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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에서 강정구 추방운동

鶴山 徐 仁 2005. 8. 3. 00:37
번 호   6949 조 회   676
이 름   토론방(펌) 날 짜   2005년 8월 2일 화요일
동국대에서 강정구 추방운동
동국대에서 강정구 추방운동(옮겨온글)


강정구교수 보십시오.(우리대학에서 강교수의 추방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저는 인도철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만학도 김병관입니다.

저는 오늘처럼 동국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작년 YMCA에서 개최한 원탁 아카데미 토론에서 지금처럼 미국이 우리의 통일을 방해했다는 해괴한 발언을 하셔서 제가 정치이념이나 체제에 대한 역사적 실험은 수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이미 끝 난 게 아니냐고 따지니까 자본주의는 너무나 잔인한 약육강식의 제도이기 때문에 거부 할 수박에 없다고 하셨지요. 하도 답답해서 제가 산에서 힘센 호랑이를 내 몰면 정글에 영원한 평화가 오느냐고 물었지요. 매달 새끼를 낳는 토끼의 식구가 한없이 불어나 풀이 남아나지 않아 산이 황무지가 되어버리는 간단한 이치도 모르면서 혹세무민해서는 안 된다고 힐난하자 다른 좌석으로 가버려서 대화가 중단되고 말았지요.

저 역시 젊은 시절에는 역사의 원동력인 노동을 분배하는 것이야 말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첩경이라 신뢰하고 매판자본을 배격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답니다.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지상천국을 만들 것이라 확신하면서 혁명의 역량을 키워 남반부 인민들을 해방시켜야한다는 신념으로 월북을 기도하는 해프닝도 있었지요.

어리시절에는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잔인한 모습을 보고 세상을 만든 신을 원망하기도 했고, 집에 키우던 소가 도살장으로 팔려가는 모습을 보고 목 놓아 울기도 했답니다.

방황하던 시절 오대산에서 탄허대사를 만나 정치란 물과 공기처럼 누구의 덕으로 사는 줄모를 정도의 덕화로 이루어져야한다는 말씀에 크게 감동되어 공산주의의 허망함을 깨달았지요 이 우주의 섭리는 먹고 먹히는 되먹임(feed back) 현상이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에 잠시 뱀에게 먹히는 개구리가 억울해 할 게 없다는 이치를 터득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평등이론과 불교적인 평등이론은 이처럼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계시면서 대학 강단에 서있다는 것은 정의와 진리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을 잘못 인도하는 범죄행위가 분명하지요. 더구나 시작도 끝도 없이 인과의 법칙에 따라 영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생명의 진실이라는 사실을 전 인류에게 자각시켜 모든 갈등을 해소시킴으로서 새로운 정신문명의 르네상스 시대를 선도해야하는 우리 동국대에서 인간파괴의 논리를 주장하는 교수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강 교수같이 유물사관에 천착하여 인간이 물질만을 탐하는 수전노라면 생명의 어머니인 지구를 갉아먹는 독충에 지나지 않지요.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기 위해서도 영적인 가치를 더 우위에 설정하여 진리의 꽃을 부단 없이 피워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하된 사명이 아닐까요. 부처님께서도 세상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는 일보다 단 한사람을 진리를 증득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더 큰 공덕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란 도가니안의 물과 같아서 벌컥벌컥 마시다보면 금세 바닥이 나지만 진리의 샘은 만겁에 흘려내려 너도 마시고 나도 마시는 모두의 감로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의 허망함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우리 안에 갇힌 동물처럼 생존법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 원죄가 되고 말았지요. 교수께서 그렇게도 흠모해온 소련이나 북한이 아주 좋은 본보기입니다. 얼마 전 연해주를 방문해 보았는데 역동적인 에너지가 고갈된 무기력한 세상이란 걸 금세 알 수가 이었었습니다. 경쟁이 없는 사회는 더 이상의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류가 비싼 대가를 치루고 터득해 왔는데 이를 아직도 외면하고 또 다른 실험을 하자는 것입니까. 저도 패권국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최상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 흘린 미국의 피는 참으로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맥아더가 공산 통일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인류의 역사가 바뀌고 말았을 거라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데올르기 전쟁의 최대 희생양인 우리가 더 이상 이념논쟁에 휘말리면 7000만 동포가 동반자살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세계는 지금 이념논쟁을 종식하고 경제전쟁 문화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무역위원회 리투웅 주임은 기업을 국가간 경제전쟁의 대리인으로 세워야한다고 열을 올리고 잇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귀하와 같은 얼치기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기업과 자산계층을 개혁대상으로 삼아 온지 오래입니다. 기업 성공률이 겨우4%밖에 안 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투자를 하겠습니까. 우리의 아들딸들이 비싼 등록금으로 졸업을 해도 예전과는 달리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무슨 이유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까? 이제 머지않아 노동의 사망시대가 열리고 우리의 후예들이 중국으로 품 팔려가는 날이 머지않을 거라는 예측입니다.

. 소극적인 공생을 도모하는 평등논리 즉 정치적 포퓰리즘이 독재보다 부정부패보다 자본주의의 그 어떤 악습보다도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귀하는 사이비 지식인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의 이상론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1960년대 후루시쵸프가 미국을 방문 한 후 자본주의의 모순점을 목격하고 (히피, 마약사범, 지하경제, 빈부격차, 총기사고 등) 머지않아 미국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개혁에 성공했다고 확신한 소련이 먼저 무너진 이유가 바로 진리를 거역한 이상론이 앞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의 향수에 젖어있던 서유럽의 좌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999년 좌파정부의 수반격인 블레어와 슈뢰더가 쓴 아래 반성문은 교수께서도 깊이 반성해야 할부분입니다.

첫째: 우리는 창의성과 다양성대신 보편성과 평등을 사회정의로 착각했다.

둘째: 사회 정의를 정부지출로 달성하려 했다.

셋째: 권리를 의무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넷째: 정부의 역할을 과대평가했다.

다섯째: 시장의 약점은 지나치게 부각했고 장점을 과소평가했다.

뒤늦게 뉘우친 블레어가 보수주의 실용노선으로 전환하자 그의 지지자들이 대처의 철가방을 든 배신자라고 조롱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그는 영국 경제를 유럽에서 가장 활력 있게 끌고 가고 있지요.

자유의 창가에는 평등이 저 멀리쯤 보이지만 평등의 창가에는 평등도 자유도 보이지 않더라는 알렉시스 토크빌의 명언을 상기하셔서 6.25가 통일전쟁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접으시기 바랍니다.

자유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과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시든지 우리대학을 떠나 김일성대학으로 가시든지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경고하는 바입니다.

학우 여러분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강정구교수 추방위원회 011-252-0615

이메일: brighthol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