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스크랩] 문무대왕수중릉

鶴山 徐 仁 2005. 8. 30. 22:24


여름날의 旅行

慶 州






문무대왕수중릉과 이견대

文武大王陵, 利見臺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
사적 제158호.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681년 문무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지내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바위는 둘레가 200m쯤 되는 천연 암초인데
사방으로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는 물길을 터놓아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길은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고,
안쪽 가운데에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의
큰 돌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어
이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다.
한편 바위의 안쪽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물길을 낸 것은 부처 사리(舍利)를 보관하는
탑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682년 신문왕 2년에 양북면 용당리에 감은사를 지어
불력(佛力)에 의해 왜구를 막으려 했는데,
<삼국유사>에는
감은사의 금당 아래를 깎아 동해로 구멍을 내어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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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대 利見臺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다.
이견대에서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도 한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을 포함한 말인데,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란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발굴조사 때 건물이 있던 자리가 발견됨으로써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오늘날 새롭게 다시 지었다

...자료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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