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金大中씨와
친분을 유지했다. 과거 그와 가까웠던 것을 따진다면, 나는 4700만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가 일본에 갔다가
납치되어 生死(생사)가 불투명하던 때, 나는 다른 누구 못지않게 통분함을 느꼈고, 진심으로 그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원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1980년 초 金大中씨가 부인과 함께 워싱턴 교외에서 亡命(망명) 아닌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몰래 그들 부부를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돌아왔다. 만일 내가 그를 찾아간 사실이 당시 軍部(군부) 정권에 알려졌다면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러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조국 민주화의 꿈을 안고 어떤 난관도 이겨 낼 각오가 단단하던 당시의 나로서는 金大中씨를 만나 위로·격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金大中씨는 2002년 선거를 앞두고 현재 수감 중에 있는 權魯甲(권노갑)씨로 하여금 내 집을 방문케 하고 민주당으로 입당하면서 정계에
복귀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타진해 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金大中씨는 민주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의 깊은 속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가만 지켜보니 親北容共(친북용공)으로 변신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버릴 결심이 되어 있지만, 그 반면에 공산화나 赤化(적화)통일을 두둔하거나 그 방향으로 조국을 몰고 가는 자는 誰何(수하)를
막론하고 결사적으로 투쟁할 각오가 확실한 사람이다. 金大中씨 아니라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헌법을 접어 두고 다른 길로 가는 자를 용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무슨 흉계를 꾸미겠다는 것인가? 나는 오는 6월에
金大中씨가 기차를 타고 북한으로 다시 가보겠다는 것은 정말 용서 못 할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 6월13일 老軀(노구)를 이끌고 金正日을 찾아가 껴안고, 심한 표현으로 하자면 대한민국을 北의 인민공화국에 팔아넘긴 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짓을 하면서 그해 6월15일 이른바 南北정상회담을 마치면서 발표한 언어도단의 합의서를 우리에게 안겨 준 金씨가 이제 나라를 망치는 데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또 찾아가서 무슨 흉계를 꾸미겠다는 것인가?
국민의 血稅(혈세)를 그렇게 많이
金正日의 호주머니에 넣어 주고, 또 무엇이 부족하여 다시 老軀를 이끌고 거길 다시 찾아간다는 것인가? 정말 치가 떨린다.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
金大中씨 1차 訪北(방북)의 동기나 경위, 결과 등 그 전모는 아직 드러난 바 없다. 2000년
訪北 당시, 왜 6월12일에 떠나기로 되어 있던 訪北 날짜가 하루 연기되었는지, 金大中·金正日의 비밀회담 내용은 무엇인지, 金大中씨 자신은
그것이 성공적이었다고 확신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명목이야 어찌되었건 美貨(미화)가 얼마만큼
金正日에게 주어졌는지, 「자살이냐 타살이냐」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 鄭夢憲(정몽헌)씨는 왜 社屋(사옥)에서 떨어져 비극적 최후를 맞아야만
했는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모든 어두운 일들이 金大中씨의 1차 평양 방문과 얽혀 있는데, 국민과 언론이 과거의 일들을 쉽게
망각한다고 하여 또다시 이런 엄청난 계획을 세우는 것인가?
2000년 6월의 金씨 訪北을 취재키 위해
수행했던 연합뉴스의 최선영 기자의 보도에 의하면, 당시 金正日은 金大中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민들은 대단히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와서 보고 알겠지만 부족한 게 뭐가 있습니까』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외국 수반도 환영하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갖고 있습니다. 金대통령의 訪北 길을 환영 안 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예절을 지킵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서 인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金대통령의 용감한 訪北에 대해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 신문과 라디오에는 경호 때문에 선전하지 못했습니다. 남쪽에서는 광고를 하면 잘 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實利(실리)만 추구하면
됩니다』
6·15 선언은 「北으로의 흡수통일」을 의미 이런 외형적인
환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남북공동선언」의 내용이다. 그 선언문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남북頂上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하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아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에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이 공동선언문을 한번 따져 보자. 1항에서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끼리 서로 힘을 합쳐」라고
하는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통일이 자주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면, 北은 왜 스탈린을 등에 업고 6·25 전쟁을 감행했나?
6·15선언 이후 6년 대한민국은 존재이유를 상실했다. 北이
원하는 통일과 南이 원하는 통일의 내용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南과 北의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할 때 「자주적」이라는 말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자주적」이란 反민족적인 남한은 제외하고 「매우 민족적이요 자주적인」 북한의 뜻대로 통일이 돼야 한다는 말로
풀이된다. 솔직히 말해서 金日成이나 金正日의 의식 속에는 남한은 성스러운 조국통일사업에 끼어들 자격도 없다고 풀이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더 큰 문제는 2항에 있다.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했는데, 이런 중대한 문제를 이렇게 쉽게, 간단하게 정리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남측의 연합제案」이란 金大中씨가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온 「3단계 통일방안」인가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에 명시된
조항과는 거리가 먼 것이고, 어디까지나 金大中 개인의 주장에 불과하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는 직분을 가졌다
하여도 헌법 위에 설 수는 없는 법이다. 국민투표를 한 바도 없고, 국회를 통과한 바도 없는 金大中씨 개인적인 생각의 소산인 연합제案을 어떻게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案」과 공통성이 있다고 간주하고, 그런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겠다고 합의한단 말인가? 언어도단이 아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