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웅포낙조

鶴山 徐 仁 2006. 7. 28. 12:30

황금빛 노을 뒤엔 웅포의 명월...

서해 7大 낙조 명소 익산 웅포 곰개나루
서해를 눈앞에 두고 금강물도 한숨을 쉬었다 가는 전북 익산 웅 포(熊浦) 곰개나루. 웅포 금강물은 평소 황금빛 노을이 지고 달 빛까지 깃들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25일 웅포 하늘은 10일 이상의 장마 끝자락 짙은 구름에 가려 낙조와 명월 을 보여주지 않아 안타까웠다. 이곳은 일몰이 아름다워 한국관광 공사에서 서해안 7대 낙조 중 한 곳으로 꼽기도 한 명소이다.
백제 문화권을 한데 묶어 보겠다며 전북 익산과 충남 부여를 이 은 웅포대교를 수놓은 가로등 빛이 금강호에 반사되며 연출하는 멋진 야경이 그나마 ‘웅포 명월’을 대신하고 있었다.

웅포면사무소 뒤편 금강호를 향해 튀어나온 언덕에 있는 용왕사 터 덕양정에서 내려다본 금강호. ‘큰 강은 소리 없이 흐른다’ 는 말을 대변하듯 ‘말 없이 말 없이’ 밤새 서해로 흘렀다. 덕 양정은 원래 옛날 용왕제를 지내던 용왕사(龍王祠)가 있던 자리 다.

용왕사는 고려말 왜구침입을 격퇴하느라 진포대첩 때 수장된 장 병들을 기리던 곳. 400여년 전 건축돼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 졌고, 지난 1945년 남아 있던 덕양정이 태풍에 무너졌다. 40년 가까이 빈터로 쓸쓸히 남아있다 1982년 2층 시멘트 정자로 재건 된 뒤 곰개나루 관광지 조성사업 일환으로 지난해 지금의 나무정 자형태로 새 단장했다.

곰개라는 지명이 곰이 금강물을 마시는 듯한 포구의 지형 때문에 붙여졌으니 덕양정이 자리한 언덕은 물을 마시기 위해 내민 곰 의 머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금강 하구둑이 조성돼지 않았던 20 년 전까지만 해도 곰개나루는 배가 이곳을 거쳐 충남 강경까지 드나드는 꽤나 큰 포구였지만 요즘은 썰렁한 쪽배 몇 대가 그 명 맥을 유지하고 있어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금강변에 펼쳐진 가을 갈대밭과 겨울 철새 등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분위 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덕양정 뒤편에서 금강을 병풍처럼 둘러싸 고 있는 함라산의 넉넉한 산세도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이런 풍경 때문인지 이곳은 인근 익산·군산·전주·대전 등의 도시에서 젊은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군산 금강하구둑 을 시작으로 웅포면사무소와 웅포대교를 지나 충남 부여 쪽으로 도는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곰개나루는 이 드라이브 코 스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요즘 곰개나루에는 새로운 야간 풍속이 생겼다. 웅포대교 가로등 불빛을 더듬으며 동자개(속명 빠가사리)를 낚는 밤낚시족이 등 장한 것. 꾼들은 웅포대교 위에서 30여m 아래쪽 물속을 향해 낚 시대를 드리운다. 물살이 느린 강이나 호수에 사는 민물고기며, 한 뼘쯤 되는 누런 동자개 등이 꽤나 잘 올라온다.

웅포 주변 관광지

백제고분박물관에 유물 100여점 달마대사 기린 숭림사도 가볼 만
전북 익산시는 웅포 곰개나루를 충남 공주와 부여에서 익산으로 연결하는 백제문화권 관광거점으로 활용하면서 익산 입점리 백제 고분을 비롯해 금마 미륵사지, 웅포 골프장과 곰개나루터까지 연계한 관광 및 레저 명소로 가꿔 나가고 있다.

◆입점리 백제고분 박물관(063-850-4995)
웅포면 입점리 21개 고분에서는 백제 후기 유적에서 볼 수 없었던 금동제관모와 신발 , 옥, 중국청자, 은제품, 백제토기 등 화려한 유물이 수습됐다.
5세기 중엽 다양한 유형의 백제 무덤이 확인되어 당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웅포리고분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무덤 30기가 조사되어 이 일대가 백제고분 유적이 집중 분포된 지역임을 알게 한다.
익산시에서는 입점리고분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문화재청과 협의, 1999년 백제문화권 사업에 편입하고 발굴 조사된 무덤의 정비와 출토유물을 전시할 전시관을 건립했다.

박물관은 326평 규모에 전시실, 수장고, 자료실 등을 갖추어 입점리와 웅포리고분에서 출토된 100여점의 유물을 전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교육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주변 유적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달마대사가 도 닦던 숭림사
숭림사는 고려 충목왕 1년(1345) 에 세워졌다. 절 이름은 중국의 달마대사가 숭산 소림사에서 9년 간 앉아 도를 닦았다는 옛이야기를 기리는 뜻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보광전은 17세기 이전에 지은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절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건물 옆면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았다.
건물 안쪽은 보 끝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고, 기둥 윗부분에 설치된 건축 부재들은 각각 연꽃, 용의 몸, 용 앞발이 여의주를 쥐고 있는 모양으로 장식하고 있다.
법식과 기법이 특징인 조선 후기 건축물로 건축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로 주목받는 문화재이다.

이밖에 숭림사를 끼고 바로 입구에 자리 잡은 웅포문화체육센터( 063-850-4956)는 지난 2002년 4월 완공했다. 익산시가 운영하는 이 센터는 전체 7000여평에 문화체육센터와 극기훈련장, 야영장, 산책로 등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웅포 곰개나루 문화일보 박팔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