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旅行
慶 州
문무대왕수중릉과
이견대
文武大王陵, 利見臺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 사적 제158호.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681년 문무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지내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바위는 둘레가 200m쯤 되는 천연 암초인데 사방으로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는 물길을 터놓아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길은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고, 안쪽 가운데에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의 큰 돌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어 이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다. 한편 바위의 안쪽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물길을 낸 것은 부처 사리(舍利)를 보관하는 탑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682년 신문왕 2년에 양북면 용당리에 감은사를 지어 불력(佛力)에 의해 왜구를 막으려
했는데, <삼국유사>에는 감은사의 금당 아래를 깎아 동해로 구멍을 내어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료글 편집...
이견대 利見臺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다. 이견대에서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도 한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을 포함한 말인데,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란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발굴조사 때 건물이 있던 자리가
발견됨으로써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오늘날 새롭게 다시 지었다
...자료글 편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