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일상생활에 가장 자주 접하는 직업은 뭐니뭐니 해도 선생님입니다. 일단 너덧 살만 되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만나는 게 선생님이니까요. 그래서 록웰 그림에도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그의 그림에 나오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가 아주 다양합니다.
<학자>에 나오는 아이는 소위 '범생'입니다. 성적이 좋아서 상장을 받은 것 같지요? 그 아이가 범생인 것은 단지 상장 때문만은 아닙니다. 교탁 위에는 비슷한 상장이 아주 많으니까요. 그보다는 아이의 가슴에 달린 훈장 같은 메달입니다. 그리고 공부벌레 같은 인상을 주는 돗수 높은 안경도 그런 분위기를 더 살려줍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그런 비슷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매일 쪽지시험을 봐서 90점을 넘기면 카드에 도장을 하나 받습니다. 그런 도장이 30개 모이면 책과 펜이 그려진 '동배지'를 하나 줍니다. 그 배지는 교복 왼쪽 가슴의 주머니 단에 달고 다니게 했습니다. 동배지가 세 개 모이면 은배지로 바꿔주고 은배지가 세 개 모이면 금배지로 바꿔줍니다.
그러니까 금배지를 하나 받으려면 일년 내내 매일 90점 이상을 받아야 했지요. 그래도 금배지를 받는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두명은 꼭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어디 인간입니까?
그런데 정작 그런 배지를 받는 아이들은 심드렁합니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 사이에 조성되는 일종의 '위화감'때문이었지요. 그래서 학교 안에서는 선생님들의 눈 때문에 배지를 달고 다니다가도 교문을 나서면서 떼서 주머니에 넣어 버리곤 했었지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보다는 친구들이 더 중요하기 시작할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그림 속 범생의 표정도 무덤덤합니다. 칭찬 일색일 선생님의 장광설이 싫은 기색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러움과 약간의 시기심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의 표정 때문에 마냥 좋아할 수도 없으니까요.
어쩌면 그림의 장면은 졸업식일지도 모릅니다. 전교생이 모여서 졸업식을 가진 후에 반별로 따로 모여서 각반 선생님 주재로 열린 마지막 작은 의식 같은 것이지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 상장을 쥐어주면서 일일이 '격려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격려의 내용이야 뭐 별 것 있겠습니까? '얘는 한눈팔지 않고 성실하게 공부해서 오늘의 영광(?)을 얻었다. 앞으로 대학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본받아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정작 본인은 '학자'가 되기보다는 자동차 정비사나 농구 선수가 되고 싶은 지도 모릅니다. 단지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입다물고 있을 뿐입니다.
학교를 졸업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범생보다는 '문제아'가 오래 기억에 남는 법입니다. 그건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선생님들도 그런 말씀들을 자주 하시지요. 강사이기는 하지만 대학에서 적지 않은 제자들을 가져본 제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속썩인 아이들이 정도 많이 가고 오래 생각나더라구요.
<밤탱이 눈 여학생>에 나오는 여자아이는 소위 '왈가닥'인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와 한판 치고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눈탱이가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밤탱이가 됐으니까요. 그뿐 아닙니다. 머리카락은 삐죽삐죽 뻐쳤고, 블라우스가 스커트 밖으로 삐어져 나왔습니다. 구두끈은 풀어졌고 무릎에는 반창고까지 붙였군요.
그런데 이 여학생은 밤탱이 눈을 하고도 만족스럽게 웃고 있습니다. 평소에 자기를 괴롭히던 아이를 죽지 않을 정도로 패준 모양입니다. 그냥 패준 정도가 아니라 머리로 받고 이빨로 물어뜯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젠 감히 날 찝쩍거리지 못하겠지'하는 표정입니다. 그 기분 이해합니다. 저도 무척 그래 보고 싶었으니까요. 저는 끝내 그걸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요.
보통 싸움이 나면 당사자를 모두 교무실로 부르는 법입니다. 메국에서는 교무실 대신 교장실로 보내지요. 학생들의 생활 문제는 교장선생님 전담이니까요. 그런데 밤탱이 눈 아가씨만 교장실 대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걸 보니까 싸움이 꽤 일방적이었나 봅니다. 혹은 얻어맞은 아이가 양호실이나 혹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는지도 모르지요.
살짝 열린 교장실 문안에서는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로 고민중이십니다. 교장선생님의 난처한 표정과 담임선생님의 화난 표정이 좀 대조적이기는 합니다. 담임선생님은 '부모를 부르자'고 하시는 것 같고, 교장선생님은 '아이들 싸우는 거야 다반사인데 그럴 필요 있을까요?'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몇 년 지나면 두 선생님의 회상은 비슷해 질 것입니다. "아, 그 왈가닥? 걔가 평소에 얼마나 당했으면 그렇게 죽기살기로 대들었겠어, 그 덩치에. 그 뒤로는 반 전체가 조용해 졌다니까. 다 그 밤탱이 아가씨 덕분이었지...."
선생님들만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도 대개(?)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범생과 문제아를 막론하고 그렇습니다. 게다가 선생님 생일이라도 맞게되면 평소에 아옹다옹하던 아이들도 '어떻게 하면 선생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를 짜내느라고 머리를 맞댑니다.
이 반 아이들은 깜짝 파티를 해 드리기로 한 것 같습니다. 다들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하나씩 가져와서 교탁 위에 놓았습니다. 정성스럽게 포장한 선물도 있고 학교 오는 길에 길가에서 꺾어온 꽃송이들도 있습니다. 자기 점심 도시락에 넣어온 사과를 내놓은 아이들도 있군요.
그리고 다들 칠판에 한마디씩 썼습니다. 칠판에 숙제로 써놓은 곱하기 산수 문제들을 대충 지우고는 그 위에 제 하고 싶은 말들을 썼습니다. 선생님의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며, 이건 깜짝 파티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지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라고 거듭해서 썼습니다. 선생님 성함은 '미스 존즈'인 모양인데 스펠링이 틀린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걸 보신 선생님이 점수를 깎으실 리는 없겠습니다만.
준비를 다 갖춘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숨죽이며 기다립니다. 보통 때야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는 순간까지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교실 안을 뛰어 돌아다녔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생일을 위한 깜짝 파티니까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선생님은 정말로 깜짝 놀라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놀람의 짧은 순간이 지나자 감동의 물결이 몰려듭니다. 선생님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십니다. 벌써 눈물이 살짝 맺히셨는지도 모릅니다. '이 개구쟁이들이...' 하시면서 말입니다.
두 번째 줄 왼편에 있는 빨간 셔츠 녀석은 도대체 왜 머리에 흑판 지우개를 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대신 선생님을 한바탕 웃겨드리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요? 그런 선물이라면 점심용 사과나 길가의 들꽃 못지 않은 훌륭한 선물임에 틀림없겠습니다.
흔히 풋볼(football)이라고 부르는 메식 축구는 초등학생에서부터 꼬부랑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메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로마 병정 같은 유니폼들을 입고서 몸싸움을 심하게 해야하는 경기지요. 학교에 다니면서 풋볼 선수를 한다는 건 대단히 인기 있는 일입니다. 덩치도 좋아야 하고 힘도 세야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대개 생기기도 잘 생겼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풋볼 선수라면 여학생들에게는 인기 만점입니다.
<풋볼 영웅>에 나오는 남학생은 아마 고등학생쯤으로 보입니다. 벌써 키도 훤칠하고 몸매도 끝내 줍니다. 유니폼의 배번(아니 흉번인가요?)이 떨어졌는지 선생님이 꿰매주고 계십니다. 이게 선생님이 아니라 '치어리더'라는 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면 훨씬 더 로맨틱하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파마넨트를 한 머리로 보아서 여학생은 아닙니다. 요즘에야 사정이 다르겠지만 50년대에만 해도 고등학생이 파마넨트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밤에 잘 때 '구리뿌'로 감아서 하루정도 유지되는 웨이브를 만들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완벽한 파마넨트 웨이브는 어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리고 치어리더가 소지품에 반짇고리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경기 시간이 임박했는지, 아니면 이미 경기 도중에 잠깐 짬을 낸 것인지, 옷을 벗어서 꿰맬 시간이 없는 모양입니다. 선생님은 학생을 무릎 꿇려서 앞에 앉혀놓으신 채 바느질을 하고 계십니다. 사실 풋볼 유니폼은 입거나 벗기가 아주 번거로운 옷이기도 하고요.
젊고 아리따운 선생님이 떨어진 번호를 꼼꼼히 꿰매주시는 동안 이 남학생의 표정이 아주 가관입니다. 평소에 흠모해 마지않았을 최고 미인 선생님이 이렇게 손가락에 골무까지 끼시고 자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바느질을 해 주시는 게 여간 기분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게 조금은 어색한지 표정이 볼만합니다. 아니면 선생님 머리에서 나는 샴푸 향내나 혹은 화장품 냄새 때문에 '환각 상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제 바느질을 거의 마치고서 시치미 질을 한 후 매듭을 짓느라고 선생님이 손으로 가슴을 살짝살짝 눌러 줄 때마다 대마초 몇 모금 빨고 난 사람처럼 눈동자가 궤궤하게 풀려갑니다.
(메국 고등학생의 70퍼센트는 대마초를 피워본 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은 거의 다 술과 담배, 대마초와 '아이스'라고 부르는 히로뽕을 맛보는 것으로 나옵니다.)
록웰이 이 그림 제목을 <풋볼 '영웅'>이라고 붙인 이유가 뭘까요? 이 남학생이 원래 풋볼을 잘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작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부임하신 지 얼마 안되신 데다가 금방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정평이 난 여선생님에게서 저런 엄청난 서비스(?)를 받는 것을 본 뭇 남학생들에게 그는 영웅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 남학생을 사모하는 뭇 여학생들에게는 질투가 불타오르는 순간이겠구요.
어쩌면 다음 경기 때는 풋볼 선수들이 너도나도 유니폼 번호 판을 일부러 조금씩 찢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학생들은 너나없이 반짇고리를 준비할 터이고요.
그래도 풋볼 선수들은 당장 유니폼 번호라도 찢어서 여선생님이나 여학생의 관심을 끌 수 있겠습니다만, 키도 작고 덩치도 쪼끄매서 운동선수가 될 수 없는 남학생들의 가슴은 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는 체념을 하고 말겠지만 아주 일부의 학생들은 '나도 한번...' 하고 독한 마음을 먹을 지도 모릅니다.
록웰의 <챔프>에 나오는 쪼끄맣고 삐쩍 마른 남학생은 독한 마음을 품은 쪽인가 봅니다. '나도 꼭 멋진 풋볼 선수가 되고 말테다. 그리고는 유니폼 번호를 찢어서 선생님의 향수 냄새를 맡아보리라.'
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 덩치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몸매 만들기에 들어갔습니다. 차고에 처박혀 있던 운동기계도 자기 방에다가 갔다 놓고 멋지게 생긴 바디빌더 사진도 붙여 놓았습니다. 바디빌더 사진 옆에는 아령운동을 하는 방법을 그린 그림도 같이 붙여놓았군요. 그 포스터 밑 부분에는 "남자가 되어라"고 크게 씌어 있고 바디빌더 옆에는 "(자기처럼 되기가) 아주 쉽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어쨌든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샌님 같은 이 남학생은 아령 운동부터 시작합니다. 원대한 꿈도 한 걸음부터이니까요. 다만 의자 옆에 모로 누운 검둥개는 "꿈 깨라"는 듯이 심드렁한 표정이기는 합니다.
검둥개가 뭐라고 생각하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고 진인사 대천명입니다. 꾸준히 운동하다 보면 고등학교 때는 어렵더라도 대학가서는 빛을 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압니까? 미팅 나가서 멋진 '퀸카'라도 낚을(?) 수 있을지....
조정희 드림,
평미레(/jc7202)
가져온블로그;평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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