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모교(母校)

鶴山 徐 仁 2006. 6. 20. 16:04
날개를 활짝 편 비둘기가 '中'자를 받들고 있는 모양으로 자유와 평화가 넘치고 보다 높게 비상하는
우리들의 기상을 나타냅니다. 1949년 5월 5일 당시 본교의 미술 교사였던 나재수 선생님께서 도안하셨습니다.
1. 고상하고 명랑한 품격을 가지자.

2. 건전하고 확실한 지식을 가지자.

3. 튼튼하고 깨끗한 신체를 가지자

1절
비슬산 팔공산을 앞뒤로 두고 달구벌 옛 터전에 고요한 이 땅 드 높으게 솟은 추녀 우리의 학원 드 높으게 솟은 추녀 우리의 학원 찬란한 이 이름 뚜렷한 이 자리 부중의 젊은이들 씩씩하구나.

2절
진리를 탐구하고 문화를 열고 단단한 바탕 위에 힘은 자란다. 어느 때나 자랑되는 우리의 학원 어느 때나 자랑되는 우리의 학원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앞으로 부중의 젊은이들 힘차게 나아가자.

3절
비단에 수를 놓은 이 땅 이름은 세계에 빛내리라 피끓는 정열을 가슴속에 이어받은 선인의 재주 가슴속에 이어받은 선인의 재주 우리는 일꾼들 희망에 넘친다. 부중의 젊은이들 만세 만만세.

 

 

교목은 담쟁이로 "질서 있는 학교 노력하는 학교"를 상징합니다.
교화는 도라지로 "앞서 가는 학교" , "전통에 빛나는 학교" , "남녀공학(남자주색, 순백색)"을 상징합니다.
교조는 비둘기로 평화로운 학교 발전적인 학교를 상징합니다.

 

 

1946.10.15 대구사범대학 부속중학교로 발족(4개학년, 8학급 편성)
초대 신현길 교장 취임
1947.3.21 제1회졸업식 거행
1948.6.9 6개 학년 완성, 12학급
1948.9.1 학제 변경에 의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
1951.9.12 신제 중학교(3년제)로 개편됨.
1952.5.28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로 개칭
1958.3.31 학칙 변경에 의하여 12학급이 15학급으로 증가됨.
1966.9.17 학칙 변경에 의하여 21학급으로 증가됨.
1969.6.24 도서관 준공
1972.2.1 화재로 인하여 본관 12교실 소실
1972.9.20 신축 본관 교사 준공식 거행
1976.10.15 개교 제 30주년 기념식 거행 '30년사' 발간
1977.9.30 제8회 전국 중.고 제초 대회 남중부 우승
1980.5.3. 학력 우수 문교부 장관상 수상
1981.3.2 배구부 창단
1981.9.1 교조(비둘기), 교목(담쟁이), 교화(도라지)제정
1983.3.18 춘계 전국 남녀 중.고등학교 배구 연맹전 1위
1983.5.12 제12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배구 1위
1983.6.11 제19회 중앙배 쟁탈 전구구 배구 대회 중등부 1위
1983.7.18 제18회 전국 우수 중.고 배구 대회 중등부 1위
1991.8.23 제13회 전국 학생 발명품 경진 대회 우수 학교상 수상
1995.12.29 학교 경영에 대한 교육감 표창(학교 표창)
1996.10.15 개교 제50주년 기념식 거행
1999.12.20 신축 교사 준공식 거행
2000.5.30 제 29회 전국 소년체육대회 배구 준우승
2001.3.2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로 교명 변경
2001.8.17 제23회 전국학생발명품대회 대통령상 수상
2003.3.1 제13대 정화자 교장 취임
2003.5.19 제58회 전국남녀종별배구선수권대회 준우승
2003.12.30 교육활동 유공학교 표창(동부교육청교육장)
2004.2.11 제59회 졸업식(졸업생 총 19,853명)
2004.3.2 2004학년도 입학식(남 178명, 여 77명, 계 255명)
2005.2.15 졸업식(졸업생 총 20,124)
2005.3.2 2005학년도 입학식(남183명, 여 73명, 계 256명)
2005.12.7 교내 자율장학 우수학교 표창(대구광역시교육감)
2006.2.16 제 61회 졸업식 (남 172명, 여 79명, 계 251명)

 

 

 

 

  모교의 뿌리

 

◈ 개교경위 ◈

 

  대구시 중구 대봉동 60번지 31,474㎡의 본교 부지는 일제치하 왜곡된 역사 속에서 영남을 비롯한 三南 각 지방의 수재들이 민족의 애환을 안고 성장해 간 터전이다.

  1923년부터 경상북도 도립 사범학교란 명칭 아래 6년, 1929년부터는 관립대구사범학교로서 16년간, 금세기를 밝히며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해 왔으니, 감격의 8·15 해방을 맞이한 이듬해인 1946년 본교가 개교하기까지 일본 식민지 정책의 매운 비바람에 시달이며 실로 풍운의 歷程을 겪어 왔다.

  당시 이 터전의 젊은 주인공들은 타중·고등학교보다 한 달 앞선 특차 선발고사를 거친 우수 집단으로서, 뭇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수업료 전액 면제 및 졸업과 동시 직장 보장, 전원 기숙사 입사 등 혜택이 많아서 일제가 획책해 놓은 빈궁과 암흑 속에서도 각지에서 모여든 재능 있는 학생들로 형성된 집단이었다.

  日人들의 강압에 의한 황국신문화 교육의 시대였으나 처참하게 억눌린 배달의 젊은 혼은 1940년대 일제말기에서, 조직적인 항일 학생운동으로 서는 가장 큰 사건으로 볼 수 있는 '대구사범학교 항일 학생의거 운동'을 벌여 靑史에 창연히 빛나고 있으며, 박정희 대통령(심상과 4회, 1937년 졸업)을 위시하여 김영희(전 경북대학교 총장), 이성조(전 경북도교육감), 김판영(전 경북도교육감) 등 많은 학자, 교육자, 행정가 및 세계적 과학자들이 바로 이자리에서 修學하고 성장한 사실은 이 고장의 자랑이요, 본교의 영원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의 장으로서 76여년을 넘긴 이 유서 깊은 터전에는 1924년 작업 시간에 실같은 가지를 처음 심었다는 담쟁이가 그 불굴의 생명력으로 70여 년간 무성희 자라서 '푸른 담쟁이 학원'이란 본교의 특징을 이루고 있으며 해방의 감격과 함께 유서 깊은 이 터전과 校舍를 그대로 이어받아 명예와 긍지를 지니고 개교한 본교는, 특차 선발의 우수 집단으로 긍지를 품고 '비둘기 전당'을 형성하였다.

 

◈ 우리나라 남녀공학의 효시 ◈

 

1945년 해방과 함께 우리 나라에도 서구 민주주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당시의 교육사조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사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교육의 기회균등, 남녀동등교육, 개성존중의 원리들이 고창되었다.

개교 당시 본교의 재학생은 전신인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1,2,3 학년 2학급씩으로 6학급 남학생 뿐이었는데.여기서 본교는 교육연구상의 사명으로 새로운 교육연구를 기도하게 되었고 그 중 한 과제로서 남녀공학제 채택론이 대두되었다.

수차에 걸친 직원회를 통하여 채택여부를 심의하였는데 선봉의 위험성, 남녀간의 악영향, 우리나라 현실과의 불합리성이 대두되었지만 그러나, 마침내 공학제가 채택되어
1946년 9월 신입생을 남녀각 1학급씩 모집함으로써 우리 나라 최초의 남녀공학은 그 제1보를 내딛게 되었다. 응모자는 남녀 공히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1950년 6.25동란이 발발하여 가교사, 노천수업중 피난여학생 백여명이 집단편입하였고, 이듬해 학제변경에 따라4년제 이상의 남학생은 부고에 여학생은 경북여고에 각각 집단편입하고 3년제로 재출발하게 된 부중은 '52년이래 여자 2학급을 모집하게 되었다.

한편 부고에서는 1966년 9월17일 학칙을 일부 변경하여 여학생2학급을 신설하게 되었다.그후 1993년부터 문교부 인가에 의하여
중 남녀21학급 ,고 남여 30학급으로 증설되었다.

< 초창기 >

< 1980년대 >

< 1990년대 >

 

< 출처 : 총동창회 홈페이지 >

 

 

 

 

 

 

 

 

 

 

 

 

 

 

학교상징 | 우리학교를 대표하는 상징들을 소개합니다.

     

 교화 : 목련

  이른 봄 우아한 모양으로 핀 목련은 향기가 독특하다. 목련처럼 고결한 품위와 정신을 이어받자          

        -고결한 품위-
 


교목 : 느티나무

 잎이 무성한 그늘이 풍만하여 어린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준다

        -이웃에 대한 봉사-

                                     

         마크

                   ㅅ:사람을 상징

                                      

                   ㅇ:이서의 머리 글자

                                      

                             -우주 공간을 향한 창조, 개척정신 -

 

 

 

 

 

교가 | 우리학교의 교가를 소개합니다.



 

 

학교 연혁

. 1927. 6. 2    이서공립보통학교 설립인가

. 1927. 10. 22 이서보통학교로 개교

. 1941. 3. 1    이서공립국민학교 6년제 교육령 개정

. 1981. 3. 1    이서병설유치원 개원

. 1993. 3. 1    대전국민학교 통폐합

. 1996. 3. 1    이서초등학교로 교명 변경

. 2003. 9. 1    제17대 박동한 교장 부임

. 2006. 2. 21  제76회 졸업식(총 졸업생 수: 7,775)

연구 시범 학교 운영

.1987. 9. 1   체육부 지정 농촌형 급식학교

.1988. 3. 1  ~ 1990. 2. 28 도지정 국어과 연구 학교

.1991. 3. 1 ~ 1992. 2. 28 군지정 교육방송 시범학교

.1992. 3. 1 ~ 1994. 2. 28 경상북도교육청 지정 급식 시범학교

.1997. 3. 1 ~ 1999. 2. 28 경상북도교육청 지정 열린교육 시범학교

.2000. 3. 1 ~ 2004. 2. 29 경상북도교육청 지정 교육과정 운영 시범학교

.2005. 1. 31   전국 100대 교육과정 최우수 학교로 선정 

 

 

 

 

 

 

 

 

 

 

 

 

 

 

 

鶴山 ;

지나 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오늘의 자신에게 가장 깊이 각인되어 일생의 진로를 결정 지어준 운명적인 역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형성되어진 것 같다.

현재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아호(雅號)인 학산(鶴山)도 초등학교가 소재하고 있는 청도군이서면학산리의 학산을 의미하는 것이고, 비록 학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중학교 교표의 상징도 비둘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 또한 30년 간의 긴 세월을 공중근무로 지낸 한 세월과 어쩌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때로는 두루미나 비둘기의 상징 속에서 자라지 않고, 조류 가운데서도 맹금류인 독수리 등을 상징하는 학교에서 수학 했었다면 육군 항공단이 아닌 공군의 비행단에서 근무하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 보았답니다.

이서국(伊西國)의 옛 터전에서 자라나 담쟁이로 우거진 일제 점령기의 대구사범학교 후신인 당시 부속중학교에 진학하여, 꿈 많은 학창시절을 보낸 먼 옛날만 같은 추억을 되새기며 작년 여름 토론토대 김박사와 모교를 찾아가 이젠 실제 수업은 하지 않고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옛 본관건물과 건물 앞 뜰에 지금은 역사의 뒤 안 길로 가신 이곳에서 수학한 선배이신 고 박대통령에 대한 애석한 마음을 담아 동창생들이 세워 놓은 기념비를 읽으며, 함께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꼈습니다. 

그나마 도시의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에 밀려 모든 학교들이 외곽으로 옮겨 가버렸는데 홀로 모교는 지금 껏 그래도 잘 버티어 나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 했었는데 근간 소식을 들으니 학교 옆에 고층으로 건축되고 있는 아파트군에 밀려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얘길 들으니, 벌써 현역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인양 서운한 감정에 젖어들게 됩니다.  

늘 마음 속으로는, '모교의 영원하여라!'고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