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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작가 畵壇

[스크랩] ☆명화와 함께 하는 명곡☆(비제 의 아를르의 여인 vs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鶴山 徐 仁 2005. 8. 25. 10:32

Classic Music 의 殿堂 Arthill
(명화와 함께하는 명곡)
☆ 비제 의 아를르의 여인 vs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마네 [douard Manet 1832∼1883]


(마네의 자화상)
Edouard Manet 1832∼1883 에두아르 마네
        프랑스 파리 출생. 1832년에 태어나 1883년 죽을때까지 자기가 본 이미지에 충실하려고 했던 화가로서, 그 이후의 인상주의 화가들 (세잔, 모네)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 이전의 고리타분한 아카데미즘과 생기없는 사실주의 (?)에 도전하여 그 벽을 허문 화가로 알려진 화가가 마네이다. 회화 전체의 역사로 볼 때, 어떤 화가도 마네 만큼 발표하는 작품마다 야유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들랔로와, 졸라, 말라르메, 드가, 모네등과 같은 거장들에게 그만큼 지지받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마네처럼 그림에 의해서뿐 아니라 인물 그 자신 때문에 그토록 매력을 끄는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혁신적인 작품은 63년 낙선화전(落選畵展)에 전시된 《풀밭 위의 식사:Le Dejeuner sur l’herbe》, 65년의 살롱 입선작 《올림피아:Olympia》로 일약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이 두 작품에 대한 비난은 지나쳤으나 도리어 그의 표현기법의 참신성과 밝음을 결정적으로 인상지어준 결과가 되었다. 63년 낙선전(落選展)에 출품한 《풀밭에서의 점심》은 많은 비난을 샀고, 65년의 살롱 출품작 《올랭피아》도 물의를 빚었다. 이 두 작품에는 나체의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육체가 빈약한 평탄한 묘사법 때문에 좋지 않은 평을 받았고, 또 님프·비너스·오달리스크 같은 신화적·이국적 세계의 나부(裸婦)가 아닌 현실세계의 나부를 그렸다는 것이 비난의 원인이 되었다
Manet가 그린 "풀밭위의 점심식사"(1863) 원형
        <풀밭위의 식사>에서는 두 사람의 남자와 두사람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두 남자가 완전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는데 반하여 한 여자는 완전한 나체로 있고 또 한여자는 반쯤 벗은 상태로 있다. 이그림은 쿠르베의 중요성을 최초로 확인한 화가로서 당시의 도덕관을 침해했다. 미술사가들은 이 그림에 대하여 선도 높은 색조의 대담한 처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그림에서 어두운 빛깔은 오직 밝은 빛깔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만 쓰여지고 있고 이와 함께 중간색이 사라져 버려 색조의 명암이 한층 더 선명하게 대비 되고 있다. 또한 화면 전체의 선도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인 느낌이 강조되면서 양감과 원근의 효과가 감소된다. (과거 근대 미술은 양감과 원근을 중시함) 서양 나체화 대부분의 배경은 침실위주였다. 하지만 마네는 선명한 색조를 얻기 위하여 열려진 공간에서 여자를 나체로 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파의 화풍에 비한다면 훨씬 전통적 기법을 따르고 있는 이 그림이 전문가와 대중들의 분노를 일으킨 것은 우선 여인의 누드 때문이다. 당시에도 누드는 많은 그림들의 소재가 되어왔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마네의 누드는 인체를 이상화시키는 그리스적 전통을 따르지 않고있었다. 마네의 친척들인 두 신사와 마찬가지로 누드의 여인 역시 비너스나 아프로디테가 아닌 현실 속의 인물이다. 그런데 숙녀가 남자들 앞에서 그것도 파리 시민들이 자주 애용하는 휴식처인 블론뉴 숲에서 알몸으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와 함께 명암 대비를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처리하지않고 흑과 백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것도 당시의 화풍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극사실주의 조각가인 존 드안드레아의 조각입니다. 마네의 그림에선 소위 부르조와 계급이 대상이였다면 존 드안드레아의 그림에선"노동자 계급"으로 바꿔 표현된 조각으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재구성 한 작품입니다.
        피카소의 작품입니다. 그는 말년에는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변조하는 작업에 집중했는데, 1860년과 61년 2년간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 매달려 이 주제로 무려 150개의 드로잉과 27개의 회화작품을 남겼습니다. 피카소는 그의 말년에 고전 회화를 재정리하면서 자기 스타일로 대가들의 작품을 하나씩하나씩 재해석해 나간다. 이전의 대가들을 모방하려는 무의식은 19세기나 20세기에 모든 예술가들의 머리 속에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마네나 세잔 같은 화가들 스트라빈스키 같은 음악가들 그리고 장 콕도 같은 시인들도 다 그랬다. 옛 거장들의 작품을 풍자하고 모방하는 궁극적 목표는 어느 장르건 마찬가지 고전적 규율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모방하는 것이고 그 결과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론 잉글리쉬의 작품입니다. 론 잉글리쉬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실제로 불타는 해바라기로 그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명화를 살짝 비튼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화가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마네의 원작에서 정반대로 그려졌습니다. 특히 여자 대신 남자가 벗은 그림에서 당신은 무슨 느낌을 받으셨나요?
Bizet, Georges Alexandre Leopold(1838.10.25~1875.6.3)
        비제는 성악 교사인 부친과 피아니스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유한 음악적 환경에서 자라면서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그의 피아노 솜씨는 당대의 거장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으며 로마에서 귀국한 1860년 이후에는 극음악 작곡에 몰두하였다. 25세 때 발표한 오페라 '진주잡이(Les Pecheurs de Perles)'는 약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이었고, 34세에 쓴 극음악 '아를르의 여인(L'Arlesienne)'으로 처음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희곡을 가지고 만든 것으로, 나중에 8곡만 추려 연주회용의 제1, 2모음곡으로 만들어졌다. 비제는 카르멘이 초연 되고 3개월이 되는 6월 3일에 결핵성 호흡기 질환의 악화로 죽게 되는데 어떤 이는 비제의 죽음이 심혈을 다해서 작곡한 카르멘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고 있으며, 그의 재능이나 투지를 높게 평가해 모짜르트 만큼이나 아깝게 요절한 작곡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아를르의 여인)
        [아를르의 여인 ; L'Arlesienne]은 알퐁소 도데의 희곡 상연때 부수음악(附隨音樂) 으로 작곡한 곡이다. '아를르'라는 거리는 이탈리아에 인접한 불란서 남부의 프로방스 지방에 있다. 아름다운 로느 강 가에 자리잡은 아를르는 유서깊은 고도(古都)이며, 로마시대에 만든 원형 야외 경기장은 이 고장의 명소로 널리 소문 나 있다. 또한 불란서의 민요'아비뇽의 다리 위에서'의 아비뇽은 아를르로부터 얼마 안 떨어진 상류에 있다. 도데의 희곡 "아를르의 여인"의 무대가 된 곳이 이 일대이다 '아를르의 여인' 줄거리를 보면, 프로방스 지방을 흐르는 로느 강, 그하류에 아를르 거리가 있다. 이 거리에서 멀지 않은 농촌 까마르그에는 마마이라는 부유한 농가가 있다. 그 농가의 아들 후레데리가 아를르 거리의 소문이 좋치 않은 한 미모의 여인에게 반해 결혼하고 싶어하나 온 집안이 들고 일어나 반대한다. 그리고 서로 잘 아는 이웃마을의 비비에트와 결혼을 종용한다. 후레데리도 그만 단념을 하고 가족이 원하는 결혼을 하려고 마음먹을 즈음, 아를르의 여인이 양치기 청년과 정분이 나서 멀리 도망쳤다는 소문을 듣는다. 잘망한 후레데리는 마을 사람들 열광하는 성 에로와 축제를 외면한 채, 높은 헛간 위 창문으로 올라가 돌바닥 길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비제가 이극을 위해 작곡한 음악은 전27곡이며, 그가운데 6 곡은 혼성 합창이 붙어있다. 극의 초연은 실패 했지만 비제는 마음에 드는4곡을 가려내어 대편성 연주회용 조곡으로 편곡 그해 11월10일 빠리의 빠드뢰 연주회에서 발표했다. 그것이 제1조곡이다. 비제가 죽고 4년 뒤 그의 친구이며 빠리음악원 작곡과 교수였던 '어르네스트 기요'가 비제의 작풍과 오케스트레이션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고 제 2 조곡을 완성했다.
아를르의 여인 제1 모음곡 연속 듣기 제1곡 전주곡(Prelude) 제2곡 미뉴에트(Minuetto) 제3곡 아다지에토(Adagietto) 제4곡 종(Carillon)
        Classic 전문 Cafe Arthill을 항상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학창시절에는 한 여자가 남자들 사이에 옷을 벗고 있어 매우 이상하고 당혹하게 본 기억이 납니다. 얼마전 프랑스에 갔을때 잠시 들른 루브르에서 엽서를 구입하였는데 그중 이 그림이 들어 있기에 피아노 사이에 끼워놓고 보곤 합니다. 그런데 이 마네의 그림을 후대화가들이 변화시켜 다시 그린 사항을 웹상에서 보고는 매우 흥미롭게 느껴 이를 다시 편집해 올려봅니다. 음악가 비제를 선택한 이유는 마네와 동시기의 프랑스인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엮어 보았는데 어울리게 느끼시는지요. 오늘도 즐겁고 좋은시간 이루어 나가시는줄 알며 내일 또 인사 드리겠습니다. ☆ 아트힐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 ☆

 
가져온 곳: [가보고 싶었던 그곳...]  글쓴이: Valse-Love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