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스크랩] 은하철도 999

鶴山 徐 仁 2005. 10. 22. 13:54

 

 

은하철도 999

 

-김유정문학관을 다녀오며-

 

 

세상에 은하철도가 있었다.

과거가 박제된 철도...

거기 김유정님이 서 있었는데

아무도 그 철도가 은하철도인지 모른다.

하늘을 마음껏 날고

이 별에서 저별로 여행하는 꿈과 같은 철도...

그 환상의 역이 실레마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있지만

그 역을 지나서 실레마을에 들어선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이 역을 바라보면서

언제인가 이 하늘에 작고 아담한 나의 간이역을 세워서

은하철도를 오가는 기차가 정차할 수 있도록 해야 겠다는

 어쩌면 막연한 꿈을 꾸었다.

우리나라에서 첨으로 세워진 꿈의 간이역인 김유정역, 

 

 

"김유정

 문학계에서 이상과 더불어 천재로 꼽히는 작가이다.

 안타깝게도 2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는 우리 근대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휘문고보를 졸업한 김유정은

 첫사랑 박록주를 만나 광적인 구애를 펼치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김유정은 소설 <두꺼비>에서

 “저쪽에서는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여겨주지 않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 달 동안 썼다”라고 적었다.

김유정 작품의 주요 무대인 강원도 춘천이

예나 지금이나 문인의 활동 무대로 왕성한 역동성을 지닌 곳이며,

김유정 작품의 모태가 될 만큼

아름다운 춘천을 가슴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김유정역은 인명을 붙인 우리나라 최초의 역.

원래 이름은 신남역이었지만

2004년 12월에 김유정역으로 바꾸었다.

 짧았던 생애만큼 김유정의 유품은 몇 점 되지 않는다.

 겨우 흑백 사진 석 장이 전부다.

 대신 김유정문학촌이 들어선 실레마을은

작가의 생가를 비롯해 김유정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보존돼 있다.

<봄봄>에 나오는 봉필 영감의 집,

 <만무방>의 노름터 등이 그대로 보존된 실레마을은

마을 전체가 김유정 작품의 무대이며 그 산실이다.
박록주와 사랑에 실패한 김유정은

 고향인 실레마을로 돌아왔고,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실연은

 ‘명작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결과를 낳는다.

고향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그는

 <봄봄> <솥>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등의 작품을 썼다."

<발췌: http://www.samsungfire.com 김유정 문학촌 나들이>

 

 

 

 

꽃은

 사계절을 돌아서 핀다.

엄동설한의...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롬을 내놓고 각자의 모습을 한 꽃을 피우는데

게절이 바뀌었다고 해서 반드시 봄에 피는것만이 아니며

봄 부터 갈까지 아니 겨울에도 꽃이 피지만...

수십년만에 피는 꽃도 있다.

 

인간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생로병사의 삶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보통보다 더 짧은 경우가 있으며

우리 문학사에서는 요절한 천재 작가가

비교적 짧은 생애로 마감했다.

이 기간 동안 일반인이 상상도 하지 못할 작품을 남기고

먼 하늘로 갔지만 그 흔적은 오랜동안 세상에 남아서 빛을 발하고 있다.

 

죽어서 산자

그들은 늘 이렇게 우리들 곁에 남아서

우리들의 찌든 영혼을 곱게 만들고 있다.

하늘은 무엇 때문에 이들을 속히 불러 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생각컨데 육신의 생이 마감되어질 때 불러지는 노래는

우리들이 그리워 하던 영혼의 노래가 아닌가 싶다.     

 

 

 

춘천으로 이동중

이도행선생님께 안부를 전하며

일기가 너무 좋다고 일러드렸더니 선생께서 외출 채비를 하고

 오후 3시에 만나자하여 서울로 방향을 돌렸다.

건강을 많이 회복하셨는지 목소리가 강건해 보였다.

방태산에서 하산 후 줄곧 댁에서 치료와 집필을 하고 계셨는데

뵐때 마다 건강해 보여서 여간 고맙지 않았다.

지금도 글을 쓸때 마다 머리속에서

얼음장이 갈라지는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하시니

그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개천절을 앞둔

 이 아름다운 날에

선생님과 춘천 석사동 ㅁ字방에서 생활하여 익히 아는 

'피아노아가씨' 유경님을 동시에 모시고

해가 뉘엿거리는 춘천에 도착했다.

춘천으로 이동중 선생께서는 '김유정문학촌'의

사무국장이셨던 소설가 최종남 선생과 대화를 하며

간만의 재회를 바랐으나 운해마을에 가 계셔서 만나지 못하고

현재 계신 시인 원모님과 약속을 하여

 문을 닫기 직전의 김유정문학촌에 당도했다.

이동중에 먼저 김유정역을 돌아보며

선생의 흔치않은 모습을 담고자 불편을 끼쳐드리며 귀찮게 했으나

선생께서는 쾌히 포즈를 잡아 주셨다.

 

 

 

 

최근에

 춘천을 자주 오가면서

春川이 어떤 의미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여러번 되물었다.

그리하여 중앙고속도로를 통하여 바라 본 분지의 춘천과

평면상의 춘천과 위도상의 춘천을 각각 재단하여 보며

널리 알려진 호반의 도시와 대입해 보니

사방으로 막혀진 분지에 소양강이 유일하게 북한강과 만나고 있었다.

 

한강의 발원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모천이 되어

쉼없이 맑은 물을 흘려 보내고 있는 곳

이곳은 세상에 봄을 흘려 보내는 곳이었다.

이 봄은 사계절에 한번 스쳐가는 계절이 아니었고

연중 봄(春)을 흘려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文學史의 봄 또한,

 춘천을 빼 놓고 말할 수 없으리라는

단정적인 생각을 해보는것도 무리는 아닐성 싶다.

영혼이 고갈되어 갈 때 마다 앞다투어 찾는 땅

어머니의 품 같이 넉넉한 땅이 춘천이 아닌가 싶다.

그곳에는 늘 산과 들과 강과 호수와 높고 맑은 하늘이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것 만으로도

세상에서 찌들었던 영혼이 숨을 쉴 수 있었다. 

 

 

 

김유정님은

 소설 <두꺼비>에서

 “저쪽에서는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여겨주지 않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 달 동안 썼다”라고 적었지만,

세상에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흔치 않았다.

 

오늘날은

 메일로 상대편에게 당신의 마음을 전달하거나

채팅등을 통하여 교감을 쉽게 하고 있지만

교통수단이 매우 느렸던 아나로그 형태의 교감이란

이른봄 부터 가을걷이가 이루어지는 때와 비슷하여

사랑이 무르익을 때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김유정님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농사란,

씨를 뿌리는 행위가 있기전에

 먼저 토양을 윤택하게 해야하고

또 밭갈이 등을 통하여 씨앗이 잘 발아하고 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야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으며

그 결실이 있기 까지는 비와 바람과 볕과 밤과 낮이

수없이 교차하여 생기는 일이다.

그럼에도 김유정님은 오늘날 처럼

수도 없는 문자와 채팅을 시도하려 했다니

사랑의 대상에 대한 처절한 몸짓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수 많은 대상이 있었음에도

오로지 '그'가 아니면 안되는 사랑...

요즘도 이와 같은 구애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일면에는

기다림의 미학을 잊고 사는 우리네 디지털 형편이 가세하고 있다.

 

무엇이든 빨리 이루고자 하는

수요와 공급이 합세한 문화...

그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신음하고 있는것이다.

김유정님은 아나로그 시대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운명을 직감한 탓인지

촌각을 다투며 매일 메일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 편지가 오늘날 金裕貞驛이라는 

꿈의 기관차가 정거하는 이곳에 

밤을 지새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별을 바라보며 소원한 편지가

곱게 안착하리란 것을 알고나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김유정님이 요절한지 수십년만에

강원문단의 청색시대에도 똑같은 꽃이 피고 있었다.

그 꽃씨는 얼어붙은 공지천 주변을 맴돌다가

석사동의 한 나즈막한 ㅁ字방에 날아 앉았는데

겨울의 얼어붙은 작은방과 그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 작은 씨앗이 꽃의 씨앗이라고 눈여겨 볼 틈도 없었지만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으나

한 청년의 가슴을 용광로 처럼 활활 거리며 불을 지피게 했다.

 

그는

 날마다 한통씩의 편지를 썼다.

어떤날은 여러통의 편지를 쓰기도 하며

흔치 않은 파란 봉투에 곱게 접어서 우표를 붙였으나

수신자는 무조건 거부하다가

도대체 뭔가하여 열어 본 이후

다시는 열어보지 않게 된 편지인데, 그 편지가 수백통에 이른다니

그 청년이 실연을 당하여 고통당한 상처받은 마음은

곧바로 술이라는 눈물로 다가 왔다.

 

그로부터

 또 다시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청년은 김유정문학관을 찾았다.

세상의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순수를 고집하고 있는 사람,

배곯이가 밥먹는 것 보다 더 많았음에도

세상의 인기와 돈을 멀리하며 외롭고 고독하게 버텨온 삶은

고통 그 자체였으리라만,

그의 마음속은 아직도 이글거리는 용광로의 밝은 빛으로

爐를 응시하는 시선과 몸을 따뜻하게 했다.

그렇게 오랜시간을 爐속에 갇혀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수도 없는 낮과 밤을 보내고

뉘엿거리는 태양을 뒤로하고 김유정역에 선 이도행 선생님...

 

 

 

나는,

김유정문학촌에서 김유정님을 직접 만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들었다.

회갑을 바로 눈앞에 두고 계신 지천명의 나이에

아직도 당신을 지탱하고 있는 힘이 순수임을 알았을때

나는 비로소 순수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다.

 

純粹(순수)란,

  다른 것이 조금도 섞임이 없거나

(마음에) 딴 생각이나 그릇된 욕심이 전혀 없음을 일컫는게 

사전적 의미인데 이 의미는 인간의 성격형성이 이뤄진 다음에야 

가능한 것인 만큼, 청색시대에 발현된 순수는 

삶 가운데서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순수를 지킨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칭송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며, 

이 순수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라 여겨지며 이 순수 속에는 

지킬만한 가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순수를 회복하기 위하여

춘천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월은 가고...

 

 

또 오는 것...

 

 

그 세월 속에서 나는 남고 싶은 것...

 

 

나는 오늘도 은하철도를 꿈꾸며...

 

 

그 驛에 나를 정차하고 싶은...

 

 

그래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외로운 존재란 것을...

 

 

사람들로 부터 확인 받고 싶은 것이다.

 

 

세상은 모두 산화를 거듭하지만...

 

 

죽어서 산자...

그 이름 몇자를...

 우리는 그토록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가야?...
한 밤 자면 내일이 온단다.
또 한 밤 자도 내일이 오고-.
내일은 아주 많단다.

기다릴까?
오늘도 내일 기다리고
내일은 또 내일 기다리고-.

우리 그러자꾸나.
내일만 기다리기.
내일 건너기.

마냥 깔깔거리며



The Children's Waltz - Michael Hoppe

 

      

 

 

 

 

보라미랑

 

 

 

 

 

이 글은

지난 10월 2일자,

 제 블로그에 올리려고 준비해 둔 글이지만...

저의 형편상 지금에 올린 글입니다.

그 이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해 왔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제게 안부를 궁금해 옴에 따라서

잠시 시간을 내어서 제 안부를 전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새벽에... 동해에서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컴을 단 한번도 들여다 보지 못한 바쁜 일정...

그러나

우리님들을 그리워 하는 만큼

제가 쪼개 쓰는 이 시간은 넘 행복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우리님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짬이 생기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출처 : 내가 꿈꾸는 그곳.. |글쓴이 : 보라미랑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