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스크랩] 하도의 명상

鶴山 徐 仁 2005. 8. 25. 10:17

하도의 명상 (A Thought in Haddo) (철학입문 제1권: 신으로의 접근)
        오랜만에 좋은날씨가 우릴반겼다. 그동안 허리통증으로 집에만 있었던 안사람을 위로도하고 나도 핑계꼄 바람을 쐴까하고 집을 나섰다 언제나 발을 옮겨도 후회하지 않고 좋은 기분으로 돌아오는 곳 Haddo House를 향하였다 오고 가는길이 번잡하지도 않을뿐아니라 좋은 드라이브길 그길을 약 30여분달린후 도착한 이곳 이젠 이곳이 우리집의 일부인 것 처럼느낀다. 자주 와서도 그렇지만 어쩐지 오면 좋은곳으로 생각이 되기에… 올떄마다 이곳에선 비를 만나는데 오늘은 그럴 것 같지 않은날씨이다 아마도 오늘만큼은 조금은 예외적인 것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곳에서 비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타난나 보다 … 우리는 살면서 앞을 보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서 바라 보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데 왜 그리 요즈음은 내가 어디로 향하는가를 자주 되쇄겨 묻는지 스스로 생각해본다 아마도 고국에서 너무나 바쁜생활속에서 살아서인지 그때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리 한가한것도 아니지만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한다는 내마음속에 깊히 박혀있는 고정관념이 나를 생의 여행에서 내리지 못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손을 흔드는 자와 같이 세상을 주시한다 아니 세상에 있는자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더 맏는 말일것이다 ….//… 이곳에 오면서 내뇌리를 스친 생각이 나를 다시한번 신에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위하여 우리 인간들을 지으셨다는 가르침이 가끔은 나를 반항아로 만들기도 한다. 신은 영원한 존재이기에 변하질 않는다.
        우리는 신의 피조물이라면 우린 그에게 너무나 종속된 존재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과연 나의 생명의 권한은 나에게 순수히 속한것일까? 우리가 신의 피조물이기에 그의 손안에 들어있는 그의 존재들이라면 우리 스스로가 같고있는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하나… 우리는 몸과 피가있다 아주 제한적 공간에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 여기고 있고 세상을 지배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3차원적 공간속에 있는자들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명이 있는것이다 신의 경우 그 생명이 무한한것이라면 그걸 생명이라 부를수가 있을까? 우린 너무나도 하찮은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은 파리목숨과 같이 어떤때는 매우 가볍게 생각되기도한다 하지만 개인개인은 너무나 소중한 생명들이다 각각 개인들에의한 생명의 삶으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최소한의 이공간은 유지되고 발전해 나아가는것이다.
        신은 우리를 질시한다고 하였는데 그는 우리의 이순간을 부러워하기떄문이기떄문이다 지금 이순간은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이며 그 생명자체이다 우리는 아름답다. 우리의 지금 이 모습은 다시 올수 없기떄문이다 생의 순간 가장 아름다운 찬라를 소유하였기에 신은 우리를 시기하기까지한다 우리에겐 뜨거운 피가 있다. 그렇기에 생명의 열정이 있다 아마도 그리스시대 아폴로밑에서는 이런말이 통하였나 보다 그렇지만 내몸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를 느낄떄 나는 행복함을 느끼며 동시에 나는 신을 내자신으로 출발하여 절대자에게 가고싶어진다. 신이 계시한 것들을 무조건 받아 들이기보다는 나의 속에서 신을 향한 울부짖음속에 나는 신의 이해하고 싶다-그것이 반대의 방법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래서 나는 위로부터의 학문보다는 아래서부터의 학문을 택하고 싶다
        내자신이 지금소유하고 있는 순간들이 최고의 순간임을 느끼며 그렇게 지내고싶다 그안에서 나는 하나님을 느끼고 싶다 철학이 – 최소한 플라톤주의에서는 – 물질세계를 멀리하고 이상세계에 대한 영원하고 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는 인간이라는 생명의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물질세계에서 느낄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 줄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보다는 각 인간의 생각은 그스스로가 하나의 세계로 인정받아야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무한함은 그 스스로가 절대자와 연결됨으로 그 가치를 더한다. 무한한 인간의 세계는 절대자와 연결이 되면 스스로를 제한하는 역설이 되기도한다 우린 뜨겁게 타오르는 피의 생명을 가진 자들이지만, 우리의 생명은 하찮은 것이 사실이다 바람앞에 하나의 깃털과 같은 인간이기에 생명의 덧없음을 인정하여야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것이다.
(카페에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는 말잘듣는 dog)
        집사람과 나는 카페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번 왔지만 카페안으로 들어가기는 처음이다 아마도 기분좋은 오늘은 이곳에서 기분 더 좋게할 맏있는 차와 스콘을 먹을수있을 것 같은 기대로 들어갔다 예전과 다르게 이곳 손님들의 표정이 우리를 좀 주시하는듯하다 이곳은 아직 외국인이 별로 많지 않기에 그러거꾸니 했는데 그들 복장을 보니 어디 파티에라도 온사람들의 옷마냥 좀 빼입은 상태이다 아랑곳 하지않고 전망좋은 창가에 앉았다 항상 카페에 오면 즐기는 커피와 스콘한조각 일인당 2.5파운드이면 약 오천원인데 모든게 한국보다 물가가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지나야 가격을 한국돈으로 환산해 비교해보는 버릇이 없어질지… 내가 시킨 스콘과 아내가 시킨 카스타드가 나오고 향기 그득한 커피를 머그잔에 따라주는 순간 너무 잘 왔다는 생각이다. 커피를 따르는 여인에게 오늘 무슨 결혼식이 있느냐 물었더니 그렇다한다. 아마도 이런곳에서 결혼을 할정도의 사람이면 매우 부유할른지는 개인적 사정이라 모르지만 돈은 꽤들어갈 것 같다. 이곳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장소가 바로 이런 Castle이다. 지난번 어떤이가 한국에서는 어디에서 결혼을 하느냐고 묻길래 결혼식장에서 한다는말을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잘 못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런것이 없으니 이해하기가 힘이들겠지
        곳이어 신부들러리들이 고전적인 차로 들이 닥친다 결혼식은 신랑신부당사자보다는 들러리가 더 보기좋고 신나는것같다 그렇지 본인들은 주인공이지만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중심감이 아닌 중압감으로 당일 주인공의 즐거움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의무감이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도 할것이다 두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결혼 이건 완전히 두문화의 혼합이다 거기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문화, 이것이 탄생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을터인데 그길이 탄탄대로의 길이 아님을 결혼 한 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낄것이다 그중 어떤 자들은 고난을 지혜롭게 잘 극복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겠지만 어떤자들은 아마도 평생을 서로의 갈등속에 살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떤자들은 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개인들의 길로 돌아갈른지도 모른다
        나자신을 죽이는 일이 무수히 요구될것이다 내가 살아 나의 방식만을 요구할떈 언제나 그릇이 몇 개는 깨어져 나갈것이고 그 그릇을 주어 담으며 그들은 서로의 주고받는 눈빛속에 다시 하나가될것이고 이것이 반복된다. 이래서 인간은 행복한 것이다 오늘 이루지 못한 행복이 있다면 그행복은 내일 이룰수도 있기에 그 가능성의 생존으로 말미암아 우린 매일 희망을 가슴에 주어 담고 살아갈수가있는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지만 다른 창조물보다는 뛰어난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의 생활이 그분의 손아래있지 아니하고 어느정도는 자신의 영역안에 스스로의 삶을 누릴 자유를가지고 있다 강아지의 목에 걸린 목걸이는 강아지를 분명 카페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강아지의 줄을 풀어준다 하여도 그는 카페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는 밖에서 주인이 나올때까지 기다리는것에 익숙해 있기떄문이다 강아지의 줄이 풀린 우리들이지만 우린 얼마나 그분의 손에서 벗어나 달려갈수 있는 것 일까? 결국 초원을 헤메다 지처 다시 돌아올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면 돌아오지 않는 개는 주인을 잃은 위험에 처해야만한다 결국 스스로 생존해 나아갈 능력이 없음을 깨닭고 주인의 흔적을 찾아 온 누리를 헤메여야한다. 어덯게? 이처럼 우리에겐 자신의 자리가 중요한 것일까? 자리를 떠난자는 그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 자리는 그 존재의 복귀를 영원히 기다리는지 그건 오직 신의 영역에 속해있는 문제이다
        그분이 우릴 그런 구속의 안에 속박해 놓고 좋아하는 것인지 어떤떄는 그분의 이중예정설에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인간의 예지에 대한 한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논리임에 틀림이 없다 너는 선택된자 나는 망할자 라는 철저한 고정적 논리는 하나님의 예정외에 인간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 같지만, 이는 인간의 논리적 한계를 넘지 못하는 판단이다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분의 생각과 예정을… 우리가 어덯게 생각한다 하여도 그 예정은 우리를 그분의 계획속으로 끌어갈 수 있다 미래의 일까지 정해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리자신이 미리 아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리 불행할 것은 없다 정해진 궤도를 향해 간다는 체념이 아마도 그들이 가질수 있는 무서운 마약이 될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용기를 가질수 있도록 하셔서 극복도 할수 있게 하실수 있는분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예정된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그분은 이러한 사고에 사로잡힌 자들을 결코 기쁘게 바라보지 않을것이다 ‘당신은 선택된 자이다 그러기에 행복할 수밖에 없는자이다 지금의 시련은 곳 극복이 되고 당신의 고민은 즐거움으로 변할것이다.’ 그러기에 이논리는 우리에게 신을 전파하는 좋은 수단이 되는것이다 단지 인간의 악함으로 이논리가 상대방을 향한 저주에 사용되지만 않는다면 좋을텐데.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놓으신 그분 나는 그래서 그분을 사랑한다 나의 뜨거운 타는 가슴으로 그리고 들끓는 뜨거운 피로 그분을 사랑하련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밖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는 카페안에 들어와서만이 느낄수 있는 체험적 경험이다 …///… 비가 내린다! 그렇지. 이곳에서 비를 맞지 않고 가는날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그 기대의식은 오늘도 여전히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만을 지을뿐이다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간만의 좋은 날씨와 한가로움이 안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하였다 오늘은 조금 다른곳으로 차를 돌렸다 올적 꼭 이길로 오기에 오늘은 조금 다르게 가려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하여 원래의 길과 합쳐졌다
        나는 최소한 그분의 밑에서 완전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다 신의 우산속에서 그분의 포근함을 나는 나의 갈망으로 그분을 향해가려한다 비록 우리는 그분을 알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나는 그분의 존재를 아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분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나는 그를 알아가며 그분을 향해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