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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동圈

[스크랩] 터키의 소금호수와 지하도시

鶴山 徐 仁 2007. 3. 3. 13:56
 
 
소금호수 투즈굘과 지하도시 데린구유
 
(터어키 앙카라~가파도기아)
 
<2007년 1월 1일>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 투즈굘(Tuz Golu)의 크기는 1,500 제곱Km 로서 앙카라에서 209Km 떨어진 콘야로 가는 길목에 있다. 투즈굘에서 나는 소금은 전 터키소금
 
양의 64%를 충당하며 이 양은 약 1,000,000 톤이다.이 호수의 소금은 식용으로 쓰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소금항아리를 만드는데도 쓰고 있다. 소금을 섞어서 만든 항아
 
리는 옛날부터 대상들이나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의 수통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소금호수의 소금을 사용해서 진흙과 소금의 비율을 잘 맞추어서 만든 것은 아무리 더워도
 
물이 얼음물처럼 차고 변질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대상들은 이 투즈굘에서 나는 소금으로 만든 항아리를 최고의 상품으로 쳤다. 소금항아리 200개를 만들려면 소금
 
10kg이 드는데 이때 소금의 양이 많으면 뜨거운 오븐이나 화덕 속에서 깨지고 또 적게 넣으면 물이 미지근해진다.


 
 
 
 
 

 
 
 


 
 
 


 
 
 


 
 
 


 
 
 


 
 
 


 
 
 
 

 

▲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데린구유와 카이막카르 지하 도시의 형태는 서로 비슷하다.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대형 지하도시는 현재 8층까지 개방하고 있다.

피난민이 늘어 날수록 더 큰 공간의 넓이가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계속 파 들어가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지하 도시 안에는 평상시에 밖에서 사료를 날라다가 저장해 둘 뿐 아니라 추수한 곡식들이 서늘한 지하 도시에 보관되고, 비상시 음료수를 위해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포도주를 놓아둔 흔적들도 있다.

땅속 깊이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또한 이것을 지하 공기를 맑게 해 주는 통풍 장치로 원용하였다. 동굴 중간 중간에는 외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둥근 맷돌 모양의 큰 석물도 놓여 있다.

20,000명 정도 수용되는 이 지하 도시는 주거지로 사용하던 방들, 부엌, 교회, 곡물 저장소, 동물 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성찬및 세례식을 갖는 장소, 신학교, 지하매장지 등 도시 기능을 완전히 갖추었다.

이곳은 긴급시 타 지하도시로 피신 할 수 있는 지하 터널이 무려 9 Km 까지 연결 되어 있다. 이같은 지하 도시가 이 지역에 36개 정도가 있다. 이 지하 도시에는 일체의 성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초기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된다.  



 
 
 


 
 
 


 
 
 


 
 
 


 
 
 


 
 
 


 
 
 


 
 
 


 
 
 


 
 
 


 
 
 


 
 
 
 
 
Nabu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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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터어키 소금호수와 데린구유
  글쓴이 : 니고데
 1907년에 최초로 이 지역의 성지를 발굴해 낸, 프랑스의 예수회 회원이자 학자인 JERPHANION 이, 이 갑바도기아 지역에 들어서자 터트린 일성이다.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갑바도기아는소아시아 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이곳은 과거 화산 활동을 하던 에르지에르 산과 길류 산에서 수 만년 전에 용암과 화산재가 이 지역을 1200 m 나 덮게 되어, 그 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비, 바람의 침식으로 달 표면과 비슷한 괴상한 모양의 대 걸작품을 형성 했다
여기에 토굴과 암혈을 파고 숨어 살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은신처들, 기도처와 신학교, 동굴 교회들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모습을 갖고 있어 탐방자 들의 눈을 놀라게 한다. 여기에는 유대인들과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초대교회의 생생한 역사를 볼 수 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신앙을 지키려는 자들이 갑바도기아로 이주해 와서 살던 모습, 기독교 자체 내에서 성화파들과 성화를 반대하는 이크노클라스파들간의 종파 싸움을 계기로 성화파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비잔틴 예술의 극치를 이루었던 성화들과 동굴 교회를 장식했던 수많은 벽화들이 있다.
이곳은 기독교의 근원적인 모습들, 기독교 성장에서 오는 모순들, 기독교와 타 종교간의 마찰, 그리고 기독교 자체 내의 종파 싸움으로 인한 쇠퇴기와 멸망의 원인들을 잘 설명해 주는 살아있는 기독교 박물관이다.
이곳에 지하 동굴을 최초로 파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아니다. 기원전 1200년 경에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하자 소아시아 반도는 암흑기로 접어 들면서 동부는 투 왕국, 남동부는 신 히타이트 왕국, 서부는 리디아 왕국, 중부는 프리지아 왕국이 차지하며 서로간에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 후 기원전 6세기경 중반에 페르시아 제국이 소아시아 전체를 통일 점령한 후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침입 할 때 까지 페르시아 영토였다가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아리아테라우스 2세가 갑바도기아 왕국을 세워 기원전 2세기말까지 독립을 유지하다가, 기원후 17년에 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 되었다.
이같이 수 많은 왕국의 교체과정에서 전쟁 패잔병 들이 소규모로 토굴을 파고 은신해 살아왔다. 그 후 크리스챤들에 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가 심해지자 소아시아 반도를 비롯한 각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대거 몰려 옴으로 오늘의 역사적 현장을 만들었다.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