 고대 동로마 제국의 도시위에 1475-1478년에 걸
쳐 톱카프 궁전을 지었다.
이 후의 모든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19세기에 이 궁전이 버려지기까지 새로운 건축물들을 짓고 장식하면서 계속
궁전을 넓혔다. 톱카프 궁전은 유럽 궁전들의 일반적인 건축 양식에 비해 상당히 다른 스타일로 지어졌다.
터키인들은 역사적으로 수세기 동안 유목생활을 했던 민족이기 때문에 궁전 건축에도 유목민적인 전통을 반영시켰
다. 유목민들이 먹고 즐기기 위한 커다란 공간을 중심으로 그들의 텐트를 치는 것처럼 오스만 터키인들은 아름다
운 정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 퓜갠湧? 세우는 방식으로 지었다.
톱카프 궁전은 16-17세기 세계 최강? 뮌潔駭? 오스만 터키 제국이 400여 년간 궁전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24명의 술탄
(황제)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궁녀와 하인들이 사용했던 곳이다. 오스만 제국의 행정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오스만
제국의 가장 뛰어난 비종교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에 소장된 유물은 86,000여점으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다.
본래 엄청난 보물이 있었으나 오스만터키제국이 1차대전으로 멸망하자 오스트리아제국에서 많이 약탈해가고
현재 남은 보물도 그 값어치가 엄청나서 판매할 경우 터키의 7700만명이 2년간 먹고 놀수 있다고 합니다.


↓10. 터키제국의 마지막 인 텁카포 궁전의 정문



↓11. 궁전의 제2문



↓ 12. 궁전의 모형/오른쪽 제일 뒤의 뾰족한 부분이 주방의 굴뚝
궁전에 약5000명이 기거했는데 그중에 조리사가 약2000명 이었다고함



↓13. 황제의 황금마차



↓14.황제가 기거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제3문/주로 이곳에서 커다란 행사가 치루어졌다고 합니다



↓15.내부의 천장



고대 [니케아 유적지]

주로 희랍의 하급관리와 상인 죄수가 와서 해적 등으로 세운
해상도시로 기원전에 번성했으나 알수 없는 시기에
알수 없는 사유와 지진으로 물속에 수장되었음


↓16. 우리 일행이 전세낸 유람선 / 거의 다 나무로 만들어져 있음



↓ 17. 대부분 수장되고 일부만 남아있음



↓ 18. 일부 산 기슭에 유적지가 남아있으나 물속에 잠긴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 19. 이곳의 바닷물은 색상도 특이하지만 엄청나게 맑았습니다



터키의 따끝마을 [카시]

바로 바다건너 약 10키로 떨어진 곳에 그리이스의 섬이 있는곳으로
고대부터 해상과 육상을 연결하는 항구로 사용되어
시내는 물론 뒷산에도 고 무덤이 있고
비교적 보존이 잘되어진 로마의 원형극장도 있습니다


↓20. 땅끝마을 카시의 로마시대 원형극장



↓21. 카시 시내 복판에 있는 해적의 석관/ 윗 부분은 배가 뒤집힌 형상(뒤집어지면 죽는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