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습득 위한 외국행 2000~2004년간 초등생 9배
증가
[연합]
한국 영어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④해외 유학과 사교육 증가
사교육 시장은 이미 10조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해외 연수나 유학은 이미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내에서 학교 다닐때 지출하는 사교육비나 외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비용이나 비슷하다고 보고 자식을 해외로 보내는 부모들이 늘고있다. ◇ 영어 때문에 외국행 =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4학년 박모 양은 올해 1학기를 마치고 혼자 이모가 사는 오하이오 주로 떠났다. 박양은 이모의 집에서 기거하며 클리블랜드시(市) 근교의 한 초등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박양은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갔지만 초등학교 입학이 허가됐다. 미국의 초등학교 측에서는 미국 학교생활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교장 직권으로 박양의 입학을 허가하기로 했던 것이다. 박양은 일단 6개월 간 미국에 머물 예정이지만 상황에 따라 체류기간을 연장할 가능성도 있다. 박양의 부모가 박양을 혼자 미국에 보내기로 한 것은 주로 영어 때문이다. 박양과 같은 반에 해외연수 등으로 미국에 다녀온 학생들이 많아 영어에서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초등학교에서는 올해 1학기를 마치고 외국으로 나간 학생들이 23명에 달했다. 이 학교 전체 학생은 1천250명. 이중 해외 주재원 등으로 나가는 부모님을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나간 학생들은 10명이었고, 1명은 이민, 나머지 12명은 모두 해외 영어연수였다. 이 학교의 이모교사는 "연수 학생들은 3-4학년이 많고 이 아이들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해외에 머물다가 돌아온다"면서 "5-6학년 학생들은 이미 연수의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소아과 병원을 하던 이모(40) 씨는 지난해 12월 병원 문을 닫고 아들 둘을 데리고 미국 켄터키 주로 갔다. 아이들의 영어 교육 때문에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켄터키를 택한 것은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어 정착이 쉬웠기 때문이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남편은 혼자 인천에 기러기로 남았다. 이씨는 켄터키주립대학의 입학허가서를 받은 뒤 학생(F1)비자로 미국에 입국했다. 함께 데리고 간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아이는 현지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학교에서 이미 우수학생으로 인정받았다. 이씨는 미국 생활 2년이 되면 큰 아들은 현지 기숙 사립학교에 넣고 작은 아들만 데리고 귀국할 예정이다. 이처럼 영어 학습을 목적으로 해외에 나가는 초중고 학생들의 숫자는 최근 급격히 늘었다. 서울시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2005학년도인 작년 3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유학을 간 초중고교생 수는 7천1명으로 2004학년도의 6천89명에 비해 15.0%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서울지역에서만 매일 평균 22명의 초중고생이 외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출국한 셈이다. 서울지역 초중고 유학생 숫자는 2004학년에도 전년의 4천427명에서 37.5% 증가한 바 있다. 유학목적지 별로 보면 미국이 2천575명으로 가장 많고 캐나다 1천106명, 중국 902명, 동남아 656명, 뉴질랜드 312명, 호주 268명, 영국 77명, 일본 64명, 남미 63명, 독일 56명 등 순이었다. 전국적으로 보면 그 숫자는 더욱 크게 늘어난다. 국회 교육위원회 이주호(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방학 때 30일 이상 해외에 나간 초.중.고교생이 1만2천249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62%인 7천597명이 어학연수 등 교육목적으로 출국했다. 출국 학생들은 초등학생이 9천310명, 중학생이 2천495명, 고교생이 439명이었다. 이 의원은 한국인이 어학연수를 위해 미주지역에만 지출한 해외여행 경비가 최소 2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돼 외화유출은 물론 저소득층 자녀와의 교육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조기 유학이나 해외 연수를 하는 학생들 수가 늘어나자 예산 배분에도 이 문제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5월 장기적으로 교육분야의 재정배분 전략에 참고하기 위해 조기유학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2000년 4천400명 수준이던 초중고 유학생 수가 2004년에는 1만6천400명으로 4년 만에 4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초등학생만 보면 2000년 705명에서 2004년 6천276명으로 9배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지난해 유학수지 적자는 전년대비 8억8천만 달러가 증가한 33억6천 달러나 됐다. 어린이들 자신도 해외 영어 연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달 21일 알리안츠생명이 서울시내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좋은 직장과 성공을 위해 영어 실력이 필수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63.8%가 '매우 그렇다'고 대답했고 79.1%는 기회가 되면 영어 해외연수를 가고 싶다고 응답했다. ◇ 사교육 시장 = 해외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니다 귀국한 K양은 서초구의 한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K양의 부모는 영어를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배운 영어를 잊어버린다는 주위의 말을 듣고 K양을 서둘러 집 근처 학원에 보낸 것이다. 그러나 K양은 첫날 학원에 다녀오자 마자 부모에게 놀랍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외국에 나갔다 오지도 않았는데 발음도 매우 좋고 영어 실력이 자신과 비슷하더라는 것이다. K양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를 파악하게 됐다. 다른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원어민이 가르치는 영어학원에 다녔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하루 몇 시간씩 영어를 공부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일주일에 6시간을 가르치는 이 학원의 한달 수강료는 29만5천원으로 매우 비싼 편이다. 전국 도처에는 크고 작은 영어 학원들이 난립해 있다. 교육부 공식 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외국어 학원 수는 5천600여 개에 달하며 이중 970여 개가 서울에 있다. 이 외국어 학원들은 거의 모두가 영어학원으로 추산된다. 또 서점에는 각종 문법책과 독해, 듣기, 토플 또는 토익 참고서, 영작문 등 많은 영어 참고서들이 쌓여 있다. 이밖에도 전국 각지에 영어마을이 앞다투어 만들어지고 있으며, 학습지 교육, 온라인 교육 등이 유망한 사업으로 번창하고 있다. 한국의 2006년도 교육인적자원부의 예산은 약 32조원인데 사설 영어교육 시장은 연간 약 10조원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 이상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올해부터 일부 초등학교에서 1-2학년 영어시범수업을 시작했다. 이때문에 초등학교 1-2학년은 물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영어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지난 5월 경인교대 영어교육과 박약우 교수팀이 교육부의 의뢰로 실시한 '초등학교 조기 영어교육 확대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 초등학교 1, 2학년의 73.7%가 이미 영어 사교육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에서 공교육의 경쟁력은 사교육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서울 J여중의 이모(43) 교사는 자신이 영어교사인 데도 아들을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 그는 "사교육의 시스템이 공교육에 비해 워낙 월등하다"고 말했다. C어학원등에서 가르치는 시스템은 학생들이 일단 학원에서 원어민 교사에게 배운 뒤 집에서 다시 인터넷을 통해 듣고 적기와 말하기 등의 숙제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교사는 "내가 가르친다 해도 도저히 그렇게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면서 "다른 영어 선생님들도 모두 그런 학원에 자기 아이들을 보낸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2월 초등학교 1, 2학년생들에 대한 영어 수업 도입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내부에 영어교육혁신팀(팀장 김천홍)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혁신팀은 영어 교육 전반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의식해 이제는 초등생 영어 교육뿐만 아니라 고등학교까지의 영어 교육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다. 공교육이 개선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교육부는 빠르면 다음달 혁신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 팀장은 영어교육혁신팀의 연구방향에 대해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교육에서 영어 학습을 열심히 하고도 영어 능력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를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어 공교육을 개선해 국민들의 사교육비 지출을 줄여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초등학교 저학년 영어 교육을 실시하는 등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면 할수록 오히려 부모들의 사교육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김 팀장은 "이것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면서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사교육을 더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
2006.08.17 09:12 입력 / 2006.08.17 09:14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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