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나이키 입고 끌려나온 反美 지도자
입력 2026.01.04. 20:40업데이트 2026.01.04. 22:35
북한은 강력한 반미 국가로 꼽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미제 사랑’은 유명하다. 집무실에서 애플의 데스크톱인 ‘아이맥’을 사용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여러 번 노출됐다. 스위스 유학 중이던 유년 시절에는 나이키 에어조던 운동화의 수집광이었고, 데니스 로드맨을 초청할 만큼 미 프로농구를 좋아한다.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주역인 카스트로도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혁명가 시절부터 스위스제 롤렉스를 두 개씩 차고 다녔다. 하나는 쿠바, 또 하나는 모스크바 시간을 보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 만년에는 삼선 줄무늬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고 공식 외교 무대까지 등장해 ‘아디다스 홍보대사’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이미지 추락을 걱정한 독일 아디다스 본사가 “우린 카스트로와 관계가 없다”고 해명할 지경이었다.
▶미국 특수부대가 전격 체포·압송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의 복장이 화제다. 체포 사진의 마두로는 위아래 모두 회색 나이키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마두로가 이 옷을 입고 자던 중이었는지, 미국이 입힌 옷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두로 변호인이 “미군이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민간인을 새벽에 강제로 끌고 갔다”며 체포의 부당성만 강조한 걸 보면, 역설적으로 나이키 자체는 시인해버린 셈이 됐다. 그는 이전에도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할리 데이비슨과 포드 SUV를 타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베네수엘라는 살인적인 물가로 악명 높다. 최저임금은 월 5달러 수준으로, 한 달 월급으로는 계란 한 판 사기도 힘들다. 마두로가 입은 나이키 운동복은 이 나라 국민들이 3년 넘게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라고 한다. 트럼프가 압송 사진을 공개한 직후 그 제품군의 이름인 ‘나이키 테크 플리스’는 구글 검색어 1위가 됐다. “미제 없이는 잠도 못 자는 반미 지도자” “나이키가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 공식 스폰서냐”라는 조롱이 이어졌다.
▶앞에선 반미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뒤에서는 미국 브랜드나 문화에 빠져 있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일단은 철저히 숨기지만, 들키면 “미국이 싫은 거지 물건이 나쁜 건 아니다” “적을 알기 위한 도구”라고 둘러댄다. 우리나라에도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아이폰과 스타벅스를 사랑하는 반미 정치인이 많다. “미국 제품은 독”이라고 외쳤던 마두로가 ‘미국의 상징’을 몸에 두른 채 잡혀갔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념은 가난한 자의 것이고 명품은 권력자의 것인가.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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