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스크랩]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지

鶴山 徐 仁 2005. 7. 21. 16:40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지

노인 반열에 낄 나이가 되면서 노인이 정말 싫어지다
노령연금 타기 전에 예절교육 기간 두자면 화들 내실까 

▣ 김선주 <한겨레> 전 논설주간·칼럼니스트 
어떤 모임에서 단상에 세워졌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원래 앞에 나가 
말하기를 극히 어려워해서 잘 아는 이들은 절대 그런 자리에 세우는 
법이 없었는데 사회자가 잘 몰랐던 것 같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어쩔 수 없다, 빨리 이 자리에서 내려가자 싶어서 ‘나이 쉰이 넘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고 했다’며 지갑은 열 테니 말은 
시키지 말라 했다. 환호에 가까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조금 너그러워져도 쪽박은 안 찬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진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나이가 권위로 
자연스레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서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좌장으로 
앉혀진다. 윗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들어야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아래의 정서가 위로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듣기보다는 말하기 좋아하는 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나도 뭐 마찬가지다. 듣고만 있자고 결심했다가도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말을 하다 보면 말이 길어지고 어느새 좌중의 흥이 깨지고 모두 시들한 
표정으로 앉아 있고 나 혼자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권력도 없고 
이권이 개입될 여지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시들한 표정으로 등을 돌려도 그만이고 나 혼자 왕따가 돼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아랫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들이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일단 좌중은 조용하게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인의 장막에 휩싸이게 되는 원인이고 
결국 대사를 그르치게 하는 첩경이다. 

늙은 사람들이 인색해지는 것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큰 부자로 돈이 돈을 벌고 부동산이 자고 나면 새끼를 치는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경제적 능력은 줄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몇년인지 
기약할 수 없는데 함부로 쓰다가 나중에 길에서 쪽박을 차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남에게 조금씩 베풀어서 
쪽박을 찼다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 너그러워져도 쪽박은 안 찬다고 장담할 수 있다. 
노인 반열에 낄 나이가 되고 보니 새삼 세상의 노인들이 
내 눈에 많이 보인다. 전에는 지나가는 노인을 무심히 보아 넘겼는데 
내가 곧 저런 모습이 될 것이다 싶으니까 노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정말 노인이 싫어졌다. 
말하자면 저런 노인을 누가 좋아할 수 있겠나, 
정말 저런 노인은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노인의 가장 큰 특징은 목소리가 크다는 사실이다. 노화 현상으로 
귀가 어두어지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 목소리가 작게 들리니까 
자신이 목청을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의 말이 잘 들리지 않으니까 
일방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고 고집불통이 되는 것이다. 
자녀들에게서 텔레비전 소리를 좀 줄이라는 핀잔을 들으면 
이거 내가 목소리가 크다라는 생각을 하고 주로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내 이야기를 그만해야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또한 눈이 나쁘면 
누구나 안경을 쓰듯 귀가 나쁘면 보청기를 꽂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 것이다. 
한 말을 하고 또 하는 것도 노인의 특징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과거의 일만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것이 입력되지 않고 젊었을 때 알았던 지식과 경험만을 
최고의 가치인 양 되풀이하다 보니 별로 들을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노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괘씸하게 여길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요즘은 주차장 관리원이나 빌딩과 아파트의 경비원, 택시 운전사, 
주유소, 편의점 같은 곳에 나이든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의 특징은 남의 일에 공연히 참견하고 이래라저래라 가르치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대로 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그러나 젊은이나 여자들을 향해 야단을 치고 가르치려는 
사명감에 불탄다고나 할까. 친절한 서비스는 고사하고 뻣뻣하기가 
그지없고 웬 참견이냐는 표정을 지으면 단박에 사람 우습게 보지 말라고 
심통을 부린다. 내가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전에 무엇하던 사람인데 하며 우습게 보았다고 인상을 쓴다. 
우유 배달을 하건 세탁물을 배달하건 거기에 충실하면 되는데도 
절대 그러지 못한다. 이런 불화를 빚다 보니까 당연히 노인들을 
고용하기를 꺼리게 된다. 나도 그런 노인이 고용된 어떤 주유소와 
편의점엔 절대 안 간다. 

예순살, 그때도 말 많으면 지적해줘요 
내가 본 이쁘고 사랑스러운 노인 베스트 중의 베스트는 이돈명 변호사다. 
인권 변호사로서의 명성보다는 이 양반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농담을 섞어서 까르르 
웃게 만들고 본인도 목 천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파안을 해서 
까르르거리신다.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자신의 건강상태, 말하자면 
비뇨기과 계통의 약화에 대해 아주 재미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깔깔거린다. 
노인이 사회의 짐이 되지 않고 힘이 되려면 노인 되는 연습이 필요하고 
노인 교육의 장도 많이 필요해진다. 노령연금을 타기 전에 의무적으로 
한달 정도 노인 예절을 가르치는 교육 기간을 두는 것이 어떨가 싶다. 
노인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고 사회적으로도 긴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노선을 조금 수정했다. ‘쉰이 넘으면’이라고 했지만 
지갑을 여는 것은 언제라도 힘껏 내 수준대로 하겠지만 입을 닫는 것은 
예순살로 못박은 것이다. 예순살이 넘으면 진짜 입을 닫으련다. 
그때도 내가 말이 많으면 후배들이여, 즉각 지적해주길 바란다. 


In un fiore(꽃의 속삭임) / Wilma Goich
 




 
가져온 곳: [세상의 제일 끝집]  글쓴이: 똘레랑스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