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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두 분이 모두 의사. 제법 큰 병원을 운영했다. 외할아버지도 의사였으니, 고등학생 노종헌은 “당연히 의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해
고려대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레지던트 마치고 군의관 갔다 오면 집안 병원으로 들어가 보장된 미래를 살 작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회의(懷疑)가 들더라고 했다. “생명을 다루려면 모든 것에 관심과 배려를 해야 하는데, 저는 그게 없었어요. 진짜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나 고민되더라고요.” 연극에 몰두해 보고, 사람들과 문학 얘기도 해 봤다. 그리고 본과 졸업반, 의사 국가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결심했다. 나, 의사 안 한다. 병원을 물려주려던 아버지는 “그땐 정말 때려죽이고 싶었다”고 얼마 전에야 아들에게 털어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냥 저를 허락해줬어요. 그래서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갔죠.” 한국에서 대입 시험 다시 볼 생각도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스턴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회계학 공부를 시작했다. 1996년이었다.
뜻을 거스른 아들…. 그래서 아버지는 달랑 학비만 도와줬다. 가발공장을 다녔다. 동네 태국음식점에서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도 했고,
일식당에서 웨이터로도 일했다. 돈 되는 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때 어릴 때부터 ‘내 꿈은 강남에 카페 차리는 것’이라고 농담처럼 떠들고
다니던 일이 생각났어요. 만약에 내가 요식업을 하려면 근본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일손이 부족한 일식당 주인이
노씨에게 양파 썰기를 시켰다. “메스를 잡았을 때는 그렇게 어색했던 손이 식칼을 잡자 그렇게 자연스러웠어요.” 노씨는 뉴욕에 있는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라는 2년제 요리학교에 입학해 버렸다. 미국에서 가장 큰 요리학교다. 1999년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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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국으로 돌아와 워커힐 호텔 주방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2년 일하고서 지난해 1월 말 자기 레스토랑을 냈다가 경험 부족으로
망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이곳 와인바에 와서 수석조리사로 일한다.
손님들이 음식을 남기면 주방으로 가져와 ‘먹는다’. “왜 남겼을까, 서비스가 부족했을까, 맛이 부족했을까, 와인과 맞지 않았나, 그런 거
분석하고 퇴근해요.” 노씨는 “요리사 공부처럼만 했었으면 훌륭한 의사도 되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럴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삶, 그것만큼 열심이고, 행복하고, 훌륭한 인생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의사가 된 친구들이 와서는 ‘네가 날라리짓 할 줄 알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음식 먹은 다음에는 또 그래요. ‘야, 너 제 길
찾았구나’라고. 그때 정말 기뻐요.” 아버지는 “…먹을 만하네!” 하곤 입을 다무신다. 자만하지 말라는 소리, 그래서 불효를 조금 만회한 것
같아 기쁘다.
낮은 목소리로 조리있게 말하던 이 요리사가 말을 맺는다. “의사 출신 요리사가 아니라,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 먼 길 둘러 온 사람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길을 찾아 떠나서 최선을 다하는 삶. 멋있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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