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파워꼬레아에 제가 연재했던 것을 비밀에 옮겨 놓은 것입니다. 퍼가실때에는 출처와 글쓴이를 반드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출처는 비겐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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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나자프까지 고속진격한 3사단은 보급로를 재정비한 뒤 총공격을 재개, 바그다드 남서쪽 7Km 지점에서 메디나 기갑사단 잔존부대를 제압하고
4월 3일 바그다드로 진격하였다.
여기서 대략적인 수도공략계획을 설명하자면 육군 3보병사단과 1해병사단이 수도를 포위한 뒤 후세인
정권중추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구 500만의 도시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기 때문에 수도로 통하는 주요 간선도로를 제압하면서 후세인의
도주와 증원부대 투입을 저지하는 작전이 실시되었다. 구체적으로 3사단의 배치계획은 바그다드 남부(목표 세인트)에 2여단전투단, 서부(목표
몽고메리)에 3/7기병대대, 북부(목표 타이탄즈)에 3여단전투단, 동부에 1해병사단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4월 4일 2여단전투단이 수도
남서쪽의 사담국제공항(목표 라이언)을 점령하고 여기에 전선작전기지/보급기지를 개설하는 것이었다. 또한 기병대대는 목표 몽고메리, 2여단전투단은
목표 세인트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전보다 먼저 해야할 것은 수도의 이라크군과 민병의 전투력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기갑부대를 이용한
수도중심부의 위력수색은 2여단전투단(데이비드 퍼킨스 대령)이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 작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 소굴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대담하고 무모한 기습작전이었다. 실제로 부대에서는 이 작전을 Thunder run이라고 불렀다. 선더런이란 단어는 베트남 전 때 생긴 용어로
보급로를 적의 기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제병협동부대(중대~여단)가 실시하는 위력수색 및 기습작전을 말한다.
4일 퍼킨스 대령은
선더런 부대로 1/64 기갑대대(에릭 슈워츠 중령)를 선택했다. 슈워츠에게 주어진 임무는 적 배치, 전투력 등을 판단하기 위해 8번 고속도로를
타고 M1전차와 M2브래들리로 이루어진 기갑기동부대로 고속기동을 하는 것이었다. 작전은 출격지점에서 2여단전투단이 포진한 목표 세인트로 진격한
뒤 여기서 북상하여 최종적으로 9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1여단전투단이 점령하는 사담국제공항(목표 라이온)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거리는 20Km.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적 상황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이라크 측에 큰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즉 미 지상군은
도시지역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1/64기갑대대에게 너무나 불리했다. 선더런 부대는
탁 트인 사막을 달리는게 아니라 양측이 주거지와 고층빌딩, 야자나무 등으로 가로막힌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었다.결국 부대는 민병의 매복공격,
테크니컬 기습공격, 자폭공격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슈위츠 중령은 수도에 도착하기 전 겪은 민병과의 격렬한 접근전 경험을 살려 선더런
부대의 편성을 더욱 짜임새있게 구축했다. 무엇보다 숫자가 많은 민병의 기습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근접화력의 증강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병대의 M113공병장갑차를 임시로 이용했다. 차 위에 4~5명의 기관총 사수를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전방위에서 습격하는 적에 대한 감시와
대응을 가능하게 하고 도로를 내려다보는 고층빌딩에 진지를 구축한 화기거점이나 저격수에 대한 감시와 공격이 가능한 결과를 낳았다. (시계제약이 큰
전차와 브래들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이 불가능)
임시로 편성한 테스크포스 팀인 1/64기갑부대는 중대급인 3개 전투팀을 가지고
있었다. 전력은 M1A1 29대, M2A2브래들리 14대, M1064A3 120mm 자주박격포 4문, M113 공병장갑차 3대였다.
※이라크전 개전 당시 3보병사단 편성상황 소개
총병력 2만명이상. 전투차량 247대(1기갑사단 2/70기갑대대
배속 포함)
사단사령부 : 방공대대, 통신대대, 군사정보대대, 현병대대 1여단전투단 : 2/7보병대대, 3/7보병대대,
3/69 기갑대대 (M1A1 58대, M2 93대) 2여단전투단 : 3/15 보병대대, 1/64 기갑대대, 4/64 기갑대대, (M1A1
44대, M2 88대) 3여단전투단 : 1/30 보병대대, 1/15보병대대, 2/69 기갑대대 (M1A1 27대, M2
88대) 항공여단 : 3/7 기병대대, 1/3 항공대대, 2/3 기갑대대 (M1A1 27대, M3 88대) 사단포병 : 1/9,
1/10, 1/41, 1/39 야전포병대대 (팔라딘 54문, MLRS 18문) 공병여단 : 10,11,121,317,937 공병대대
(M9불도저, M113공병장갑차) 사단지원부대 (생략)
*3사단 선봉은 3/7기병대대가 맡았음.
*3/7기병대대
편제 (사단의 정찰, 보안임무를 주로 수행)
-기갑기병중대 3개, 항공정찰중대 3개, 항공작전중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M1A1
27대, M3A2 39대, M1064 120mm 자주박격포 6문, OH-58D 헬기 16대 장비. -기갑기병중대 편제
본부 :
M1A1 M3 각 1대 척후소대 (M3 6대, 병력 30명) 2개 전차소대 (M1A1 4대, 승무원 16명) 2개 박격포반
(M1064 2문) 정찰반 (M88 전차회수차, 트럭 3대)
-기갑기병중대는 각종 부대를 조립한 제병협동부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로 인하여 장거리 위력수색 능력을 보유하게 되어 독립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위력수색이란 적지에 들어가 화력으로 적을 정확하게
탐색하는 것을 말한다.
4월5일 오전 6시 30분, 선더런 부대는 수도로 기동하기 시작하였다. 선두는 로버트 볼 중위의 M1A1이었다. 방탄복을 입은 그는
큐폴라에서 나와 바그다드의 10만분의 1 지도와 GPS를 가지고 기동을 지휘했다. 그러나 군용지도에는 일반적인 표식이나 건물ㆍ시설표기가 없어
위치와 방향을 잡기가 곤란했다.
수분 후 산발적인 사격이 시작되었고 미군은 최초의 표적을 발견했다. 녹색군복을 입은 이라크군
12명이 빌딩에 보였다. 그러나 무기는 벽에 걸어두고 모닝티를 즐기고 있었다. 미군 교전수칙에서는 군복 입은 적에게는 선제공격이 허용되어있었다.
그들이 미군을 눈치채고 건물에서 RPG를 발사했다면 아마도 위험했을 것이다. 미군은 수백미터 거리에서 주포 우측의 M240 6.72mm
기관총으로 이들을 사살했다.
이후 도로 양측과 주변 건물에서 AK, RPG,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RPG는 빨간
공처럼 날아가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머리위로 날아갔다. 선두에서 세 번째 전차가 주포사격 허가를 중대장에게 요청했다. 주포사격은 민간인과 그
시설에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중대장보다 더 높은 상급지휘관의 허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상황은 허가없이 주포사격을 해야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윽고 중대장은 주포사격을 명령했고 전차는 도로를 연하여 24명 정도의 적이 농성하고 있는 빌딩을 발견했다. 우선 레이저 거리 측정기로
거리측정을 하니 610m 정도였고 다목적 고폭탄으로 적을 격멸시켰다. 다른 전차들도 도로상의 벙커나 민병참호를 주포사격으로
격파하였다.
곧 사방으로 교차하는 크로바 형의 커다란 교차점에 도착하였다. 이 주변이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매복에 적합한 장소가
많고 여러개의 도로가 교차하기 때문에 테크니컬 등과 같은 차량이 미군 대열에 기습을 가하기 알맞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미군의 측면에서
테크니컬, 소형 트럭, 택시 등에 탑승한 민병들이 기습을 가해왔다. 달리면서 기관총을 연사하는 것을 물론 도로 측방에 매복해 있던 민병들도
사격을 가해왔다. 전차와 브래들리 장갑차는 기관총으로 도로부근의 민병들을 사살했고 주포로 적 차량과 벙커를 파괴하였다. 전차장은 위력이 큰
12.7mm 중기관총을 연사하여 도로에 연하고 있던 흙벽과 야자나무에 숨어있던 RPG발사팀을 제압하였다. 또한 슈워츠 중령은 M113의 공병에게
빌딩의 창문과 옥상의 적에게 사격을 가하도록 하였다. 해치에 상반신을 내놓고 있는 전차와 브래들리 승무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부대는 차간거리를 50m로 좁히고 시속 15Km의 속도로 기동을 계속하였다. 기동대열을 좁힌 것은 테크니컬이나
자폭차량이 대열 사이로 파고들어와 전차의 후부를 공격하는 일에 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격이 시작된 후 20분만에 디아스 중사의
M1A1이 로켓포에 피격되었다. 차내에는 화재경고등과 비상등이 켜졌고 전차는 정지했다. 디아스 중사는 차체후부의 엔진 그릴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즉시 4명의 승무원을 밖으로 대피시키고 소화를 시작했다. 공적을 세운 민병은 고속도로와 연결된 측방도로에서 지나가는 전차의 후부를
저격한 것으로 보인다. 이윽고 전차의 화염은 연료로 옮겨 붙어 전차 전체로 번졌고 적 사격도 격렬해지기 시작하였다. 민병은 정지한 전차를 집중
공격하였다. 무리를 짓고 있던 민병은 250명 정도였다. 파킨스 대령은 적의 손에 전차를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전차를 파괴하라고 명령하였다.
M1A1을 파괴하는데 사용된 것은 A-10의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 2발이었다.
이후에도 민병의 격렬한 사격 때문에 많은 차량이
손상을 입었으나 전사자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 목표지점인 국제공항에 들어가기 전 희생자가 나왔다. A중대의 스티브 부커 중사였다.
그는 전차의 12.7mm중기관총을 사용할 줄 몰랐다. 그래서 그는 큐폴라에 나와서 M4로 민병을 사살하고 있었다. 그때 적 중기관총이 그를
사살했던 것이다.
그의 유언은 『이 땅에서 죽고 싶지 않아』 였다고 한다.
작전개시 2시간 20분 후,
1/64기갑부대는 수도 진격작전인 <선더런>을 완수하고 사담에서 바그다드로 개칭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손실은 전사 1명, 부상
5명, 전차 1대의 손실이었다. 전과는 차량 50대 이상, 화포 25문 파괴, 민병 300명 이상 사살이었다. 그리고 이라크군 대령 1명을
도로상에서 포획하였다. 대령은 미군의 질문에 『미군은 수도 남쪽의 유프라테스 강에서 정지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바그다드에 미군 전차가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라고 진술했다. 그의 말에서도 보아 이번의 선더런 작전은 이라크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또한
이라크군의 저항은 격렬했으나 대부분 훈련부족인 민병에 의한 기습공격이었고 정규군의 조직적인 반격은 없었다.
*2여단전투단의 선더런 2 참가부대와 점령목표
1> 1/64 기갑대대 (에릭 슈워츠 중령) : 목표 다이안 점령
(무명용사 묘지 및 동물원 등) 2> 4/64 기갑대대 (필립 디캄프 중령) : 우디 웨스트/이스트 점령 (2개의 대통령
궁) 3> 3/15 보병대대 (트위티 중령) : 목표 세인트와 8번고속도로 확보, 3개의 대형입체교차로
점령
4월 6일 3사단은 남쪽에 대기시켜둔 3여단전투단을 돌진시켜 수도북부의 목표 타이탄즈를 제압하고 동쪽에서
압박해오는 해병대와의 수도포위를 마무리지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7일 미군은 선더런 2작전을 추진하였다. 이번 작전은 후세인 정권을 붕괴를
촉진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뇌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정하였다.
1.선더런 부대는 2여단
전투단 2.공격목표는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티그리스 강의 대통령 궁과 기념관을 점령하여 대통령 궁에 사령부를 설치할 것 3.이
점령부대를 지원하는 보급로를 확보하고 즉시 보급물자를 수송한다.
2여단 전투단의 주요 전투부대는 슈워츠 중령의 1/64 기갑대대,
디캄프 중령의 4/64 기갑대대, 트위티 중령의 3/15 보병대대였다. 제 1차와 같이 M1A1 74와 M2/M3 브래들리 58대가 공격의 축을
이루고 후방에서 팔라딘과 MLRS가 화력지원을 하면서 상공에서는 A-10과 프레데터 무인기가 공격, 정보면에서 엄호한다.
작전은
전차를 주축으로 한 1/64와 4/64 기갑대대가 중추지역 점령을 목표로 하고 3/15 보병대대는 8번 고속도로 상의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보급로의 안전보장은 매우 중요했는데 여기를 빼앗기면 중추지역에 돌입한 2개대대는 순식간에 고립 될 것이다. 최대의 난관은 8번
고속도로상에 있는 3개의 대형입체교차로의 제압 및 확보였다.
4월 7일 오전 6시 선봉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봉은 수도 공격을
경험한 1/6기갑대대 A중대. 그들은 M1A1의 포탑후부에 있는 화물을 모두 내렸다. 과거의 전투에서 민병이 쏜 RPG가 여기에 명중해 화물이
타는 바람에 전차에 화재가 일어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1/64 기갑대대의 임무는 목표 다이안 (후세인의 선전시설인 무명용사 묘지, 동물원,
열병장) 점령이었다.
11분 후 트리오 (소화기, RPG, 박격포 트리오) 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민병의 공격이 능숙하여
그들은 조기에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RPG 2발이 M1A1 1대를 좌초시킨 것이다. 그러나 대대는 전차를 버리고 진격을 계속했다.
진격을 늦출 경우 임무달성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남겨진 전차는 3/15 보병대대가 처리하였다.
6시 41분 다시 도로상의 장애물에
부딪혔다. 이라크군은 18대의 트럭을 넘어뜨리고 주위에 벙커와 항아리형 매복진지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미군 기갑부대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전차의 엄호는 받은 공병대의 M9기갑전투 도저가 장애물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기러자 그 후
도로측방에서 민병이 사격을 가해오고 테크니컬이 곳곳에서 출현했으나 이들은 기관총 사격과 포격으로 정리되었다. 이 때 교전 거리는 1~100m
였다.
한편 1/64 기갑대대는 6차선의 8번 고속도로에 있는 3번째 대형 입체교차로 (목표 모유)를 타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신속하게 목표 다이안으로 돌입했다. 침입한 3개의 전투중대는 북동쪽의 라시드 호텔, 남서쪽의 VIP열병장, 남동쪽의 무명용사 묘지, 북서쪽의
동물원을 신속히 제압하고 일대에 방어거점, 박격포 진지, 지휘소, 구호소, 급유소를 설치하였다. 물론 간헐적으로 이라크 정규군과 민병이
10~20명이 팀을 이루어 반복적으로 기습을 가해왔다.
한편 4/64 기갑대대는 A중대 ( 병력 70명, 전차 10대, 브래들리
4대)를 선봉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오전 6시 36분부터 적의 공격을 받았는데 특히 차량을 이용한 민병의 기습공격이 활발했다. 7시 목표
‘모에’ 인 입체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적의 공격은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서 도로 양측의 야자나무에 숨어있던 BMP 1대를 150m 거리에서
파괴하고 BRDM 정찰장갑차 1대와 보병 20명을 사살하였다. 7시 20분 4/64 기갑대대는 웃디 웨스트에 돌입하였다. 이라크군은 대통령
궁내의 벙커에서 저항햇지만 전차와 브래들리가 화력으로 제압하여 7시 56분 대통령궁 제압을 완료하였다. 계속해서 C중대가 요충인 ‘7월 14일’
다리를 점령하여 이라크군의 반격을 저지하기 위한 거점을 구축했다.
대대의 전과는 이라크군 47명 사살, 포로 25명, BMP
2대, BRDM 1대, 야포 12문, 대전차무기 19정, 방공무기 19대, 테크니컬 29대를 파괴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추지역
치고는 방어가 엉성하였다. 이를 통해 오래전 후세인 정권의 수뇌부는 이 궁전에서 철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박수찬 (되니츠) http://cafe.daum.net/military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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