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코드를 자극하라!
written by. 곽대중
식민지 조국의 품 안에 태어나 / 이 땅에 발 딛고 하루를 살아도 / 민족을 위해 이 목숨 할 일 있다면 / 미국놈 몰아내는 그것이어라 / 아아 위대한 해방의 길에 / 이름 없이 쓰러져간 전사를 따라 / 자랑스럽게 나아가 부서지리라 / 반미구국투쟁 만세!
학생운동권 시절 필자가 좋아했던 애국의 길이라는 노래의 1절 가사이다. 지금도 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 다만 '미국놈 몰아내는'을 '김정일 몰아내는'으로, '반미구국투쟁 만세'는 '북한해방투쟁 만세'로 바꿔 부른다.
현재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는 동지들도 이렇게 개사해 부르고 있다.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植民地)라 착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 북한이야말로 수령이 인민을 잡아먹는 식민지(食民地)이니 이 대목은 원곡 그대로 부른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은 윤민석이다. 올해 초 '평양에 가보세요'라는 노래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이다.
사는 게 힘들다 느낄 땐 평양에 가 보세요 / 어려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있죠 / …… / 평양에 꼭 가 보세요 고향 가는 마음으로 (평양에 가보세요 中)
윤민석은 80~90년대 학생운동권이 즐겨 불렀던 전대협 진군가, 전사의 맹세, 사랑하는 동지에게 등 당시로서는 주옥같은 노래를 만들어냈다. 노래가 좀 괜찮다 싶으면 대개 윤민석 작사·작곡이었고 필자도 진심으로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1992년 윤민석은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조직인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윤씨가 운동권들에게 반미(反美)와 투쟁, 신념을 선동하는 노래를 쏟아냈던 이면에 숨어 북한에는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바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혁명의 길 개척하신 그때로부터 / 오늘의 우리나라 이르기까지 / 조국의 영광 위해 한 생을 바쳐 오신 / 수령님 그 은혜는 한없습니다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1절)
▲ 윤민석 홈페이지에 실린 노래
출소 후 한동안 잠잠했던(?) 윤씨가 두각을 드러낸 것은 'fucking U.S.A'라는 노래 때문.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당시 심판의 판정 문제로 반미 감정이 극해 달하던 때, 그에 편승해 반미노래를 내놓았다.
당시 이 노래는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번져 인기를 모았다. 이에 신났던지 윤씨는 부시 대통령이 프리첼이라는 과자를 먹다 졸도한 사건이 있자 기특한 과자라는 노래와 또라이 부시라는 노래, 대통령 선거 때에는 특정후보를 우회적으로 겨냥해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어'라는 노래, 대통령 탄핵사건 때에는 '너흰 아니야'라는 노래 등을 연달아 만들어냈다. 하여간 그 재주는 썩지 않은 것 같다.
서설(序說)이 길었지만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 보자. 윤민석이 그 좋은 재주를 엉뚱한 곳에 바치고 있는 것이야 더 이상 말릴 재간이 없고,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그런 좋은 재주를 발휘한 사람들이 과연 없는지 묻고 싶다.
없는 게 아니라 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이미 4-5년 전부터 북한 현실과 민주화의 염원을 담은 노래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북한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그 노래들을 부르고 있으며 멋진 율동까지 있다. 문제는 한국의 이른바 보수세력이 젊은이들의 이런 감성코드를 따라 갈 생각을 하지 않는 데 있다.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보수단체의 집회에 참가해 보면, 문화적 코드에 있어서는 좌파진영에 한참이나 떨어진다. 지금껏 보수단체의 집회에서 불렸던 노래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런 노래로 청년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그러한 집회 진행방식으로 청년들을 광장에 앉게 만들 수 있을까?
오는 8월 15일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있다고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또 그 밥에 그 나물'이겠군 하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박수치고, 촛불 흔들고, 목이 터져라 노래부르고, 춤추고, 눈물 흘리는 좌파집회를 단지 광란(狂亂)으로 치부하기 전에, 왜 보수단체들은 누군가를 그런 식의 광란으로 이끌지 못하는 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좌파들은 돈이 많아서 노래와 춤을 창작하고 역동적인 집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옳든 그르든 자기 나름의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단체에 속해있는 분들은 그런 열정이 없는가? 아니다.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높은 열정과 의지를 지닌 분들을 많이 만났다.
북한의 피눈물나는 현실을 서정적으로, 때론 힘찬 노랫말도 담아낼 시인들이 많다. 그것에 곱게 멜로디를 입힐 작곡가들도 많다. 힘찬 노래는 힘찬 춤사위에 담고, 가슴 아픈 동포의 삶을 한 맺힌 춤사위에 담아낼 분도 있을 것이다.
꼬집어 이야기하자면 이문열 선생이나 류근일 선생 같은 분이 북한민주화를 염원하는 심금 울리는 노래말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애국적인 작곡가 선생께서 거기에 곡을 입혀주셨으면 한다. <월간조선> 같은 언론매체에서는 그런 노래를 CD나 테이프에 담아 독자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보고 싶다.
몇 해 전 필자는 한총련이 총학생회를 장악한 지방의 어느 국립대학에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새내기 배움터라는 것을 했는데 참가기념품으로 운동권 노래를 잔뜩 담은 테이프를 나눠줬다. 이런 일은 과거에는 더욱 비일비재했다. 그게 모두 학생회비였고, 대학본부에서 지원한 예산이었다.
물론 그 노래를 듣고 생각이 바뀐 신입생들이 얼마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듣고 흥얼거릴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집요하고 악착같이 의식화를 한다.
예전에 운동권에는 매년 8월 15일 마다 통일노래 한마당이라는 것이 있었다. 전국 각지 운동권들이 예선을 거쳐 올라와 서울에서 본선을 치렀고, 이 과정을 통해 많은 운동권 가요가 창작, 보급되었다. 북한민주화를 염원하는 단체나 언론매체에서 그런 공모전이나 경연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또 어떤가.
그래서 이제는 인터넷에 'fucking U.S.A'가 아니라 'fucking 김정일'이 메아리 치도록 하자.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조롱하는 노래를 합창하며 '謹弔 국가인권위'라고 적힌 만장(輓章)을 들고 청사 앞에서 인권위 장례식이라도 벌여보자. 민생에는 관심 없이 또라이 편지질만 계속 해대는 또라이 노무현이라는 노래도 보급해 어린아이들까지 흥얼거리게 만들자.
간담 서늘하게 검은 연기 내뿜으며 인공기를 불태우는 우리만의 카타르시스 같은 집회보다 이런 것들이 천만배는 위력적이다.(Konas)
곽대중 / DailyNK 논설실장
written by. 곽대중
식민지 조국의 품 안에 태어나 / 이 땅에 발 딛고 하루를 살아도 / 민족을 위해 이 목숨 할 일 있다면 / 미국놈 몰아내는 그것이어라 / 아아 위대한 해방의 길에 / 이름 없이 쓰러져간 전사를 따라 / 자랑스럽게 나아가 부서지리라 / 반미구국투쟁 만세!
학생운동권 시절 필자가 좋아했던 애국의 길이라는 노래의 1절 가사이다. 지금도 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 다만 '미국놈 몰아내는'을 '김정일 몰아내는'으로, '반미구국투쟁 만세'는 '북한해방투쟁 만세'로 바꿔 부른다.
현재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는 동지들도 이렇게 개사해 부르고 있다.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植民地)라 착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 북한이야말로 수령이 인민을 잡아먹는 식민지(食民地)이니 이 대목은 원곡 그대로 부른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은 윤민석이다. 올해 초 '평양에 가보세요'라는 노래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이다.
사는 게 힘들다 느낄 땐 평양에 가 보세요 / 어려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있죠 / …… / 평양에 꼭 가 보세요 고향 가는 마음으로 (평양에 가보세요 中)
윤민석은 80~90년대 학생운동권이 즐겨 불렀던 전대협 진군가, 전사의 맹세, 사랑하는 동지에게 등 당시로서는 주옥같은 노래를 만들어냈다. 노래가 좀 괜찮다 싶으면 대개 윤민석 작사·작곡이었고 필자도 진심으로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1992년 윤민석은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산하 조직인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윤씨가 운동권들에게 반미(反美)와 투쟁, 신념을 선동하는 노래를 쏟아냈던 이면에 숨어 북한에는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바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혁명의 길 개척하신 그때로부터 / 오늘의 우리나라 이르기까지 / 조국의 영광 위해 한 생을 바쳐 오신 / 수령님 그 은혜는 한없습니다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1절)
▲ 윤민석 홈페이지에 실린 노래
출소 후 한동안 잠잠했던(?) 윤씨가 두각을 드러낸 것은 'fucking U.S.A'라는 노래 때문.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당시 심판의 판정 문제로 반미 감정이 극해 달하던 때, 그에 편승해 반미노래를 내놓았다.
당시 이 노래는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번져 인기를 모았다. 이에 신났던지 윤씨는 부시 대통령이 프리첼이라는 과자를 먹다 졸도한 사건이 있자 기특한 과자라는 노래와 또라이 부시라는 노래, 대통령 선거 때에는 특정후보를 우회적으로 겨냥해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어'라는 노래, 대통령 탄핵사건 때에는 '너흰 아니야'라는 노래 등을 연달아 만들어냈다. 하여간 그 재주는 썩지 않은 것 같다.
서설(序說)이 길었지만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 보자. 윤민석이 그 좋은 재주를 엉뚱한 곳에 바치고 있는 것이야 더 이상 말릴 재간이 없고,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그런 좋은 재주를 발휘한 사람들이 과연 없는지 묻고 싶다.
없는 게 아니라 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이미 4-5년 전부터 북한 현실과 민주화의 염원을 담은 노래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북한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그 노래들을 부르고 있으며 멋진 율동까지 있다. 문제는 한국의 이른바 보수세력이 젊은이들의 이런 감성코드를 따라 갈 생각을 하지 않는 데 있다.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보수단체의 집회에 참가해 보면, 문화적 코드에 있어서는 좌파진영에 한참이나 떨어진다. 지금껏 보수단체의 집회에서 불렸던 노래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런 노래로 청년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그러한 집회 진행방식으로 청년들을 광장에 앉게 만들 수 있을까?
오는 8월 15일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있다고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또 그 밥에 그 나물'이겠군 하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박수치고, 촛불 흔들고, 목이 터져라 노래부르고, 춤추고, 눈물 흘리는 좌파집회를 단지 광란(狂亂)으로 치부하기 전에, 왜 보수단체들은 누군가를 그런 식의 광란으로 이끌지 못하는 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좌파들은 돈이 많아서 노래와 춤을 창작하고 역동적인 집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옳든 그르든 자기 나름의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단체에 속해있는 분들은 그런 열정이 없는가? 아니다.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높은 열정과 의지를 지닌 분들을 많이 만났다.
북한의 피눈물나는 현실을 서정적으로, 때론 힘찬 노랫말도 담아낼 시인들이 많다. 그것에 곱게 멜로디를 입힐 작곡가들도 많다. 힘찬 노래는 힘찬 춤사위에 담고, 가슴 아픈 동포의 삶을 한 맺힌 춤사위에 담아낼 분도 있을 것이다.
꼬집어 이야기하자면 이문열 선생이나 류근일 선생 같은 분이 북한민주화를 염원하는 심금 울리는 노래말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애국적인 작곡가 선생께서 거기에 곡을 입혀주셨으면 한다. <월간조선> 같은 언론매체에서는 그런 노래를 CD나 테이프에 담아 독자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보고 싶다.
몇 해 전 필자는 한총련이 총학생회를 장악한 지방의 어느 국립대학에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새내기 배움터라는 것을 했는데 참가기념품으로 운동권 노래를 잔뜩 담은 테이프를 나눠줬다. 이런 일은 과거에는 더욱 비일비재했다. 그게 모두 학생회비였고, 대학본부에서 지원한 예산이었다.
물론 그 노래를 듣고 생각이 바뀐 신입생들이 얼마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듣고 흥얼거릴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집요하고 악착같이 의식화를 한다.
예전에 운동권에는 매년 8월 15일 마다 통일노래 한마당이라는 것이 있었다. 전국 각지 운동권들이 예선을 거쳐 올라와 서울에서 본선을 치렀고, 이 과정을 통해 많은 운동권 가요가 창작, 보급되었다. 북한민주화를 염원하는 단체나 언론매체에서 그런 공모전이나 경연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또 어떤가.
그래서 이제는 인터넷에 'fucking U.S.A'가 아니라 'fucking 김정일'이 메아리 치도록 하자.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조롱하는 노래를 합창하며 '謹弔 국가인권위'라고 적힌 만장(輓章)을 들고 청사 앞에서 인권위 장례식이라도 벌여보자. 민생에는 관심 없이 또라이 편지질만 계속 해대는 또라이 노무현이라는 노래도 보급해 어린아이들까지 흥얼거리게 만들자.
간담 서늘하게 검은 연기 내뿜으며 인공기를 불태우는 우리만의 카타르시스 같은 집회보다 이런 것들이 천만배는 위력적이다.(Konas)
곽대중 / DailyNK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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