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장 8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으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노예로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알고 듣고 계셨습니다.
400년이나 보시고 계시고 그들의 우고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보시고 듣고 계시면서 400년 동안이나 기다리셨나요?
하나님은 세 가지가 일치 될 때에야 일을 하십니다.
1.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야 일하십니다.
보시는 것, 아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지만 부르짖는 것만큼은 하나님도 못하시는 일입니다. 부르짖는 소리는 들으실 수 있지만 하나님은 부르짖지는 못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각 전달이 되어야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감각 전달의 가장 좋은 방법이 부르짖는 것입니다.
2.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400년 동안 나그네가 되겠다고 말씀하신 그 약속의 때까지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3.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간 70명이 300만명 이상으로 인구가 하늘의 별과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은 인구 증가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고통 중에서이지만 이스라엘의 번성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은 들으시고 보시고 알고 계시지만 이 세 가지가 일치 될 때에야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약속과 부르짖음이 일치가 되면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고 더 좋은 가나안 땅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복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편하게 사는 사람은 절대로 부르짖을 이유가 없어서 부르짖는 기도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난하고 문제 많고 어렵게 하는 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고 약속과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부르짖게 하는 기도를 하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어느 교회에 가 보면 새벽 기도회를 아주 조용히 하고 부르짖는 기도를 못하게 막는 것을 봅니다. 목사님들의 목회 방향이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 새벽 시간마저 부르짖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 부르짖는 기도를 하여 하나님께 안타깝고 답답하고 애굽에서 받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당하는 고역을 어떻게 나의 감정을 직접 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새벽기도만큼은 성도들이 맘껏 후련하게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백성, 택한 백성에게는 고통, 고난 우고를 주어서라도 부르짖는 기도를 하게 하여 가나안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지금 부르짖어 기도할 제목이 있으면 이 사람은 아주 큰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십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더 간절한, 애절한 기도를 하게 하여 그 귀에 들린 대로 때가 차고 섭리의 시간이 되면 출애굽의 역사가 나에게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애절한 기도를 하십시다.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예수님 성화 가득 (0) | 2005.12.18 |
---|---|
[스크랩] 무엇하여야 영생을 얻을까 (0) | 2005.12.18 |
[스크랩]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0) | 2005.12.18 |
[스크랩] 고쳐 가며 살자 (0) | 2005.12.18 |
[스크랩] 밀알 (0) | 2005.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