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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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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달플 때는 어려운 도전 끝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약’이 된다. 그런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왜 이 정도 가지고 엄살 떨었나’
싶어서 골치 아픈 일들도 훌훌 털어낼 수 있다. 지난 주말에 찾아 읽은 책이 미국의 유명한 여성 산악인 알렌느 블럼의 ‘안나푸르나’였다.
몇년 전 미국 연수 때 지도교수가 ‘리더십의 기술’이라는 강의에서 난데없이 “여러분, 1978년에 미국 여성들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지 압니까?”라고 물었다. 올라가? 도대체 어디를? 어리둥절해하는 학생들에게 교수는 ‘해발 8000m’라고 말했다.
안나푸르나를 정복한 미국의 여성 산악인들 이야기였다. 1978년에 블럼은 여성 대원 13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이끌고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인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남녀 통틀어 미국인으로서는 최초였다. 등반 중 대원 두 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블럼 원정대가 제일 먼저 맞닥뜨린 도전은 산이 아니었다. 눈보라도, 눈사태도 아니었다. 편견이었다. 13명의 대원들이 안나푸르나
등정에 나서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다. 그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먼저 ‘저들이 해낼 것이다’라는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후원자를 구할 수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13개팀이 안나푸르나에 도전해 4팀만이 정상에 서는 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가까스로 후원금을 모아 블럼 원정대는 마침내 안나푸르나를 정복했다. 그들은 ‘여성들에게는 위험한 등정을 하는 데 필요한 힘과 기술과
용기가 부족하다’고 봤던 그 시대의 ‘편견’도 동시에 정복했다. 블럼은 그의 책에서 ‘안나푸르나에 오르고 말겠다’는 열망이 고난의 행군을 가능케
하고 대원들 간의 갈등을 잠재우고 개개인의 마음 속에 깃든 회의를 일소시켜 주었다고 했다.
블럼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안나푸르나에는 모진 비바람이 불고 눈사태가 일어나고 가파른 비탈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이 장애물을 견뎌냈고 정상에 올랐다. 당신들도 당신 인생의 안나푸르나를 찾아 오르고 올라서 꼭 정상에 서는 데
성공하시길….’
많은 사람들이 블럼의 체험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어느 대학의 조정팀은 배에 ‘안나푸르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 여성 우주비행사는 어린
시절 블럼에게서 “어려운 목표를 세워 추구하라는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블럼의 평범한 결론에 감동하여 ‘낙관적인 세계관(?)’을 회복하고 운동을 하러 갔다. 도대체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처음
시도해본 것이 섭씨 40도의 후텁지근한 실내에서 하는 새로운 요가다. 30분쯤 지나니 덥고 힘들어서 도저히 못할 것 같다. ‘쓰러지기 전에 얼른
도망가자’는 생각만 든다. 슬슬 눈치를 보고 있는데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 힘들지요? 나는 이런 운동을 할 만큼 체력이 강하지도, 정신력이 강인하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요?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들이 강하지 않아서 힘든 게 아니랍니다. 더 유연하지 못하고 더 긴장을 풀지 못해서 더 힘든 거예요.”
마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웃음에 긴장이 풀어져 나머지 한 시간을 즐겁게 운동할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블럼이 한 이야기도 그것이었다. ‘마음의 산’이 ‘실제의 산’보다 더 넘기 힘들다는 것! 때로는 유연함이 강인함보다 더
강하다는 것!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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