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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크루거 국립공원 부근 음푸말랑가 고산지역을 지나는 로보스 레일. 친절한 승무원들의 특급호텔급 서비스로‘아프리카의
자랑(Pride of Africa)’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 로보스 레일
제공 | |
Pride
Of Africa (아프리카의 자랑)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남부 최대 항구도시 더반. ‘Pride of Africa(아프리카의 자랑)’라는 애칭이 붙은 ‘달리는 특급호텔’ 로보스
레일(Rovos Rail)의 출발역이다. 역사에 들어서자 짙은 녹색의 고풍스러운 열차가 눈에 들어온다. 바닥엔 빨간 카펫이 깔려 있고, 제복을
입은 승무원들이 샴페인과 과일주스를 권하며 친근하게 여행객을 맞는다.
코스는 더반을 떠나 스와질란드를 거쳐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까지 가는 1116㎞의 대장정. 2박3일 일정이다. 기차에 올라 방 배정을 받을
땐 마치 호텔에서 체크인하는 기분이다.
2인 1실 침대칸을 들어서면 온통 19세기풍이다. 화려한 자수로 꾸민 침대, 화장실엔 샤워시설도 딸려 있다. 스위트룸을 차지한다면 열차
안에서 욕조에 몸을 담그는 사치를 누릴 수도 있다. 100년 전쯤 유럽의 귀족들이 이 땅에 와서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호사스럽게 여행하던
모습이 이랬을까.
짐을 정리하고 음료를 한 잔 마시자 기차는 기다렸다는 듯 움직인다. 차창 밖으로 빈민 밀집지역인 타운십의 판자촌이 펼쳐진다. 남루한 차림의
흑인 아이며 어른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호사스러운 기차여행을 떠나는 이방인들을 보면서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묘한 대조다.
라운지카와 식당카
도시를 벗어난 열차는 광활하게 펼쳐진 사탕수수밭과 줄루족(族)의 본고장인 크와줄루와 나탈 지방의 기복이 진 언덕들을 지난다. 나무가 없는
바위산과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초원. 풍광이 눈에 익어 가면서 슬슬 지루해지고 목이 말라온다. 맨 뒤 라운지 칸으로 가면 다양한 와인을
비롯해 위스키, 럼, 브랜디 등 온갖 술과 음료가 제공된다. 같은 여행길에 나선 손님들끼리 자연스럽게 인사와 대화를 나눈다.
기차가 느리면 시간도 더디게 가는 것 같다. 로보스 레일은 최고시속이 60㎞.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때론 간이역에 잠시 멈춰 다른
열차들이 선행하게 한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다. 차창을 활짝 열어놓고 마음 편한 여유를 즐기면 된다. 시장기를 느낄 때쯤 승무원이 건반
4개짜리 실로폰을 치며 식사 시간임을 알린다.
로보스의 매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이다. 남아공식 요리인 소사티는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썰어 야채와 함께 볶은 것으로 케밥과 비슷한
맛이다. 올리브유에 튀긴 생선도 향료나 소금, 후추만 해서 구워 담백하다. 채식 코스도 있다. 열차 맨 앞 식당 칸에서의 저녁은 정장차림을
요구한다. 은은한 촛불을 켜놓고 디너파티 분위기에 젖어들게 한다.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
첫날 열차 안에서 푸근한 여유를 즐겼다면 둘째 날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의 사파리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새벽 5시 모닝콜에 잠을 깨니
기차는 고산지대 스와지 부족의 자치국인 스와질란드의 ‘음카야’라는 곳에 와 있다.
사파리 트럭에 5~6명씩 나눠 타고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들어간다. 현지 줄루족 운전사 겸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빅5’(사자 표범 코뿔소
하마 버펄로)를 쫓는 게임 드라이브다. 야생 초원의 탐험자가 돼 보는 것이다. 열차로 돌아오면 승무원들이 일일이 물수건을 나눠주며 반갑게
맞이한다.
오후에는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저녁놀이 질 때까지 초원을 누비며 또 한 차례의 사파리 드라이브를 한다. 저녁으로는 야외에서 ‘브라이’라는
야생고기 바비큐를 맛본다. 큰 사슴의 일종인 쿠두, 영양 계통인 이런트, 타조 고기 등이 다양한 소스와 함께 나온다.
기차로 돌아오면 라운지에서 칵테일로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다. 기차는 자정까지만 운행을 하고 아침 7시에 다시 출발한다.
증기기관차의 추억과 낭만
가장 높은 지역인 해발 1970m의 벨파스트를 지나 위트뱅크로 달린다. 영국과 네덜란드계 간에 벌어진 보어전쟁(1899~1902) 때
25세의 젊은 윈스턴 처칠이 포로로 잡혔다가 화물열차를 타고 극적으로 탈출한 바로 그 구간이다. 드넓은 평원이라 고산지대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지금까지 디젤 기관차로 달려온 로보스는 바로 여기서 증기 기관차로 바꿔 달고 여행 막바지의 추억과 낭만을 선물한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두 시간 남짓 달려 종착역 프리토리아에 닿으면 승객과 승무원들은 작별의 악수를 나누며 호화로운 기차여행은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