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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작가 畵壇

[스크랩] Egon Schiele(1890-1918)

鶴山 徐 仁 2005. 7. 25. 09:10
 
 
 

‘ 예술은 모던할 수가 없다.예술은 원초적이며 ,영원하다. ’

 

28세로 요절한 비운의 천재화가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

 

당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구스타프 크림트의 후계자로 지목받았으나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에곤쉴레, 그는 1890년 오스트리아 툴리 철도국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그는 1906년 보호자인 외숙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1년 후인 1907년, 그의 드로잉을 당시 이름높던 선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에 보일 기회가 주어졌다. 클림트는 소년의 비상한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 했다.

클림트의 아르 누보 양식과 소재의 영향은 1909년까지의 쉴레의 작품에서 현저히 보인다.
스승의 우아하고 장식적인 형상을 떠나서, 쉴레 자신의 표현적인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1910년 경에 이르러서였다.


1912년 그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춘화를 그렸다는 죄로 24일간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

거기에 "예술가를 제약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것은 성장하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다"라고

써 넣기도 했다 감옥살이 경험은 쉴레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겨 그후로

쉴레의 성격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거의 철두철미 은둔적이 되었고 그리고 자신을 수도승이나 은둔자로 그린 초상화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에 항상 최고의 가격을 원한 쉴레는 화상과 돈 문제로 자주 말썽을 일으켰다
1915년 아르노트 화랑에서 그의 첫번째 개인전이 열렸는데 여기에 출품한 포스터에 자신을

성 세바스찬으로 묘사한 것은 그의 자기도취, 전시욕, 과대망상증과 관련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1915년 자신의 작업실 맞은편에 살던 에디트 하름스를 만나 그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여 그의 생애의 전환점을 맞게된다
얼마후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징집되었으나 군생활 중에도 계속 작품활동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쉴레와 그의 아내는 유럽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1918년 10월 31일  밤

28세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우연한 것은 그의 스승 클림트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1890년 6월12일 툴른에서 출생
1905년 매독으로 아버지 사망
1906년 비엔나 미술학교 입학(카알 라알의제자였고 전통예술가이며 역사적 그림과 자화상의 화가인 크리스찬 그리펜컬 아래서 공부를 시작)
1907년 구스타프 클림트와 만남
1908년 첫 개인전
1909년 제 2회 국제 전시회 참여
1912년 쾰른의 손더 분트 쇼에서 세 작품 전시 1912년4월 13일 감옥에 갇힘
1913년 오스트리아 예술가 연합의 일원이 됨
1915년 아내 에디스와의결혼
1918년 2월 6일 구스타프 클림트 사망
1918년 10월28일 아내 에디스 유행독감으로 사망
1918년 10월31일 스페인 유행성 독감으로 에곤쉴레 사망




 
가져온 곳: [가끔은 하늘을 보며 ...]  글쓴이: Travel Designer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