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아시아 중동圈

[스크랩] 아잔타 석굴

鶴山 徐 仁 2007. 3. 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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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석굴 정경

                           12 아잔타 석굴



  데칸고원에 있는 아잔타 석굴로 가는 길가 넓은 밭에는 해바라기 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것을 본 친구들은 차를 멈추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진을 촬영한다. 샛노란 해바라기 꽃이 넓은 밭에 가득히 피어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우리는 해바라기 꽃처럼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촬영했다.

  아잔타 석굴 전망대에 올라보니 저만치 반달형으로 내려다보이는 석굴들이 개미굴만 같고 거기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처럼 보인다.  1-아잔타12[1].jpg

 

  길을 돌아 아잔타 석굴을 찾아가는데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많기도 하려니와 물건을 팔려는 잡상인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마꾼들은 우리가 한국사람 인줄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왕마마 가마 타시오!’하고 능청을 부린다. 그리하여 어쩌다가 승객이라도 탈라치면 신이 나서 ‘상감마마 납시오!’라면서 빠른 걸음으로 내달린다.

  불교미술의 보고이자 인도 회화의 금자탑인 아잔타(Ajanta) 석굴은 BC 2-1세기에 조성된 전기석굴과 5-7세기의 후기 석굴이 섞여있지만 전기석굴에는 불상이 없고 후기석굴에만 불상이 있어서 구분하기가 용이했다.

  이 석굴은 8세기 이후 불교가 쇠퇴하자 1,100년간이나 밀림 속에 묻혔다가 1,819년 호랑이 사냥을 하던 영국군 병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두터운 먼지에 쌓여있어서 벽화의 화려한 색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먼지를 제거하고 어설프게 보수를 한 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자 벽화는 색이 바래버려서 지금은 청소도 않고 사진 촬영도 금지하고 있다.

  석굴과 조각품의 규모 면에서는 엘로나 석굴보다 못하지만 예술성과 정교함의 가치는 아잔타의 자랑이고, 특히 자유롭고 활동적인 모습과 매혹적인 표정으로 그려진 여인들의 벽화는 아잔타만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이다.

  날씨가 덥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입장표를 사 가지고 제1굴 앞으로 들어가니 신발을 벗고 기다리란다. 석굴 입구에서는 밀려오는 관광객들을 그대로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숫자만 넣어서 관람을 시키고 있었다.

  동굴 위에 붙어있는 번호는 단지 그 위치와 순서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소승불교가 만든 것이고 나머지는 후에 대승불교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벽화의 테마는 석가의 일생과 전생에 대한 것이라고 하는데 여러 가지 모습들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었으며 천장의 그림은 주로 장식적인 문양으로 많이 퇴색되었다.

  제1석굴은 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아잔타 석굴 중에서 벽화가 가장 좋다. 연화수보살상은 명상에 잠겨있고, 밀적금강보살상은 많은 보석을 치장하고 있으며 왕이 꽃을 바치고 있는 두 그림은 아잔타의 보물로 많은 미술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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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석굴은 부다의 전생과 현생 이야기, 즉 부다의 탄생 설화를 그린 것으로 부다를 안고 있는 마야부인상과 코끼리 그림이 유명하다.

  구경을 하던 인도사람들이 우리를 보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그래서 함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신기한 모양이다. 우리는 그들이 신기한데.

  제4석굴에 들어서자 귀에 익은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알고 보니 설악산 봉정암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는 중이란다. 스님들과 함께 불교순례를 왔다는 신도들은 먼 나라에서 동포를 만났다며 반가워한다. 나도 먼 인도에서 고국의 예불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찔끔 나는데.

  이 굴은 아잔타 석굴 중 28개의 기둥이 서있는 가장 큰 석굴이다. 벽화도 아름답지만 부조로 새겨진 조각이 빼어나고 화가 난 코끼리를 피해 도망가는 두 남녀 그림은 유명하다.

  제6석굴은 유일하게 2층 구조로 된 것으로 2층에는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음악기둥이 있고 제7석굴은 부처님을 뇌성벽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무칠린다 용왕을 부조로 묘사하고 있다.

  제10석굴은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19년 존 스미스(John Smith)에 의해 발견되어 가장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른쪽에서 13번 기둥에 스미스의 필적이 있다고 하기에 찾고 있으려니 안내자가 먼저 알고 ‘John Smith, 28th Cavalry, 28th, April 1819.'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둥을 안내해 주었지만 글자가 희미해서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제16석굴은 작지만 내부의 벽화가 아름답고 특히 ‘빈사의 공주’는 아잔타의 백미로, 석가의 이복동생인 난다가 출가를 결심하자 상심한 아내 순다리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석굴 최고의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19석굴은 아잔타의 석굴 중 가장 아름다운 조각장식이 되어있어서 '조각가들의 보물 상자'라 불린다. 7개의 코브라 머리를 가진 나가왕과 하나의 코브라 머리를 가진 그의 부인 나긴스의 상이 인상적이다.

  이제는 일행도 뿔뿔이 헤어져버리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한다. 그러다가 네팔에서 온 여인들을 만나서 함께 구경을 다니면서 사진도 촬영했다. 그들 역시 한국에서 온 우리가 이상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제22석굴은 오른쪽 부다좌상 위에는 마이트레야와 일곱 부처 형상이 보리수 밑에 그려져 있고 제24석굴은 조성하다가 도중에 중지한 것으로 미완성의 석굴이었다.

  마지막에 있는 제26석굴은 인도에서 가장 큰 열반상으로 유명한 짜이띠야 석굴사원으로 입구가 파손되어 엉망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것까지 아잔타 석굴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경했다.

  말로만 듣던 아잔타 석굴은 참으로 대단했다. 단단한 바위산에다 어쩌면 이렇게 커다란 굴을 파고 기둥을 깎아 세웠으며 부처님을 조성했을까. 그리고 거기에다 아름다운 그림까지 그려놓았으니. 이 석굴을 조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대단했을까.

  이것은 권력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돈이 많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바위를 다듬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거룩한 신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신은 과연 위대한 존재였다.

  그리고 석굴마다 입구에 커다란 남녀 나신상을 조각해놓은 것은 웬일일까. 그것은 아마도 수양하는 스님들의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해서 이리라.

  불교에서는 색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일의 계율이 아니던가. 그런데 아무리 스님들이라고 한들 유방이 커다란 이 여신상들을 보면 마음이 동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경지에 올라서야 진정으로 불자가 된다는 뜻으로 많은 나신상을 조각해 놓았으리라. 아잔타 석굴은 참으로 위대한 세계의 문화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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