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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차원의 과거사 청산 분위기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을지 모른다. 권력만이 아니다. 좌판을 벌여 놓고 그를 부르는 일단의 지식인, 매체들도
있다. 무엇보다 ‘강정구 버전’은 이미 일부 고교 역사 교과서에도 일정 부분 스며들었다. 그로선 이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도 될 만큼, 정세가
무르익었다는 판단을 할 만도 한 환경이다.
그러나 친북 세력들이 오늘을 살고 내일을 설계하기도 바쁜 국민의 시선을 자꾸 과거로 끌고가려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지금 그들 손에 쥐어진 참담한 성적표다. ‘주사(主思)의 나라’ 북한의 현재는 거덜났다. 백성을 먹이지 못해 식량을 구걸하고 아리랑 집단체조로
체제 단속과 외화벌이를 하며 연명하는 처지다. 이에 비해 세계 시장을 누비는 우리의 대기업들과 박지성·최경주, 그리고 아시아를 휩쓰는
한류(韓流)는 차서 흘러넘치는 대한민국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이런 성적표 앞에서 과거로 가야 그나마 할 말이 있고 유리한 전장(戰場)을 마련할 수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게 친북 세력의 피할 수
없는 처지이자 한계이다. 미국 자본주의와 스탈린 독재가 무엇인지 모르고 겪어 보지 못했던 60년 전 한반도에서 좌우는 팽팽했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어느 것이 좋고 나쁜지 구별하기 힘들던 그 시절의 여론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더라도 친북세력이 큰소리칠 상황은 아니다. 1946년 미군정이
실시한 두 차례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우파 정당은 43%·40%였던 데 비해, 좌파 정당은 33%·31%에 그쳤다. 정치지도자 지지도를 묻는
조사에서는 이승만 32%, 김구 22%, 김규식 9% 등 우파 쪽이 72%인 반면, 여운형 13%, 박헌영 10%, 김일성 3% 등 좌파 쪽은
28%에 그쳤다. 같은 해 “미국인이 소련인보다 더 심한가”란 질문에는 ‘아니다’(68%)가 ‘그렇다’(16%)를 압도했다(전상인, ‘고개숙인
수정주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44년 한반도 인구는 2591만7881명이다. 이 중 북쪽 인구는 1000만명 정도였으나 그중 140만명가량이
북한 공산화 과정에서 고향의 집과 땅을 모두 버리고 남으로 내려왔다. 친북 세력은 이들을 ‘보수 반동’이라고 학대했으나 살던 땅에서 살지도
못하도록 학대해야 할 보수 반동이 그렇게 많았단 말인가.
광복 후 북한에서 민족지도자 조만식이 창당한 조선민주당의 당원은 5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소련 군정을 등에 업은 김일성이 “북한만이라도
사회주의 혁명기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한 이후 조만식을 연금하면서 민족진영 인사들이 대거 월남하기 시작했음은 숨길 수 없는 역사다. 그렇게
해서 빈손으로 고향을 떠난 이들의 피와 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는 데 보탬이 된 것은 또 다른 역사다.
요즘 주사파(主思派)가 휩쓸던 1980년대 대학가를 떠올리면 대학 관계자들은 웃는다. 한 대학교수는 우스갯소리로 주사파 하면 주 4일
학교에 나오는 ‘주사파(週四派)’를 뜻한다고 했다. 잘나가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기 연마에 매달리는 주사파(週四派) 신세대는 20년 전의
주사파(主思派)들을 빠른 속도로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판에 오히려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성세대에서 더 요란한 친북 놀음으로 소동을 피우고
있으니 한숨지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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