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랑가바드역
11 무굴제국의 고도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기차는 밤새도록 달려서 새벽녘에 아우랑가바드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기차에서 내렸다. 밤에 타는 기차는 도중에서 내린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아차 잠이 들었다가는 몇 정거장을 더 가버리기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앉아있자니 고역이 이만저만 아니다.
뭄바이 동북동쪽 약 300㎞ 지점에 있는 아우랑가바드는 마하라슈트라주 중부 도시로 데칸고원지방의 중심도시이다. 무굴제국 6대 황제 아우랑제브가 데칸지방을 통치하는 거점으로 삼아 자기 이름을 따서 이름을 고친 이 도시는 인근에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사원이 있어서 관광거점도시로 유명하다.
아우랑가바드는 옛날에 무굴제국의 수도여서 고도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데칸의 타지마할이라 불리는 ‘비비 까 마크바라’로 이는 아우랑제브왕이 첫째 왕비인 라비아 우드 다우라니를 위해 지은 묘지이다.
비비 까 마크바라1
비비 까 마크바라는 정문을 들어서면 타지마할을 잘못 찾아왔는가 하고 착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비비 까 마크바라는 바라다 보이는 모습이 타지마할과 꼭 같기 때문이다. 사방 모서리에 둥근 탑이 서있고 그 한가운데 서있는 하얀 건물은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대리석에 새겨놓은 섬세한 조각도 조각이려니와 커다란 대리석 창살문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것이 과연 사람의 손으로 다듬었단 말인가. 섬세한 꽃무늬를 더듬어 보고 있으려니 숨이 막힌다.
왕비는 이란여성이었다. 그래서 죽은 왕비를 위하여 이렇게 호화찬란한 이란양식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런데 돈을 가지고 더 호화로운 묘지를 만들라는 뜻인가, 무덤 위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던진 동전이 수없이 놓여있었다.
비비 까 마크바라는 주 건물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넓은 정원을 꾸며놓고 거기에다 또 다른 건물을 지어 놓았다. 거기로 연결된 길을 대리석으로 꽃무늬를 만들고 거기에다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놓은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아무리 왕비라고는 하지만 묘지를 이렇게 호화찬란하게 꾸미다니, 참으로 기가 찼다. 이것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으며 백성들은 또 얼마나 동원되었을 것인가. 군주란 국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군주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었던 모양이다.
땡볕에 찾은 아우랑가바드 석굴군은 시가지 북쪽 산기슭에 있었다. 그것은 기대만큼은 못했지만 그래도 코끼리 섬의 석굴보다는 훨씬 나았다. 먼저 본 네 개의 석굴은 기둥에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있고 중앙에 부처상이 모셔져 있었지만 어떤 것은 조성하다가 그만둔 석굴도 있다.
거기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석굴군은 조금 전에 본 석굴보다 규모나 내용이 크고 좋았다 석굴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을, 좌우에는 보처불을 모셔놓은 것이 균형이 잡혀있다. 거기에 있는 부처상은 남녀의 구분이 분명했고 특히 여자 부처상은 유방이 유달리 클 뿐만 아니라 뱃구멍도 뚜렷했다.
석굴 부근에는 희고 붉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수많은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거기서 바라보니 황량한 벌판 너머로 아우랑가바드 시가지와 호수와 숲이 저만치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지평선이 아련하다.
비비 까 마크바라2
비비 까 마크바라3
비비 까 마크바라4
비비 까 마크바라5
비비 까 마크바라6
비비 까 마크바라7
비비 까 마크바라8
비비 까 마크바라9
비비 까 마크바라10
아우랑가바드 공원1
공원2
공원3
공원4
'아시아 중동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터키의 소금호수와 지하도시 (0) | 2007.03.03 |
---|---|
[스크랩] 터키 풍경 (0) | 2007.03.03 |
[스크랩] 아잔타 석굴 (0) | 2007.03.01 |
[스크랩] * 인도 여행기 5 - 姜 中 九 (0) | 2007.02.24 |
[스크랩] * 인도 여행기 - 姜 中 九 (0) | 2007.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