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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박정희의 양날개 '유신과 중화학공업'

鶴山 徐 仁 2005. 10. 28. 18:05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5.10.28 15:58 04' / 수정 : 2005.10.28 15:5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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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
집권 18년에 이르는 박정희 시대에 유신 선포와 중화학공업은 궤를 같이한다. 박정희는 무엇을 위해 이 양날개를 택했을까?

호주국립대 아시아-태평양학 대학원 정치사회변동학과 김형아 교수는 최근 국내에 번역된 단행본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일조각 펴냄)에서 그 자신의 개인적 야망과 한국의 공업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정희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저자에 의하면 박정희가 종신은 아닐지 몰라도 장기간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음은 확실하지만 이보다 더 큰 야망이 있었다.

장기 집권이라는 개인 야망과 중화학공업화라는 국가 이익을 합친 이 목표는 오직 유신체제, 혹은 ’한국식’으로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런 박정희에게 독특한 점은 이를 위해 경제기획원의 경제전문가가 대신 엔지니어 출신 테크노크라트인 오원철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라고 본다. 경제전문가들이 미국식 경제원리 신봉자들인 데 반해 박정희 자신은 그와 반대되는 노선을 견지했다.

따라서 경제전문가 그룹보다는 김정렴이나 오원철처럼 무언가를 성취해 본 경험이 있고 자신의 계획을 성실히 실현할 사람들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의존적이긴 했으나 박정희식 급속한 산업화가 가능했던 까닭은 박정희와 상공부 테크노크라트들이 미국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고 오히려 한미간 충돌을 야기할 만큼 독립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에 더해 미국의 안보정책을 비롯한 국제환경은 박정희에게 유리하게 돌아간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수출품에 대해 미국은 지속적으로 개방을 해 주면서도, 박정희의 경제적 보호주의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다는 점도 한국의 급격한 공업화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