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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스크랩] 국방부 출입 만 10년을 맞아(조선일보 유용원 기자)

鶴山 徐 仁 2005. 8. 16. 23:52
작성자 : 유용원 2
국방부 출입 만 10년을 맞아

오늘(3월24일)은 제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제가 사이트를 만든 뒤 최신정보파일에 제 개인적인 얘기를 올리는 것은 처음인데 널리 양해해 주세요. 오늘은 제가 대한민국 국방부를 출입한지 꽉찬, 만 10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감상적인 얘기를 해도 오늘 하루는 좀 이해해 주세요.

제가 국방부를 출입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1월 초입니다. 90년2월부터 기자생활을 시작, 93년1월까지 월간조선에서 근무하면서 군 관련 기사를 주로 썼지만 이 기간중엔 국방부를 정식으로 출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93년1월 조선일보 편집국으로 옮기면서 국방부 출입과 경찰 기자를 2개월 가량 겸하다가 93년3월24일부터 국방부 전담으로 바뀐 것입니다. 원래 지난해가 만 10년이 되는 때이지만 96년7월부터 97년7월까지 1년간 미국연수를 다녀왔기 때문에 오늘이 만 10년이 되는 것입니다.

60년대~70년대엔 국방부를 20년 정도 출입한 경우도 있었지만 80년대 이후 10년 이상 출입한 경우는 제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길게 출입한 경우 8년 정도 국방부를 담당한 경우가 있었고, 현재 전문기자 타이틀을 갖고 출입하는 기자들이 저외에도 몇 분 계신데 이 분들의 출입기간은 8년 미만으로 저와 제법 차이가 납니다. 이 분들은 대부분 언론사 경력으로는 저보다 몇년 선배입니다. 장기간 출입한 기자들이 이처럼 드문 것은 우리나라엔 아직 전문기자제가 정착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1,2년마다 출입처(담당분야)가 바뀝니다. 짧으면 6개월만에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문기자제가 정착돼 있는 미국은 백발이 성성하도록 한 출입처(백악관, 펜타곤 등)를 10~20년 이상 담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제가 출입 기간만을 갖고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방부를 10년 아니, 20년 출입하더라도 군이라는 거대한 '공룡'의 다리 한쪽만 만지다가 나갈 수 있습니다. 본인의 노력과 능력이 없으면 군이라는 조직에 깊숙이 들어가기 힘들지요. 저는 지난 10년간 그 누구 못지 않게 치열하게, 열심히, 그리고 군 내부에 들어가서 살아왔기 때문에 10년이라는 기간을 좀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93년 처음 국방부를 출입할 때 저는 3년차의, 경험이 일천한 초년병 기자였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초기 군 사정 태풍이 몰아칠 때여서 기사가 매우 많았습니다. "93년 1년 동안 평상시 10년치 기사가 한꺼번에 나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많았지요. 제가 국방부 사상 가장 특종을 많이 한 기자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엔 치열한 기사경쟁 과정에서 물(낙종)도 많이 먹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기자로서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나이먹는 줄 모르겠는데 제가 처음에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세월의 빠름을 실감합니다. 93년 당시 국방부의 과장(대령)이었던 사람들은 현재 중장급 고위장성이 돼 있습니다. 당시 장성이었던 분들은 대부분 전역했고 국방장관 등 고위직을 역임한 분들도 있습니다. 현 조영길 장관은 당시 육군소장이셨지요. 지난 10년간 8명의 국방장관이 바뀌었고 조영길 장관은 제가 만난 아홉번째 현직 장관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가장 '사고'를 많이 친 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종이란 것이 해당 출입처 관계자들에겐 고통과 부담으로 와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하나회 명단 첫 공개, 조달본부 포탄사기사건, 해군 대양해군 건설계획, 병무비리 수사, 린다 김 정관계 커넥션, 북한 제네바 합의 후 고폭실험, 주한미군 2000만평 땅 반환계획, 북한 미그기의 미 정찰기 위협 사건 등이 그동안의 제 특종중 제법 파장이 컸던 것으로 거론되곤 합니다.

이로 인해 옷을 벗은 분도 있고 고통을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동안 제 기사로 인해 두명의 현직 장관이 물러났고, 여러 장성들이 옷을 벗거나 자리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 분들께는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최일선에서 각종 기사에 대한 뒤치다꺼리를 하는 공보 관계자들에겐 미안한 감정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국방부 공보관계자들은 지금도 며칠전 제가 '이라크 파병지역 변경' 특종을 하는 바람에 생긴 '후폭풍' 때문에 엄청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이 군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검사나 경찰이 악역을 맡듯이 기자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냐"며 격려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기자인 이상 경우에 따라 비판적인, 신랄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개인적인 사감, 친소관계에 의한 기사는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그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면 저는 벌써 국방부에 발을 붙이지 못해 '추방' 또는 '축출' 당했을 것입니다. 군의 위상이 90년대 초에 비해 급전직하했지만 69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국방부는 그리 만만한 조직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저도 모르는 사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저를 정말 아끼신다면 그런 모습이 보일 경우 언제든지 부담갖지 말고 즉각 제게 '고언'을 해주십시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제가 왜 이렇게 국방부를 오랫동안 출입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국방부를 나오냐고 묻는 분들에게 저는 웃으면서 "제가 다른 곳에 가봐야 기여할 것이 별로 없다고 해서, 다른 재주가 없어서 국방부를 못 떠나고 있다"고 대답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냥 농담 삼아 하는 얘기지요.

제 사이트의 '유용원은 누구인가' 인사말에 왜 제가 국방전문기자를 희망했는지를 밝혀놨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기체계에 관심이 많았고 이 취미를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갖게 돼 취미가 직업이 된 셈입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90~91년만 해도 군은 대단한 성역이었기 때문에 "전인미답의 성역을 개척한다"는 좀 건방진 개척자 정신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부모님은 초기엔 제가 국방전문기자가 된다는 데 대해 아주 못마땅해 하셨죠. 비록 시골이지만 충남 천안에서 과외 한번 받지 않고 초-중-고를 모두 전교 1등으로 수석 졸업했고, 재수를 하지 않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바로 입학했기 때문에 대학교수나 경제관료, 은행 간부가 되기를 원하셨지요. 지금은 부모님들의 생각이 바뀌셔서 제 자랑을 여기저기 많이 하고 다니시지요.

저는 2002년10월 홈페이지 100만 돌파행사 때 "대한민국의 최초의 진정한 군사전문, 국방전문 기자가 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자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포부였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90~9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리 군의 무기도입 문제를 기사화할 때 회사에선 "모처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갈등과 유혹도 없지 않았습니다. "전공을 살려 경제부 기자를 하는 것이 훨씬 실속 있을텐데 왜 '영양가' 없는 국방부 기자를 하느냐"는 비아냥거림 비슷한 질문도 많이 받았지만 아직까지 한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여기엔 제 출입처를 바꾸지 않은 회사측의 배려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지 회사에서 제 출입처를 국방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바꿨다면 오늘의 유용원은 있을 수 없었겠지요.

앞으로도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계속 유지하려 합니다. 여기엔 많은 어려움과 장애가 있을 것입니다. 기자생활을 14년 넘게 하다보니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드는 때도 종종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는 전례가 드문 전문기자의 길을 개척하다보니 불확실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길을 계속 가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국방전문기자의 길을 개척해 오면서 난관도 있었지만 보람과 성과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이 사이트도 그런 보람과 성과중의 하나입니다. 개설 2년7개월여만에 누적 방문자가 630만명을 넘고 하루 평균 1만5000~1만8000여명(일일 페이지뷰는 50만 페이지뷰 이상)이 방문, 우리나라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군사 사이트가 됐습니다. 이제 국내는 물론 미국,일본, 중국 등지에서 전문가와 기자들이 저를 인터뷰하러 오거나 이 사이트를 찾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중의 하나인 군이라는 존재가 뭔가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군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군의 장래에 대해 우려하지만 저는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군의 장래를 밝게 봅니다. 많은 분들이 군 생활중의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직업군인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은 직업군인들도 많지요. 앞으로 군을 이끌어갈 영관장교나 위관장교중에는 똑똑하고 맑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군이 굉장히 배타적이고 무뚝뚝한, 세련미가 떨어지는 점은 있습니다. 오늘 국방부 출입 만 10년이 되는 날이지만 저는 그 흔한 기념패 하나 못 받았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다른 정부 부처는 어느 부처든 출입 6개월~1년만 돼도 떠나면 기념패를 주는데 국방부는 정말 인간미가 없다. 정나미가 떨어지는 조직"이라고요. 국방부는 그런 점에서 기자들을 '아군'으로 만드는 세련미나 융통성은 정말 형편 없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것을 군인들이 순박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또 국방부와 '불가근 불가원'의 차원에서 별 부담 없이 국방부를 비판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요.

너무 감상적인, 제 개인적인 얘기가 길었군요. 아무튼 앞으로 10년 뒤에도 제가 군 곁에 있어 이런 소감문을 쓸 수 있도록 회원 여러분들 비롯해 이 사이트를 찾는 분들께서 도와주세요. 많은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저를 "우리나라에서 국방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기자"라고 치켜세워주시지만 저는 솔직히 글 쓰는 것이 점점 두려워집니다. '국방안보 분야가 정말 방대하구나, 내가 모르는 부분이 정말 많았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끊이 없이 공부를 하면서 업그레이드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그동안 제가 이지스함, 라팔 전투기, K-1 전차 등을 탑승했을 때입니다. 참고하세요.






출처 : 교육학 관련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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