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물가가 일본보다 싸다는 ‘상식’이 깨지고 있다.
전반적인 물가는 아직 일본이 비싸지만 일부 물가는 한국이 오히려 더 높다. 특히 골프, 스키, 외식 등 고가(高價) 소비 분야일수록 이런 모습이 두드러진다.
○ 일부 물가는 한국이 더 비싸
일본 도쿄에서 5년간 지사장을 지내다가 지난해 귀국한 S사 이모 팀장의 한 달 가족생활비는 350만 원으로 일본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팀장은 특히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할 때마다 한국 음식 가격에 ‘심한 거품’이 끼어 있다고 느낀다. 일본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네 식구가 식사하는 데 5만∼6만 원이면 넉넉했지만 한국에서는 10만 원은 내야 같은 수준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좀 괜찮다 싶으면 너무 비싸고, 싸다 싶으면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 중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일본 기업 주재원 B 씨의 말도 비슷하다.
“양복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가 너무 비싸 포기했어요. 일본에서는 한국 돈으로 30만∼40만 원에 살 수 있는 제품이 이곳에서는 50만∼60만 원이에요.”
○ 원화 강세도 한몫…관광업계 울상
한일 물가 차이가 줄어든 것은 일본 물가가 최근 10년 이상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친 반면 한국에선 꾸준히 올랐기 때문이다.
2000년 소비자물가지수를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은 1995년 82.3에서 지난해 117.8로 43% 올랐다. 반면 일본은 같은 기간 98.5에서 97.8로 오히려 떨어졌다.
피부로 느끼는 물가 차이가 더 좁혀진 것은 환율 영향이 크다. 최근 원화 강세로 100엔당 원화 환율은 지난해 1월 1005.69원에서 올해 4월 814.84원으로 약 20% 떨어졌다.
이렇다 보니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이 줄고 있다. 올해 들어 4월까지 한국에 온 일본 관광객은 73만336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만4743명(12.5%) 줄었다.
○ 한국 물가에는 거품이 끼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처럼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두 나라 경제력 차이를 감안할 때 양국 물가가 근접해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경제 규모(국내총생산·GDP 기준)가 한국의 7배에 이르는 일본의 물가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 곳곳에 거품이 끼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던 일본산 소비재들이 브랜드를 내세워 한국 소비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라며 “무역 역조가 산업에서 관광으로 확대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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