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트럼프 카지노' 입장한 韓 조선업
입력 2025.12.30. 23:36
지난 22일 ‘황금 함대’ 도입 구상을 밝히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의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뒤로 ‘트럼프급(Trump Class)’이라는 설명이 붙은 군함 그림이 걸려 있다. 황금 함대 구상의 일환으로 건조될 전함에 트럼프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현직 대통령 이름을 따 군함을 명명하지 않는 관례를 깬 과시적 작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AP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조선 협력을 처음 꺼낸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당선 직후, 취임도 하기 전이다. “한국에서 미 군함을 건조하는 것 아니냐”는 흥분이 국내를 휩쓸었다.
그 후 1년, 트럼프는 여전히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변한 것은 거의 없다. “미국 배는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존스법’, “미 군함은 해외에서 만들 수 없다”는 ‘번스-톨레프슨법’에 대한 개정 시도는 없었다. 사실 번스-톨레프슨법은 개정도 필요 없다.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의회에 예외를 통보할 수 있는 자체 조항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권한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빗장은 더 단단해졌다. 최근 공포된 내년도 국방수권법에는 외국 조선 기업의 대미 투자 시 한국 기업 우선권 조항이 막판에 빠졌다. 의회 통과를 앞둔 내년도 국방부 세출법은 미 군함은 물론 선체 블록조차 해외 제작에 예산을 못 쓰도록 했다. 미 군함 해외 건조는 이중삼중 족쇄가 걸린 상태다. 내년 11월에는 중간선거가 있다. 공화당이 패배하면 트럼프는 레임덕이다. 내후년 논의는 불투명하다.
트럼프의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는 외국 배를 수입해 미 해군 깃발을 꽂는 방식이 아니다. 미국 조선소에서 미국 노동자로 배를 만들라는 것이다. 2017년 트럼프 1기 때 차세대 호위함 20척 사업이 추진됐다. 2020년 이탈리아 최대 조선 기업 핀칸티에리가 수주했고 2022년 미 위스콘신주에서 건조가 시작됐다. 공급망 붕괴와 숙련공 부족 문제가 심각했다. 2026년이던 인도 시점은 2029년으로 연기됐다. 결국 트럼프 2기는 지난달 건조 중인 2척을 뺀 나머지 계획을 백지화했다.
지난 22일 트럼프는 본인 이름을 딴 ‘트럼프급 전함’ 계획을 발표했다. 호위함 건조도 3년 늦어지다 엎어버린 마당에 전자기 레일건과 레이저, 극초음속 미사일 등 검증되지 않은 무기로 도배된 ‘황금 함대’를 앞세웠다. 이러한 거대 전함의 새 호위함은 “한국의 한화와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조선이 빠른 건 울산과 거제에서 배를 만들 때다. 핀칸티에리가 느렸던 것도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 조선업의 기초 체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한화가 인수한 필리조선소 역시 미국 땅에서 미국 노동자와 부품망을 써야 한다. 까다로운 보안 규제, 노후 설비와 고비용 구조의 늪이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의 ‘SOS’는 주문서(order)가 아니라 망가진 미 조선업 재건에 돈을 태우라는 청구서(bill)에 가깝다.
트럼프가 새 호위함을 꺼낸 날, 한화필리조선소는 더 나아가 미 원자력 잠수함 진출을 선언했다. 상선 중심인 필리조선소는 군함 건조 경험이 전무하다. 기초 군함인 호위함도 안 만들어 봤는데, 조선 공학의 결정체인 원잠 계획부터 밝힌 것이다. 마스가 깃발 아래 한국 조선업이 트럼프라는 ‘카지노’에 입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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