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韓·美동맹 해체로 自主 얻은들 세계서 고립되면 무슨소용 있나"

鶴山 徐 仁 2006. 7. 25. 19:02
현정부 첫 외교장관 윤영관 교수 비판

노무현 정부의 첫 외교부 장관이었던 윤영관<사진> 서울대 교수는 24일 한국중등교육협의회 하계 연수 특강에서 정부의 대북·대미·통상정책을 비판했다.

윤 전 장관은 “나는 (대북) 포용론자이고 그 소신에 변함이 없다”면서 “그러나 포용정책엔 원칙이 있어야 남북이 함께 세계 사회의 미아(迷兒)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대북 경협의 목표는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돕는 일이어야 했다”며 “현 정부 초기에 대북 불법 송금 관계자들을 사법 처리했을 때 DJ정부 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추진할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했지만, 그 계기는 어쩐 일인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고 새 정부의 포용정책은 DJ정부 때의 포용정책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그렇게 되자 북한은 남쪽이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큰소리치면서 지원을 받아가고, 급기야는 ‘남측이 선군 정치의 덕을 보고 있으니 대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한·미 관계에 대해 “감정적 민족주의가 우리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버린 느낌”이라며 “미국을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일부의 주장이 과연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윤 전 장관은 “한·미 동맹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었으며 바로 그 선택으로 안정적인 안보 환경에서 경제 발전과 민주정치의 실현이 가능했다”며 “동맹을 해체해서 아무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주(自主)를 아무리 많이 구가해도 정작 국가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외교적으로 고립돼 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장관은 한·미 FTA는 국익 차원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제까지 국민들에게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청사진과 세계관을 심어주었느냐는 것”이라며 “혹시 경제문제에 대해 지나친 이념 지향성을 가지고 접근해서 국민들의 시야를 안으로만 돌리도록 만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관 전 외교장관의 연설 전문

1. 들어가는 말

오늘 이처럼 귀중한 자리에 초대해주신 한국중등교육협의회 최수철 회장님과 회원님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5남매 중 3남매가 교육계에 근무하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다른 어떤 자리보다도 교육계의 일선 지도자들이신 여러분들을 모시고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대단히 뜻 깊게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10여 년 동안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극받고 변화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함께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직 외교부장관이라기보다는 국제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것처럼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는 대단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중요한 기로에 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 대학교수의 신분으로 되돌아와서 그동안 생각했던 바를 담담한 심정으로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전하는 저의 말씀이 정파적 차원을 초월해서 한반도 미래 대계를 설계하고 추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2. 교육의 중요성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안보나 통상 외교와 관련하여 많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 위상과 한국 사람들의 의식간의 갭"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즉 한국의 몸은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 30-40대의 성년으로 성장해 버렸는데 우리가 바깥세상이나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의식은 10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2005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GDP규모가 10위인 나라입니다. 장관을 할 때 곤혹스럽고 안타까운 경험 중의 하나는 신임장을 제정하러오는 개발도상국의 대사들이 “직업학교를 지어주십시오, 컴퓨터를 보내주십시오, 경제개발 지원을 해주십시오”하고 점잖게 부탁해 올 때 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다 "예"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해서 안타까우면서도 우리 한국을 평가하는 세계 사회의 기대와 눈길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세계 경제력 10위의 국가이면 그 국력에 걸 맞는 외교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에 걸맞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발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지금 우리 사회는 구한말(舊韓末)에 있었던 저항적 민족주의나 1980년대의 종속이론과 같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세계관에 의해 크게 영향 받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조만간 닥쳐 올 한반도 통합의 시대에 대비하여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원려(遠慮)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식의 감정적 민족주의가 우리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포로, 한(恨)의 포로가 되어버리면 미래를 설계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처럼 당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상 자체가 미래지향적이고, 적극적이고, 합리적어야만 하는 것입니다.그러한 새로운 발상, 즉 새로운 세계관, 역사관, 민족관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21세기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에 걸 맞는 우리 민족의 꿈을 실현해나가려면 과거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우리 능력의 객관적 현실과 우리 스스로와 세계를 인식하는 의식 사이의 간격(gap)을 메꾸어 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육자들의 역할이고 교육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이 역사를 바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현장에 바로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3. 외교안보 전략의 문제

우리 민족은 정말 한(恨) 많은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1세기 전 우리 조상들이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둡고,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다가 일본제국주의에 당했습니다. 그 후 처음 잘못 꿰인 일제(日帝)지배의 단추가 남북 분단, 전쟁, 독재정치, 그리고 이제 그것도 모자라 북 핵과 미사일 사태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안타까운 역사를 이 순간에도 경험하고 있습니다.그렇기에 우리 같은 민족에게 가장 감성적으로 호소력 있는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자주(自主)입니다.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바로 자주 아니겠습니까?

1세기 전 태프트-가쓰라 밀약(Taft-桂 密約)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준 미국, 분단의 책임, 광주항쟁을 야기한 전두환 독재를 지지해주었던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탈미(脫美)가 우리에게 감성적으로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국력이 상승하고 있는 이때에 탈미친중(脫美親中)을 하나의 전략적 선택으로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외교는 감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차가운 계산으로 해야만 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해결해야 할 민족적 과제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민족적 과제는 두말 할 것 없이 북한 동포를 살리고 남북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저는 한 달 전쯤 개성시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남북나눔운동이라는 단체에서 북한 농촌에 주택을 지어주는 사업을 하고 있기에 북측과 상의할 것이 있어서 이 일을 주도하시는 분들과 함께 개성 시내를 방문했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북한 동포들을 보고서 그들의 신장이 우리보다 평균 15센티미터 정도는 작아 보이고 골상(骨相)도 달라져 보여, 이제 완전히 인종까지 달라져 버렸구나 생각하고 깊은 비애감을 느꼈습니다. 가슴 속에 무거운 바위덩어리를 하나 안고 돌아온 심정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저분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하려면 서방 자본의 대량 투자가 없이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곧 서방자본의 북한 유입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휴전선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차를 몰고 개성을 다녀올 때는 저 철조망을 없애버리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데도 중요한 실질적 당사자중 하나가 미국이라는 현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만일 100년 전 태프트-가츠라 밀약의 설움과 1980년대 독재정권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감정에 잡혀 외교정책을 밀고나간다면, 북한 동포들의 고통은 그만큼 더 깊어지고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도 그만큼 험난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중국의 6배 국력을 가진 미국,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서방국가들을 제껴 놓고, 서부개발 때문에 스스로도 자본이 부족하여 외국자본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는 중국에게 대북투자를 주도하게 하면서, 북한동포들보고는 서서히 나아질테니까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옳은 일일까요?우리가 좋던 싫던 상관없이 미국은 세계정치와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심지어는 북한마저도 핵과 미사일로 협박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지난 15년 동안 외쳐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을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일부의 주장이 과연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인지, 하루가 시급한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과연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과거는 과거고 현실은 현실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베트남 지도자들이 통일이후 베트남전쟁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이나 한국을 향해서 과거에 대한 한풀이식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경제발전이라는 국가 목표에 매진하기위해 미국 자본, 한국 자본을 끌어들이기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과거의 한을 품어 안으로 안으로 감추는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주(自主)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봅니다. 소극적인 의미의 자주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자주는 강대국과의 동맹과 상호배타적인 관계에 있다고 상정하고 강대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야 자주가 강화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러한 개념을 한미동맹에 대입해 본다면 한미동맹을 냉전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부과된 것으로 바라보고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관점이 될 것입니다. 저는 19세기말 저항민족주의나 1980년대 반독재반미의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주의 개념이 바로 이러한 소극적인 의미의 자주라고 봅니다. 특히 북한이 더 이상 안보위협이 아니라는 인식과 그렇기 때문에 동맹의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이러한 생각의 기초를 이룬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자주관은 두 가지 관점에서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한미동맹은 냉전적 상황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었으며 바로 그러한 선택이 가져다 준 혜택인 안정적인 안보환경에서 우리의 경제발전과 민주정치의 실현이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안보전략 하에서 우리의 노력과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확보한 경제발전과 민주정치라는 가치는 우리 현대사의 귀중한 성과이며 미래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중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소극적 자주관은 우리 현대사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현재는 냉전 과거에서 탈냉전 미래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상황이지, 이미 탈냉전 미래를 달성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천여 문의 북한 장사정포가 서울을 겨냥하고 있고 북측 협상대표들은 심심치 않게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대북포용정책의 결과 남북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에는 아직도 남북간의 신뢰수준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이 냉정해야 될 객관적 현실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되면 정말로 일을 풀어나가기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주 개념은 한 국가가 세워놓은 국가 목표를 얼마만큼 잘 달성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파악됩니다. 우리보다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그들과의 관계를 활용하여 우리의 국가 목표, 민족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주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맹을 해체해서 아무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 돌입했다하더라도 정작 우리가 원하는 국가목표를 달성할 수단이 없어져버린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자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등이 고귀한 가치임에 틀림없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난에 빠져버린 평등은 공허한 수사(修辭)에 불과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외국의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정의되는 자주를 아무리 많이 구가해도, 정작 미래의 국가목표를 달성할 아무런 수단도 주어지지 않고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적극적 의미의 자주로서 국제정치의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통일시의 헬무트 콜 (Helmut Kohl) 총리의 대미외교입니다. 콜 총리는 당시 미국의 부시대통령과의 긴밀한 외교를 통해 주변국의 독일통일에 대한 반대를 막아냈습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직후 영국, 프랑스, 이태리, 소련 등은 독일통일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국제무대에 앞장서서 나서서 독일통일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주변국이 반대를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갔습니다. 경제적 지원으로 소련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미소간의 모든 협의내용을 샅샅이 독일에게 일러주고 독일이 어떻게 통일해나갈 것인지 세세하게 상의함으로써 서독을 도왔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민족통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적인 적극적인 의미의 자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자주가 아니겠습니까? 국제정치에서 힘의 진공상태란 존재하지도 않고 상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 힘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중요한 것은 타국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유리하냐를 냉정하게 계산하고 따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고기가 연못의 물이 더럽다고 밖으로 튀어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러운 물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그 물 속에서도 적응하여 더 힘세어지도록 체질을 바꾸고 그 안에서 생존하는 법칙을 익히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했던 독일 슈뢰더총리의 대미외교를 보면서 정치는 타이밍(timing)의 예술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대북정책에 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0여 년 전부터 포용론자이고 지금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탈냉전의 세계사적 추세에 맞추어 남북간에도 화해협력의 정신에 따라 민족통일의 기반을 서서히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남북협력과 포용정책을 우리가 주도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항상 지침으로 삼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방법과 과정이 세계사의 흐름에, 그리고 세계사회에서 존중받는 가치에 부합되어야한다는 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남북이 함께 길을 잃고 세계사회의 미아(迷兒)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 이래 세계사에서 하나의 법칙이 되어버린 것이 바로 사회주의체제가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해서 자체전환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망하게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경우도 이러한 세계사적 법칙에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경제협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돕는 일이 되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을 점진적으로 북한이 실현하는 방향으로 우리 정부는 꾸준히 노력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2003년 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DJ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대북정책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upgrade) 되었어야 했습니다. 사실 현 정부 초기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에게 불법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했을 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추진할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기는 어쩐 일인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고 새 정부의 포용정책은 DJ정부 때의 포용정책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되자 북한은 남쪽이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큰소리치면서 지원을 받아가고, 급기야는 "남측이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으니 대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까지 와버렸습니다.시장원리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도 북측의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남북간의 채널을 통해 비공개적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우리의 입장을 수시로 명확히 전달하며 행동의 변화를 요구해왔어야 했다고 봅니다. 물론 과거 북한의 행동패턴을 고려할 때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을 진지하게 해왔더라면 북한이 우리를 지금처럼 우습게보지도 않았을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도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겁니다. 아마도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도록 설득하는데 있어서도 훨씬 입지가 좋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원칙 있는 포용정책만이 지속가능한 포용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원칙이 서지 않으면 국민의 공감대와 지지가 형성되기 힘들 것이고 이는 포용정책의 지속을 위한 국내정치적 지지기반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어야 그들로 하여금 대북포용정책에 동참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경제의 피폐상과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고려할 때 한국이나 거기에 더해 중국의 투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서방 자본이 북한으로 유입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동반포용정책이 되어야만 북한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반포용을 유도하려면 우리부터 원칙 있는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해야만 합니다.혹자는 북한이 경제개혁을 추진하면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을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저는 한국 정부를 비롯하여 서방 국가들이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70년대 박정희 경제발전모델을 채택하도록 설득해야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경제는 개방하여 시장원리를 도입하되 국내정치적으로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통제하는 것이 과거에 자유민주주의까지 경험했었던 한국이나 중남미국가들에서마저 상당기간 가능했었다는 점을 설득하여 시장원리의 도입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먹고사는 문제라도 해결하여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 정치, 경제 모두 희망이 없는 현 상태를 지속시켜나가는 것보다는 윤리적으로 나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해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북한은 아직도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북한이 핵을 경제, 외교, 안보적 지원과 맞바꿀 의사가 있었다면 2004년도 6월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해법을 마련해 제안했던 직후, 또는 2005년 9월 4차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미국에게 협상의지를 알리고 협상에 진입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카오의 한 은행에 묶여있는 2,400만 달러를 풀겠다고 수백 배의 경제지원과 외교 안보 이익이 가능할 수도 있는, 더 나아가 북한전체의 사활이 걸린 6자회담을 방기하는 것도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물론 미국의 태도가 유연하지 못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을 협박하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협상의지를 표명했더라면 미국의 라이스(Rice)장관이나 힐(Hill) 차관보 같은 대화파들의 입지가 국내적으로 더욱 강화되어 협상이 가능했었을 것입니다. 북한도 안보 위협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911이후 미국도 테러리스트 손에 핵 물질이 넘어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인식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나라의 안보든 그것은 상대적인 개념이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더구나 동북아와 같은 국가 상호간에 불신이 높고 불안정한 국제정치 상황에서 내가 "절대적"인 안보를 추구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국제정치의 속성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방어적 목적에서 절대적인 안보를 확보하기위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아도, 상대방은 그것을 공격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 위협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른바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라고 하는 국제정치의 속성입니다. 결국 적당한 수준에서의 "상대적 안보"를 추구하면서 경제, 외교상의 이득과 안전보장을 받아내는 것이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의 대북 메시지는 다름이 아니라 북한이 그러한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데에 모아졌어야 했습니다.

4. 통상전략의 문제

1980년대 한국의 사회과학계를 풍미했던 이론이 종속이론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주변에 해당하는 저발전 국가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중심부의 세계자본의 운동논리에 따라 경제,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왜곡되어 자율성을 잃고 선진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저는 당시 유학을 가서 국제경제학 교과서를 읽던 중에 한국이 경제발전의 성공사례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종속이론이 풍미하는데 서방 학자들의 눈에는 종속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즉 주변국 저발전 국가도 하기에 따라서는 고속성장을 할 수 있다는, 첫 번째 사례로 등장하는 것이 한국이었기에 너무 역설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는 반대급부가 있었기는 하지만 우리가 후손들에게 자랑할만한 유산입니다. 제3세계 후진국에서 경제규모로 세계10위에 올라선 것이고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의 희생위에 이제는 정치의 민주화까지 이룬 것은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그러한 오늘날을 있게 한 한국의 대외통상전략의 핵심은 점차적으로 진행되어온 경제의 세계화 추세를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세계화의 물결을 적극적으로 타고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화의 덕을 가장 많이 본 나라를 들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일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의 핵심이 수출주도형 발전전략이었고 이는 갈수록 개방화로 나아가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땅도 좁고 국내시장 규모도 협소하며 석유 한 방울 안 나고 자원도 척박한 나라입니다. 그러한 주어진 여건에서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살아남는 방법이란 고급인력을 길러내 기술과 상품혁신을 이루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길밖에는 없었습니다.그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모델이 되는 나라가 있다면 아마도 네덜란드가 아닌가 합니다. 네덜란드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유럽의 작은 나라이지만 유럽대륙에서 통상과 물류, 금융의 중심 국가로 높은 소득을 올리며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거대한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로 둘러싸인 우리의 입장에서 한국이 동아시아의 네덜란드가 될 수 있다면, 작지만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통상, 물류, 금융의 네트워크 안에 북한까지 품어 안아서 그들의 경제적 재건까지 돕는 것이 우리의 희망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 정부가 추진해온 동북아 중심전략의 핵심이라고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동북아중심전략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고 경제적, 기능적 개념입니다. 특히 교통 통신의 발달로 지리적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별로 중요한 경제 변수가 아닌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한미 FTA협상을 놓고 찬반논쟁이 치열합니다. 반대논쟁 중의 하나는 동북아중심을 추진하던 현 정부가 왜 갑자기 한미FTA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인데, 그것은 동북아중심이라는 개념을 지리적 또는 정치적으로 해석한 결과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저는 동북아의 중심이 되는 일이 왜 한미FTA와 충돌된다고 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동북아 중심이 되려면 동북아와 미국간의 경제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미FTA가 되어야하고 그렇게 될 때 서로 상승작용과 시너지 효과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한미간의 FTA체결은 그동안 한국이 추진해왔던 세계화의 파도타기전략의 맥락에서 바람직한 전략적 선택일 것입니다. 어차피 국내시장의 협소성과 자원의 부족을 고려할 때 한국은 개방된 세계를 상대로 뻗쳐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동아시아의 중심, 허브(hub)를 추진한다는 것도 경제의 세계화의 파도를 적극적으로 타겠다는 것이고 그러한 맥락에 한미FTA도 부합된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의 경쟁력을 금융, 서비스 산업부문에서 강화함으로써 동북아의 허브 역할을 할 역량도 키워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될 때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와 동북아경제를 연결시키는 연결고리 역할도 담당할 수 있을 것이고, 세계 속에서 한국경제의 비중과 위상은 한 단계 격상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 경제는 19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로 농업개방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개방은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가져왔지만 개방시대에 걸맞게 경제의 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한-칠레 FTA가 체결되어 발효되었지만 우리 농업 부문의 피해는 우려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던 대신 칠레로의 공산품 수출은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동북아 중심을 계획하고 세계화의 파도타기 통상전략을 말하면서도 FTA체결의 추세에서는 오히려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이제 겨우 세계경제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비마다 그러했듯이 수많은 논란과 우려가 한미FTA에 대해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우리는 김대중 정부가 1998년 일본과의 문화개방을 과감하게 추진했을 때 수많은 우려와 반대가 있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한류(韓流)의 파도가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세계 도처로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갈 때만, 우리의 저력이 드러나고 활로가 열린다는 가장 분명한 교훈을 최근 한류현상으로부터 읽고 있습니다.

한미FTA를 제가 찬성하는 또 다른 이유, 아마도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남북한 통합에 대비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절대적인 과제,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인 과제는 앞에서도 이야기한 북한문제의 해결입니다. 북한문제의 핵심은 경제문제입니다. 북한의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국 서방자본이 도입되고 북한 경제가 세계경제로 편입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북한으로의 서방자본 유입과 북한경제의 세계경제 편입의 디딤돌을 만드는 일이 바로 한미FTA라고 생각합니다. 한미FTA는 경제적인 의미에서 미국을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일입니다.

냉전시대에 미국 군대를 끌어들여 안보를 확보했듯이, 미국의 자본 투자를 한반도 안으로 끌어들여 한반도 경제통합과 탈냉전을 유도해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미FTA를 통해 한국경제의 투자여건이 개선되고 자본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며 경제의 틀이 선진화된다면 그것은 곧 대북투자를 위한 한미간 파트너십이 더욱 강화될 뿐 아니라 미국이외의 서방자본의 도입까지 유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지한 협상을 통해 미국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물자를 한국산으로 간주해주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대북정책을 미국이 끌어안아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FTA가 체결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핵 문제도 해소되고 한미경제 간의 연결고리가 더욱 강화된다면 미국 정부는 이를 한국산 상품으로 인정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미FTA 문제는 긴 호흡으로 멀리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결국 한미FTA 체결의 성공여부는 현 정부가 국내사회적 통합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피해를 보는 집단에 대해 어떤 재원으로 어떠한 보상을 지급하여 업종전환과 생계를 도울 것인지를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확실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재정지출의 세세 항목까지 마련하여 피해예상 집단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찬성을 유도해내는 첩경일 것입니다. 둘째로 정작 피해를 보는 계층이 아니라 반세계화, 반미의 이념적 맥락에서 반대를 해오는 집단들을 설득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이들의 공세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직접 한미FTA의 명분과 필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경제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의 청사진에 도달하기까지 우리가 겪어야 할 변화의 과정들을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설명하면서 협력을 구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리더십의 행사가 필요합니다. 셋째로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은 공개하기 힘들지라도 어떻게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결과를 얻어냈는지를 그때그때 국민들에게 알리고 호소하는 진지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미FTA를 통해 이득을 볼 집단들로 하여금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해야할 것입니다. 수출이 늘어나 득을 보게 될 집단들이 침묵하고 무임승차나 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왜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국민 전체를 위해 득이 될 것인지, 피해 집단들의 적응과 조정 과정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세계경제의 대세는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우리 국민들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 역사는 세계화를 약으로 만들어 우리 국가의 활로를 개척해나가는데 한국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가 모두 인정해주는 사실입니다. 많은 논란과 걱정 속에서도 지나온 과거는 우리가 세계화의 파도타기전략에 성공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나라는 세계에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1980년대 종속이론의 세계관, 숙명론적 결정론의 포로가 되어 역사의 기로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제까지 국민들에게 그러한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미래지향적인 청사진과 세계관을 심어주는데 과연 성공했는지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혹시나 경제문제에 대해 지나친 이념지향성을 가지고 접근해서 국민들의 시야를 오히려 안으로만 돌리도록 만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5. 맺음말

세계는 이미 하나의 개방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요즈음 한국의 젊은 주부들은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에 보낸 다음 인터넷으로 지난 밤 뉴욕 주식시장의 흐름을 살펴본 뒤 한국의 주식을 사고파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한국 금융기관들의 주식의 60%이상이 이미 외국인 소유일 정도로 한국은 세계경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 저쪽 끝에서 벌어지는 중동 분쟁이 국제유가를 80달러가까이까지 올려붙여서 한국에 사는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북한 미사일의 발사가 UN 안보리와 G8 정상회담의 의제가 되어 논의됨으로써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화되어버린 탈냉전 세계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준전시상태로 남북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상황 속에서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10위가 되었고 우리의 혈육인 북한 동포들은 지금도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입니다.그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이 항구적인 평화를 한반도에 정착시키고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 우리 한국의 국가 목표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21세기 오늘날 현실에 걸 맞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발상에 기반하여 안보와 통상전략이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1세기 전 구한말이나 1980년대 반독재투쟁시의 세계관과 발상과 의식, 그리고 그것에 뿌리를 둔 정책으로는 결코 평화정착과 번영 속에서 우리 민족을 통합하는 과제를 풀지 못하고 밝은 미래를 도모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정말 우리 스스로와 세계를 바라보는 의식과 발상이 변해야 될 때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여기 계신 교장선생님들께 당부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20-30년 후 한국의 미래를 담당할 중고등학생들에게 민족사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세계를 바라보는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눈을 길러주시기 바랍니다. 일제강점부터 시작된 잘못 꿰어진 역사의 흐름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만, 그러한 속에서도 우리가 세계 수준의 경제발전과 민주정치를 이루어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해주십시오. 세계에 그런 민족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은 지금의 일부 기성세대들처럼 한 많은 과거사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우리 국민들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이룩해낸 업적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시고 그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그들이 우리 민족의 숙원인 민족통합을 성공적으로 달성해낼 수 있도록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주십시오.또한 우리는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국제정치와 국제경제의 흐름을 꿰뚫어 알고 그것을 기초로 우리 민족의 생존전략을 세워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미리 익혀나가게 만들어주십시오.

한국은 세계 속에 있고 세계는 곧 한국인들의 삶의 터라는 것을 알아 세계시민으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들도 배워 알게 만들어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의 사고와 기상이 세계로 세계로 뻗쳐나가게 자극하는 교육을 실현해 주십시오. 그래서 세계사 속의 한국의 자랑스러운 주역들이 되어가도록 키워주십시오. 그것만이 우리 민족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임민혁기자 lmhcool@chosun.com
입력 : 2006.07.25 00:28 12' / 수정 : 2006.07.25 15:56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