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외국작가 畵壇

[스크랩] 고갱 작품 이야기 -13-

鶴山 徐 仁 2005. 7. 25. 11:36


[언제 결혼하니? (When will you marry?)]
-고갱(Paul Gauguin)
-77*105cm

1892년작. 캔버스 유채. 105 x 77cm.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어렵고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1891년 아내와 자식을 뒤로 하고 남태평양의 타이티섬에서 그린 그림이다.

타히티에서 그린 고갱의 작품에는 재미있는 제목이 많다.
<언제 결혼하니?>. <어마, 질투하고 있니?>, <왜, 골이 나 있니> 등,
그 외에도 대화의 단편을 제목으로 하고 있는 것이 많다.
일체의 인공적(人工的)인 여벌문화가 없는 타히티의 생활에는
그 일상의 한 장면 장면이 상징적인 의미성(意味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892년 7월에 그는 부인 메트에게 '나는 많은 일을 하고 있소.
지금에 와서야 이 토지와 그 향기를 알게 되었소,
나는 타히티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수수께끼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마오리족 (族), 바로 그것이오.
이런 것을 알기 위하여 나는 일 년이 걸려 버렸소.'라고 쓰고 있다.
그러한 그의 이해가 이 그림 속에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두여인의 동 (動)과 정(靜)의 자세의 대조(對照)에
하반신(下半身)이 겹쳐 있는 그 미묘한 뉘앙스가 인상적이다.

 


[백마 (The White Horse)]
-고갱(Paul Gauguin)
-91.5*140cm

1898년 작. 캔버스에 유채. 140x91.5cm.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말은 고갱이 타히티 체류 시절에 즐겨 그리던 주제이다

 


[해변에서[Fatata Te Miti (Near the Sea)]]
-고갱(Paul Gauguin)
-91.5*67.9cm

 

 


[어디 가세요? (Woman holding a fruit)]
-고갱(Paul Gauguin)
-73*92cm

한 여인이 망고를 들고 어디로 가고 있다.
순수한 타히티 여인과 망고는 고갱 그림에서 핵심을 이루는 소재다.

 


[부르타뉴 여인들
(Breton Peasants)]
-고갱(Paul Gauguin)
-92*66cm

 


[Woman with Mango]
-고갱(Paul Gauguin)

 


[꽃을 가진 여인(Vahine No Te Tiare,Woman with a Flower )]
-고갱(Paul Gauguin)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하여 얼마간 지난 후에 그린 작품으로,
간혹 그의 오두막집에 찾아오곤 하던 이웃 여인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녀는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는 구라파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그럴 뿐이다.
어쨌든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그 얼굴 생김새의 어디를 보나
곡선의 매듭 속에 라파엘로적인 조화가 있다.
조각가가 살을 붙인 것 같은 입은 온갖 말을 하고, 즐거움과 괴로움과의 입맞춤을 말하고 있었다.
그 울적한 표정 속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뒤엉켜 의연함 속에 순종(順從)함이 있었다.
미지(未知)한 것에의 두려움이 적당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서 정열을 기울여 일을 했다.
그 초상은 내 마음의 눈이 인정한 것을 그리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면을 그리려고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망고 꽃은 든 타이티 여인들 ( 빨간 꽃과 유방,Two Tahitian Women with Mango)]
-고갱(Paul Gauguin)
-73*94cm

이 작품은 고갱의 타히티 작품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의식적인 그의 원시주의적(原始主義的) 조형 의지를 담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런 의식을 떠나서 간결한 구도로 인공적(人工的)인 단순화(單純化)나
양식화(樣式化)의 흔적도 없이, 두 여인의 포즈에도 고갱이 가끔 쓰는
자바나 이집트의 그 양식도 볼 수가 없다.
젊고, 그래서 아름다운 매력을 몸 속에 가득히 지니고 자연스럽게 서 있다.
그것은 유럽인이 꿈꾸어 오던 이브(Eve)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반대적 이브도 아니다.
그런 대립을 뛰어넘은, 싱싱한 한 현실로서의 여체(女體)인 것이다.
빨간 꽃과 젖꼭지, 입술 등의 색에서, 오렌지빛, 노랑,
그리고 청록의 밝은 치마에서 차츰 어두운 암록색 검정의 머리칼과 치마색까지
차분한 하모니를 이루고 화면은 풍부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세 명의 타히티인(Three Tahitians)]
-고갱(Paul Gauguin)
-93*73cm

1898년.
세 명의 타히티인은 V자 형태의 안정된 구도 속에,
고대 문명의 장식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인위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갱의 장식주의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배경도 장식적인 기능을 살려 평면 처리했다.
이와 같은 배경 처리는 당시 고갱이 즐겨 쓰던 기법이다.

 


[장날]
-고갱(Paul Gauguin)
-91.5*73cm

1892년작. 캔버스 위에 유채. 73 x 91.5cm. 스위스 바젤미술관 소장.
젊은 창녀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이집트의 벽화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이다.

 


[그녀는 죽은 자의 영혼을 생각한다(Manao Tupapau)]
-고갱(Paul Gauguin)
-92.4*72.4cm

1892년.
상단 부분에 원제가 보인다. 타히티 원주민의 신화를 바탕으로 그린 이 그림에
피사로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드가는 강렬한 색채와 이국적 화풍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림 속의 모델은 고갱이 2년 동안 동거했던 '테하마나(테후라)'다
===============================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최대 명작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에 도학한 후 성취한 모든 이론과
실제를 보여주는 현란한 이력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그림의 소재는 고객의 체험에 의한 것이다.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와 새벽에 방문을 열었을 때 본 광경을 그림으로 구상화한 것이다.
"테후라는 침대에 배를 깔고 나체로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한동안 나도 불안했었다. 테후라의 공포가 나한테도 전해진 것이다.
그녀의 눈은 유황빛을 내쏟듯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녀를 나는 처음 보았다.
어둠속에서 위험한 유령과 불타는 욕망에 접해있던 이 소녀가
혹시나 두려워할까봐 나는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 순간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 했는지를 알고 싶었다.
아마도 곤혹스러운 얼굴로 보아 나를 귀신이나
그녀의 동족들을 잠못이루게 괴롭히는 투파파오의 해골쯤으로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브르타뉴의 네 여인(Four Breton Women)]
-고갱(Paul Gauguin)
-90*72cm

1886년.
고갱의 천재성이 움트는 작품이다.
하얀 머릿수건은 세부 묘사의 차원을 넘어 순수한 장식적 특징을 갖는다.
비틀린 팔 동작과 시선에서 어떤 신비가 느껴진다.

 


[야회복을 입은 메트 고갱 (Madame Mette Gauguin in Evening Dress)]
-고갱(Paul Gauguin)

고갱은 1873년 11월, 23살의 덴마크 여성 메트와 결혼 했다.
결혼 전 어느 편지에서 그녀의 강한 성격과 고귀한 감정에 대하여
'이렇게 아름다운 진주를 덴마크로부터 뺏어 오기 위하여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작정입니다.' 고 했지만,
결혼 후 북구(北區)의 프로테스 탄트풍(風)의 엄격한 윤리관에 젖어 있는
그녀와 고갱과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 고갱 이외의 다른 남자였다면
훌륭한 부인으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갱이 고갱 자신으로 돌아 감에 따라 그녀도 자신을 드러내어 자제하지를 못하였다.
이 작품은 그가 본격적인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베르탕 상점을 그만둔 다음 해에
르왕에서 그린 것인데 인상파적인 수법으로 그녀의 그런 기질(氣質)을 잘 나타내고 있다.
초상화에서 이런 투시력(透視力)은 고갱 시각(視覺)의 독특한 성질의 하나일 것이다.

 


 


 
가져온 곳: [..]  글쓴이: 너와집나그네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