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 - Hymn
시편 119편 1절- 9절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가는 때입니다. 말세가 깊어지고 흑암 세력은 날로 왕성하여지고 마귀는 삼킬 자를 찾아 우는 사자 같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이 때에 누리는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서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희생의 삶이 없고 내가 죽는 일이 없고 기도하는 일이 없는 사람은 우는 사자에게 삼키 우는 사자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을 날마다 고쳐 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과 같이 우리가 나를 대적하는 사자에게 쫓겨 다니는 일로 마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나 자신을 가다듬고 공격적인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신앙인으로 나의 사람을 定立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나이 많은 분들과 대화를 하다가 보면 인생을 덧없게 보냈다는 하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덧없는 세상을 보낸 것이 아니라 인생의 삶을 유익하게, 보람 있게 살았다는 말을 하고 눈을 감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859년 제정 러시아는 국토가 너무 커서 관리하기가 너무 힘들자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려고 8년간이나 교섭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비밀 흥정을 하던 중에 1867년 3월 마지막 주말에 워싱턴 주재 러시아 공사가 국무장관 소워드 장관에게 러시아 황제가 720만 딸라에 팔아도 좋다는 허가가 나왔다고 하며 달려 왔습니다. 앞을 내다 볼 줄 아는 소워드 장관은 주말인데도 전 직원을 불러서 서명 작업을 시키고 서명을 하였습니다.
국회에서는 소워드를 역적이라 몰아붙이면서 얼음 덩어리를 720만 딸라에 샀다고 공박하였지만 신문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라고 지지하여 주어 국회의 반발을 누구려 뜨렸습니다.
미국은 한국 돈으로 65억원. 중국 돈 61,500,000(위엔)으로 명동 땅값 65평 값을 주고 한국의 7배나 되는 땅을 샀습니다.
지금 Alaska는 3金의 보고라고 말합니다.
제 일의 금은 검은 금-석유입니다. 송유관을 설치하여 본토로 석유를 강물같이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알래스카에서 석유 판돈이 너무 많아서 주민 한 사람당 1,000 딸라씩 나누어주었고 작년에는 900딸라씩 돌려주었습니다.
제 이의 금은 푸른 금입니다. - 무성한 삼림입니다. 미국의 좋은 목재는 현재 대부분이 알래스카 산 나무입니다.
제 삼의 금은 황금입니다.- 무진장한 광물 자원입니다.
그밖에 황금 어장이 있습니다. 석유가 1천억 배럴이나 매장되어 있고 무진장한 처녀림, 석탄 등 광물 자원이 노다지로 있습니다.
한국의 아파트 한 동보다 싸게 산 알래스카는 미래의 눈을 가진 소워드 장관 때문에 얻은 보물입니다.
오늘날 러시아의 쨔르 황제 같이 현실에만 급급하여 살다가 무진장한 보고를 돈 얼마에 팔아 치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돈 얼마에, 일순간의 쾌락에 팔아 치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알래스카의 보고보다도 더 좋고 아름다운 영생의 나라를 어리석게 눈앞의 이익 때문에 팔아 치우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 하나에 에덴동산을 팔아먹었고 가롯 유다는 은 30에 예수를 팔아먹고 영생을 마귀에게 팔아먹은 사람입니다.
NEW YORK은 세계에서 제일 크고 아름답고 세계의 금융의 중심이고 현대 문명 문화의 중심 도시입니다.
이 섬은 원래 인디언들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이 이 뉴욕시 땅을 단돈 4 딸라에 샀습니다. 그것도 현금이 아닌 4달라짜리 술 한 병하고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 땅을 판 인디안 추장은 오늘날의 뉴욕을 본다면 후회가 막심 할 것입니다. 이 인디언은 양주를 벌컥 벌컥 몇 모금 마셔 버림으로 그 땅을 영원히 잃어버린 인디언이 아주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되겠지만 우리도 이런 어리석음을 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 급급하여 장래 일을 볼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만족 때문에 장래의 영생의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손자로 장자 권을 가진 축복 권을 가진 아브라함의 종손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현실의 배고픈 문제 때문에 동생 야곱에게 장자 권을 팔아먹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선 당장 살기가 힘들고 고생스러워서 주어진 축복을 팔아 버리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곱은 내가 장차 큰 축복을 받을 자라는 삶을 정립하고 기회를 보다가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자기가 정립한 이스라엘 조상의 반열에 들어가는 삶의 정립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하나님의 정통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나의 삶을 정립하여 큰 축복을 나와 내 자손에게 이끌어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도 축복 받고 이 축복을 나의 자손에게까지 물려주는 이스라엘, 야곱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대신 관계를 정립하여야 합니다.
시편 119편 1절 - 2절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우리가 삶을 정립하고 사는 목적은 복을 받기 위하여서 입니다.
참된 복은 이 세상에 살면서 현세와 내세에서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이 육신이 살고 있는 팔구십 년의 삶이 있은 후에, 우리가 죽은 후에는 반드시 나의 속사람이 살아갈 영원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영혼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고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생명의 세계인 천국과 사망의 세계인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이 내 대신 죄를 담당하시고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나의 죄가 사라지는 역사가 나타나서 의인이 가는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교회의 직책과 예수를 믿는 것과도 다른 것입니다.
십여년 전에 미국에 있는 어느 신학교 한국인 교수가 중국 연길시에 있는 연변 대학에 와서 강연을 하면서 예수를 믿는 것이나 공산당을 믿는 것이나 같으니 하나님 잘 믿으라고 강연을 하였다고 합니다.
친척 되는 사람에게 전도를 하니 그 목사님이 강연 할 때에 자기가 가서 듣고 그 말이 옳게 여겨져서 자기는 공산 당원은 아니지만 예수를 안 믿고 유물론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교회의 직분과 직책과 계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목사들 중에 예수를 안 믿는 목사도 있고 특히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목사가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얼마전 40일간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는 간증 테프를 들으니 지옥에는 목사가 의외로 많이 와 있더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수를 안 믿었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1.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되고 이 죄를 어떻게 벗어나 볼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자기가 죽을죄인 임을 알고 이 죄에서 살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2. 예수가 내 대신 십자가에서 내 죄로 인하여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 질 때가 예수를 믿는 때입니다.
3.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었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사실을 믿는 사람,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그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여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부활하시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매주일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하고 교회의 높은 직책을 가지고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은 후에 그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증거를 지키는 일에 불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 한 말은 우리가 행하고 하지 말라 한 말은 안 하는 것은 예수를 믿은 후에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지키는 것으로 이러한 일은 신앙생활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후에는 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이 구원을 지키기 위하여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가. 기도를 전심 전력으로 하여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기도는 오래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전심으로 하는 것이어야 그 기도가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6장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전심이 아닌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음을 알고 우리는 전심전력으로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역대하 16장 9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 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하나님은 전심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조용한 새벽에, 깊은 산에, 들에서 기도를 하는 이유는 전심전력으로 기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도는 어디까지나 전심으로 하여야 합니다.
나. 전심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시편 9편 1절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 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전심은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 전심입니다. 두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전심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 눈먼 것, 병든 것, 저는 것을 드리면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드리는 것을 받으시며 복을 보상으로 내려 주십니다. 과부의 두 렙돈. 25cent를 받으신 주님은 칭찬을 하시였습니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다. 순종도 전심으로 하여야 합니다.
열왕기상 14장 8절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하나님은 책망을 하실 때마다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쫓은 것을 기뻐하여 말을 하시며 그렇지 못한 사람을 책망하시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순종 할 때에 아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전심으로 순종 할 때에 하나님은 그 보상을 반드시 하여 주십니다.
라. 전심으로 찬송하여야 합니다.
시편 86편 12절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 오리니”
찬송은 힘을 다하여 목에 핏줄을 세우면서 전심으로 찬송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모든 것이 전심이어야 합니다.
전심전력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또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도 전심전력으로 드려야하고 기도, 찬송, 감사, 순종 등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는 전심이 되는 사람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나의 삶의 정립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심, 진심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삶인 것입니다.
2. 대인 관계를 정립하여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6절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사람에게 대한 대인 관계를 말합니다. 눈가림만 하지 말고 단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으로 권고합니다.
우리가 사람끼리의 관계에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눈가림을 하여 사람이 볼 때는 잘 하고 안 볼 때는 안하는 일과 사람이 보이는데는 치장을 잘하고 안 보이는데는 날림으로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단 마음으로 한다는 뜻은 좋은 뜻으로 앞과 뒤가 여일 하게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이 보든 안 보든 변하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신의를 지키면서 사랑하는 마음, 고운 마음, 아름다운 마음으로 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항상 우리는 단 마음으로, 좋은 마음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자기의 행실을 하나님께서는 돌려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에 이익은 있을지는 몰라도 후에 이 것이 탄로가 되면 더 큰 곤욕을 치르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입니다.
사람들은 눈가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눈가림의 방법은 이렇게 눈가림을 하지요
1. 불평으로 눈가림을 합니다.
가장 애국하는 사람처럼 눈가림으로 나라를 불평합니다. 국회나 대통령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나라에 불평하는 것은 자기의 그렇지 못함을 눈가림하는 방법입니다.
교회에도 비협조적인 사람들이 불평을 제일 많이 하여 자기가 제일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사람같이 눈가림을 합니다. 불평하고 있는 사람은 지금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눈가림으로 자기를 변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불평하지 말고 단 마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작은 일에라도 협조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2. 원망으로 눈가림을 합니다.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며 모든 잘못을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는 눈가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잘못하여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원망은 패배자의 눈가림입니다. 원망은 패배자의 눈물입니다.
이미 다 망한 다음에 나오는 것이 원망입니다. 잘못되면 조상 탓이듯 지도자는 누구 나가 다 원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원망의 눈가림이 없는 성공 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시비로 눈가림을 합니다.
자기의 옳지 않음을 숨기려는 눈가림입니다. 옳은 자는 항상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잘못된 자가 자기를 눈가림을 하려고 시비를 걸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비에 말려드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시비를 걸어오는 자는 자기의 잘못을 눈가림하려는 사람임으로 그런 사람에게 이용을 당하지 말고 시간 낭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비를 걸어 올 때에 내가 중학교 때에 하던 말은 “그래 네 똥이 굵다” 하고는 시비를 그치는 말을 하고 맙니다.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은 자기 똥이 굵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과 같이 여기고 시시한 시비에 말려드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4. 파벌의 눈가림이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파벌로서 형성하여 감추려는 눈가림입니다. 다수의 위력으로 눈가림을 시키는 수단입니다.
우리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 눈가림을 하지 말고 진실 되게 하나님 앞에서 하는 심정으로 성실 되게 사람을 대하여야 합니다. 훗날을 생각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단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살아가는 삶을 정립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대 불질 관계도 정립하여야 합니다.
디모데 전서 6장 7절 - 8절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물질을 대하는 나의 태도로는 다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에 대하여는 내가 왕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물질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고 물질에 초연 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대신 관계서는 하나님을 항상 오려다 보고 살아야 하고 대인 관계에서는 평등 관계로 살아야 하고 대 물질 관계에서는 내려다보고 살아야 합니다. 내려다보면 지족한 마음이 생기지만 올려다보면 항상 부족한 것입니다. 대신 관계에서 내려다보면 교만한 자가 됩니다.
우리는 잘 구분하여 사람을 정립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수전노라 하여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 실지언정 물질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자기 분수에 넘은 자동차나 집을 사 가지고 그 Payment 때문에 물질의 노예가 되어 교회에도 못 나가고 Overtime을 뛰면서 쩔쩔매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동차의 노예가 된 사람이고 집의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물질을 섬기면서 살지 말고 지배하면서 나누어주면서 사는 우리기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금식 기도를 마친 후에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나는 너무 맛있어서 물을 배 이상 많이 넣고 끓입니다. 금식 기도 마친 후에, 라면 맛은 정말 세상의 어떤 음식보다 맛이 있습니다.
국물 한 모금 마시고 병아리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고 한 모금 마시고 감사하는 그 라면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필요 이상의 돈을 사용하지 말고 근검하게 분수에 맞게 살아가십시다. 그리고 남은 여유를 선한 사업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선교사로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선교비를 내면서 후원하여 주는 분은 자기의 생활을 근검절약하여 선교비를 보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근검절약하여 남은 돈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물질로 사용할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또 하늘에 상급으로 싸이는 것입니다.
정리:
우리는 삶을 정립하고 의미 있는 삶, 후회함이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헛살지 말고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하나님을 높이며 모든 일에 전심을 동원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전심이 없는 일은 모두 헛일입니다. 전심으로 예배드리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나의 전심을 받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두고두고 나를 자랑하실 것입니다.
사람에게 대하여는 눈속임을 하지 말고 단 마음으로 좋은 마음으로 평등하게 대하면서 하나님 앞에 하듯 성실하게 하며 살아갑시다. 속이려고도 하지 말고 사람에게 높임을 받으려고도 하지 말고 대등하게 진실 되게 나에게 하듯 하며 살아갑시다.
물질에 대하여서는 지배하면서 필요 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탐욕을 만족시키지 말면서 근검하게 살아가십시다.
갖고 가는 것도 아닌데 물질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어서 선한 사업에 물질을 사용하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십시다.
이러한 정립된 삶을 살 때에 우리 인생을 덧없이 보낸 것이 아니라 장래를 예비하며 보람된 삶을 살고 누리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