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敎育.學事 關係

國語에 對한 重大한 誤解(13) ~ (15)

鶴山 徐 仁 2005. 12. 20. 18:22
國語에 對한 重大한 誤解(13)
中高等學生의 言語能力
吳之湖   
 中學生의 言語能力 國校生과 같다
 
 이렇게하여, 韓國兒童은 六年을 배워도 國語를 모르고, 算術社則을 解하지 못하는 精神的 不具者가 된 것이다.
 그러면, 中高等學校의 學生은 어떤것인가. 筆者의 調査에 의하면, 그들의 言語能力은 國民學校 六年生으로부터 高等學校三年生까지에 質的으로는 大差가 없고, 量的으로 語彙를 좀더 알고 있을뿐이다. 여기서 質的이라 함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같이 그들이 알고있는 單語는 그 槪念을 正確히 把握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아마 그런뜻이겠지 하는 짐작에 不過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祝杯」와 「乾杯」를 같은 말로 알고있고, 「祝福」과 「冥福」도 비슷한 말로 알고있다.
 얼마 前에 「漢字校育의 必要性」이라는 題目으로 中高等學校의 뜻있는 國語科 敎師들의 硏究發表會가 있었다.
 다음은 發表者들이 말한 『漢字가 없이는 完全한 國語敎育은 不可能하다』는 體驗談中의 몇가지다.
 高等學校 三學年 國語敎科書에 「수필」(隨筆)이라는 題目의 글에서 『수필은 방향이 있는 글』이라는 意味의 말이있는데, 學生들은 여기있는 「방향」을 全部가 「方向」의 「방향」으로 알고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의 「방향」은 「方向」의 「방향」이 아니고, 「芳香」의 「방향」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說明해 보아도 納得이 잘 가지않고, 또 說明할 道理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說明이라는 것이 結局 漢字를 가지고 語源을 說明할 수밖에 없는데, 漢字를 모르는 學生들에게는 그 說明은 牛耳讀經밖에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音記漢字語는 알듯하다 만다
 
 그래서 學生들은 그때는 울면서 겨자먹기로 좀 알듯하지마는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中學校 一學年 科學敎科書에 「단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 「단체」는 物理化學用語로 「單體」의 「단체」다. 이 「單體」의 「단체」를 「團體」의 「단체」와 어떻게 區別하여 가르치겠는가. 「綠陰」과 「錄音」, 「綠化」와 「錄畵」, 「週間」과 「晝間」, 「鄕愁」와 「香水」, 「敎師」와 「敎舍」, 「考査」와 「枯死」를 어떻게 區別하여 가르치겠는가. 이와같이 同一音의 單語 二個式만 가지고도 가르칠 수가 없는데, 위의 例에서 본바, 전기, 수도, 사전, 전사, 사고, 사상, 사기, 전공, 전과 等과 같이, 五, 六個로부터 十五, 六個의 同音語가 있는 單語들을 어떻게 區別하여 가르치겠는가. 가르치면 아이들이 區別하여 記憶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는 決코 不可能한 일이다.
 以上은 同一音의 單語의 境遇를 보았다. 單語의 發音이 部分的으로 同一한 單語의 境遇가 또한 그러하다. 例하면, 顯忠祠, 秉天祠, 松廣寺, 海印寺, 室息死, 腹上死, 雜誌社, 新聞社, 鷄舍, 豚舍, 餓死, 橫死, 名士, 志士, 祝辭, 弔辭, 歷史, 女史 等을 한글로 暗記하여 놓으면, 여기 數많은 「사」字의 뜻을 一一히 區別하여 가르칠 수 있겠는가. 가르치면 學生들이 納得이 가고 記憶할 수 있겠는가. 이는 決코 不可能한 일이다. 왜 그런고니, 이렇게 部分的同一音의 單語가 數萬個가 있는 까닭이다.
 同一하거나 近似한 發音의 單語가 몇十個나 몇百個만 같으면, 어떻게 앞뒤를 뜯어맞춰서 쐬약이라도 박듯이 學生들의 머리속에 억지로 틀어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問題는, 「큰사전」에 있는 八萬五千個의 漢字語는 全部가 이러한 構造로 되어 있다는 事實이다.
 結論하면, 한글로 表記된 漢字語는 배울수가 없을뿐만 아니라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國民學校 六年生으로부터 高等學校 三年生까지의 言語能力은 大同小異한 것이요, 그들도 또한 原始人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위와같은 事實과 事理에 대하여 讀者의 完全認識을 돕기위하여 다음에 實話하나를 紹介하려고 한다.
[ 2005-12-20, 16:58 ]

 

 

 

 

 

國語에 對한 重大한 誤解(14)
「수지류는 뭐예요?」라는 이야기
吳之湖   

 할아버지도 모르는 말
 
 중학교 一學年인 손자아이가, 原稿를 쓰고 있는 筆者에게 갑자기 「할아버지, 수지류는 뭐예요?」라고 묻는다. 「수지류」가 무슨 뜻의 말이냐는 말이다. 그는 只今 一學期末 試驗工夫를 하고 있는 中이다. 勿論, 筆者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까닭이 없다. 이런 質問을 가끔 당하는데, 筆者는 이럴때마다, 問題의 出處인 敎科書를 보고 글의 內容을 읽어 보고 나서 說明을 해주곤 한다. 이때도 筆者는 그 말이 쓰여있는 敎科書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기술」이라는 冊이었다. 그 가운데 「칠감」이라는 小題下에 『수지류는 휘발성 용제로써 녹여 만든 것으로 피막이 강하여 내수성과 내구성이 있다』고 하였다. 筆者는 前後를 모두 읽어보고나서 간신히 이말은 化學用語의 「樹脂類」의 「수지류」인 줄을 알았다(알았다고는 하였지만, 그것이 꼭, 「樹脂類」의 「수지류」인지는 筆者는 只今도 斷言할 수는 없다).
 筆者는 그것이 「樹脂類」의 「수지류」라는 것을 그에게 說明해 주고나서, 그래도 自信이 없어, 『선생님은 이 말을 뭐라고 말씀하시든?』하고 물었더니 아이 말이 『선생님은 칠판에다 한문글짜를 마구 써놓고 설명하시는데 뭔지 모르겠어요』하고 웃었다. 그래서 筆者는 다시 題目인 「칠감」으로부터 「휘발성, 용제, 피막, 내수성, 내구성」을 차례로 물어보았더니 어름어름하고 똑똑한 對答은 하나도 하지못하고, 그 가운데 比較的 自信있게 말 한것은 「휘발성」은 「날라가는 거예요」라는 말 하나이었다. 이 아이는 머리가 過히 나쁘지 않은 便으로 그 成績이 제 班에서도 十等以內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아이다. 그러나 머리가 좋고 나쁘고가 問題가 아니다. 漢字를 모르는 그들에게 漢字로 語源을 說明해 보아도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것은 明白한 일이다. 다만 이렇게라도 說明을 하여야 先生혼자의 답답증이 좀 풀릴 것이다.
 이와같은 學術的語彙가 使用되고 있는 것은 勿論, 「기술」 敎科書 하나가 아니요, 物理, 化學, 地理, 歷史 等 全部의 敎科書가 다 이렇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中學校 三年이나, 高等學校 三年을 마쳐도 그들은 學術用語는 單 한個의 語彙도 正確한 槪念을 把握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지류」를 「樹胎類」로 쓰면
 
 以上의 語彙를 漢字로 바꿔써 보자. 그러면 「漆의 材料, 樹脂類, 揮發性, 溶劑, 皮膜, 耐水性, 耐久性」이 된다. 讀者가 보시다시피, 이 글字들은 글字自體가 「뜻 풀이」를 저 혼자서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이 語彙들에 대한 「낱말 풀이」라는 것을 애써 가르칠 必要도 없고, 또 애써 배울 必要도 없이 아이들은 혼자서 그뜻을 알게되는 것이다.
 
 漆黑의 地獄에서 光明天地로
 
 위에서 우리는, 한글만으로는 完全한 敎育은 不可能하다는 것과, 그래서 解放後의 兒童들은 言語를 모르는 原始人이 되고 있다는 事實과, 그래서 如何한 美國式 最新, 超最新의 敎育技術을 흉내내보아도 決코, 敎育效果를 거둘수 없다는 理致를 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도 어려운 問題가-解決不可能의 問題가, 아이들에게 漢子만 가르치면 當場 그 자리에서 完全無缺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도 크나큰 問題를 -十六萬 韓國敎師 全體의 힘으로도 解決못하는 問題를 또 이렇게도 쉽게 말을 하니까 讀者는 좀 어리둥절할른지 모른다. 그러나, 내말은 眞理다.
 그들에게 漢字만 가르치면 漆黑의 暗黑속을 헤매이는 工夫地獄―韓國兒童들에게는 學校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기쁨의 터전이 아니요,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깎아내는 生地獄이다―으로부터 韓國의 靑少年들을 손쉽게 救出할 수 있고, 또 나아가서 그들로하여금, 밝은 太陽아래서 生과 學問을 즐길수 있게할 수 있는 것이다.

[ 2005-12-21, 10:16 ]

 

 

 

 

國語에 對한 重大한 誤解(15)性없는 신랑
「讀書能力이 없는 大學生」이라는 말은 「性能力없는 新郞」이라는 말과 같이 하나의 「넌센스」요 悲劇이다.
吳之湖   
 書店代身 막걸리집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은 못되지마는, 韓國 大學生은 讀書를 하지 않기로 世界第一이라고 한다.
 解放後 우리나라에는 갑자기 많은 大學이 생겼고, 그 大學들의 周邊에는 當然한 일로, 相當數의 書店도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四·一九를 고비로 하여 大學街의 書店數는 해마다 減少되다가, 現在는 거의 完全히 書店이 없는 大學街가 되었다. 그리고 書店代身, 女子大學의 周邊에는 몇十個의 洋裝店들이 華麗한 무엇을 시새워 發散하고 있고, 男子大學의 周邊에는 몇十인지 몇 百인지는 모르되 數많은 막걸리집이 興趣를 돌구고 있다.
 
 昨年 가을 「讀書週間」의 調査에 의하면, 서울大學校 圖書館에는 藏書가 六十三萬餘卷이 있었는데, 이 圖書館을 利用하는 學生은 全學生의 二%에 不過하고, 그 中에서도 藏書를 利用하는 學生은 그 二%의 또 몇%라고 한다. 大學生이 書店에를 가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이 冊을 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冊을 사지 않을 뿐만 아니라, 冊을 그냥 빌려주는 圖書館에도 가지 않는다. 그들이 冊도 사지 않고, 圖書館에도 가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이 讀書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大學이라 하는 것은 學問의 殿堂이요, 文明의 産室이다. 또 學問과 書冊과는 不可分의 一體라면, 「大學生과 讀書」 또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關係에 있는 것이다. 事理는 이러한데, 그들은 왜 그렇게도 徹底히 讀書를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러나 實相은, 그들은 讀書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요, 讀書를 할 수 없는 것이다. 卽, 그들은 讀書를 하고싶어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한글大學生」이라는 말이 잘 表現하고 있듯이 그들은 한글밖에 모른다. 그런데, 그들이 大學에서 接하는 書冊, 卽, 哲學, 藝術, 科學, 經濟, 社會, 醫學, 法學 等의 學術에 關한 書冊은 그 全部가 漢字와 漢字語로 記述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讀書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또 外國語도 能熟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들은 外國書籍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筆者의 調査에 依하면, 一般的으로 韓國大學生의 外國語實力은 中國이나 日本等 外國의 大學生에 比하여 뒤떨어져 있다. 韓國人의 發音能力은 世界에서 가장 優秀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普通의 會話程度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學問에서 쓰이는 高等槪念의 語彙는 그 참뜻을 理解하기가 極難하다. 왜 그런가. 우리나라에서는 現在 外國語를 가르치는데, 그것을 國語로 飜譯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은 外國語를 理解하는데, 그들이 가진 國語能力 程度로 밖에 理解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外國語實力은 어느 限界를 가면 停止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筆者의 意見으로는, 한글主義를 앞으로 繼續 强行한다면, 外國語를 國語로 飜譯하여 가르칠 것이 아니요, 「필리핀」이나 印度에서와 같이 外國語를 直接 外國語로 가르치는 것이 敎育 效果를 거둘 수 있고, 또 外國語에 依하여서라도 그들을 文盲으로부터 救出할 수 있을 것이다.
 
 性能力없는 新郞
 
 結論하면, 韓國大學生은 過去 二十年間의 한글敎育에 依하여 國語能力을 喪失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讀書能力이 없는 것이다. 「讀書能力이 없는 大學生」이라는 말은 「性能力없는 新郞」이라는 말과 같이 하나의 「넌센스」요 悲劇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書冊을 外面하고 學問을 등지게 되었고 그 必然的 結果로 少數의 聰明하고 自覺하여 努力하는 者를 除外한 大多數의 이 나라 大學生은, 한글主義者가 말하는 바, 조상의 얼을 되살리고, 主體意識을 드높인다는 그 愛國的이고 高邁하고 遠大한 思想과는 正反對의 方向-「히피」 類似의 族屬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以上이 「한글專用敎育」 二十五年의 總決算이다.
 
 
[ 2005-12-22, 09: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