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스크랩] 꿀풀 사진과『선물』

鶴山 徐 仁 2005. 7. 25. 22:33

 꿀풀 사진과 무엇을 올릴까 고민하다가『함께 가는 세상』2005년 1월호에 실렸던 글을 올린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A4 한 장 길이로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전쟁터에서 받은 편지가 생각나 써본 것이다. 길이가 너무 제한돼 자세히 못 썼는데, 언제 소설로 써볼 생각이다.

 



♣ 선물 / 전쟁터에서 받은 편지

 

 벌써 30여 년 전의 이야기다. 경기도에서 17개월째 군대 생활을 하던 나는 1년 동안 월남 파견 근무 명령을 받았다. 소설 쓰기가 꿈이던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지원해 두었던 것이다. 강원도 오지에서 4주 동안 현지 적응 훈련을 받고 1주간의 항해 끝에 월남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배치 받은 곳은 비둘기부대 민심파견대였다.

 

 민심대는 민간인들을 상대로 심리전(心理戰), 그러니까 주민들을 살피고 도우면서 우리편으로 만드는 게 주 업무였다. 비둘기부대는 당시 사이공(지금은 호치민시로 바뀌었음)에서 서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파견대에는 4명의 식구가 나를 맞았는데, 대장인 장교 한 분과 귀국을 앞두고 있는 선임 사병, 그리고 2명의 운전병이었다.

 

 귀국 3일을 남겨놓은 선임 사병은 대구 출신이었는데, 대학 국문과 2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는 나에게 여러 통의 편지와 신문 쪽지를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쪽지는 대구의 지방지 Y일보 독자란에 투고된 기사를 오린 것으로 '고향이 그리울 때면 집에서 보내온 소포 내부 포장지인 신문 한 장을 꺼내 몇 번이고 반복해 읽다보니, 이제는 다 외울 정도가 돼버렸다'는 내용이고, 편지는 이에 감동한 독자들이 보낸 것이었다.

 



 

 나는 그 중 하나만이라도 소개받을 수 없을까 하여 3일 동안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귀국 전날 회식 때는 주머니를 털어 맥주 1상자를 사기도 했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공항에 배웅 나간 나에게 귀국 선물이라면서 편지 1통을 쥐어줬다. 여대생 편지가 많아 크게 기대했는데, 받은 것은 겨우 13세 중1 소녀의 것이었다.

 

 조금 실망했으나 당시로서는 더운 밥 찬 밥 가릴 처지가 못되었다. 갑자기 입대하느라 변변히 애인 하나 마련하지 못했던 내가 이국의 전쟁터에서 외로움과 향수를 견뎌 나가려면 말벗이 필요했다. 다행스런 것은 편지 내용으로 보아 소녀가 꽤나 영리하고 어른스럽다는 점이었다. 또박또박 쓴 글씨부터 맞춤법과 문장력, 그리고 글의 내용까지 빈틈이 없었다.

 

 헬만 헷세의 데미안을 좋아한다는 소녀의 편지는 '새는 알에서 빠져 나오려고 노력한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분을 인용한 것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자란 좁은 울타리를 깨고 더 넓은 세계로 탈출해 보려는 시도로 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소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번 읽었던 데미안을 다시 정독한 후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렸다.

 


 

 10일만에 답장을 받은 나는 반가움에 눈물이 났다. 이국의 전쟁터에 수고하시는 외로운 아저씨를 위해 기꺼이 말벗이 돼 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로는 틈만 나면 편지를 썼다. 혼자 전화 당번하기 일쑤인 나는 사무실 겸 내무반으로 쓰는 침대 옆 책상에서 책을 읽다가 생각나면, 바로 편지를 써 부치곤 했다. 소녀에게서도 편지가 자주 왔다.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녔다는데 마땅한 친구가 없는지 사연도 많았다.

 

 아침에 부치고 저녁에 또 써서 편지가 밀릴 때는 한꺼번에 2∼3통을 받기도 했다. 문학 이야기가 주였고 이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슬기롭게 피해 갔다. 몇 달이 지나자 밑천이 떨어졌다. 그래서 부대 도서실 책을 다 섭렵하기에 이르렀고, 가끔씩 서울 누나에게 신간을 부탁하기도 했다. 편지를 이해하는 면이나 써보내는 수준으로 보아 대학생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모른 척했다.

 

 결국 1년 다 되어 귀국 무렵에 자신을 밝혔는데 예상대로 대학 국문과 2학년 학생이었고, 결혼할 때까지 편지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임 사병이 준 이 선물이야말로 오늘의 나를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국 땅 전쟁터에서 귀찮다고, 또 외로움을 달랜답시고 술이나 담배에 의존해 온갖 잡기(雜技)나 의미가 없는 것들에 허송해 버렸을 황금 같은 시절에 많은 독서와 사색으로 내면을 살찌웠고, 문장력을 기를 기회를 마련해 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 제3악장 : Scherzo, Allregro molto F장조3/4/Bethoven


 



 
가져온 곳: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김창집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