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만 강조하는 건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 아닌가?"
[분석] 여당의 '사법개혁' 주요 쟁점들, 어떻게 볼 것인가?
입력 2025.12.20. 03:00
백혜련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장과 위원들이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사법개혁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대법관 수가 부족해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실정이고, 국민들께서는 항간에 ‘3심에서 혹시 수사 기록을 보지 않고 재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습니다. 따라서 대법관 수를 증원하는 문제는 이런 이유만으로도 충분하게 명분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2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한 발언이다. 이어 10월 20일 ‘사법개혁 6대 의제’를 발표했다. 대법관 증원, 법관 평가 제도 도입,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재판소원 등이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법조계와 학계에선 오랜 숙원 과제라며 환영하는 반응도 있지만, 의제 속에 목적에 맞지 않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나아가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위인설법(爲人設法)이자 정부·여당의 사법부 장악 시도라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지 의제 세부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기 위해 학계와 법조계 인사들에게 같은 질문을 건넸다. 박일환(朴一煥) 전(前)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차진아(車珍兒)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지봉(林智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재윤(朴在胤)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리고 최근까지 법원에서 근무한 전직 부장판사 등이다.
“대법관이 압수물 목록 볼 필요 있나”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조선DB
“전원합의체에서 과연 7만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제대로 읽었는지, 전산 기록으로 돼있는 것을 제대로 봤는지 그 자료를 요구하는 거 아닙니까.”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10월 15일 대법원 현장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2025도4697)와 관련해 이같이 지적했다. 이튿날 민주당은 홈페이지 ‘원내자료실’을 통해 “챗GPT(대화 방식 인공지능) 답변에 따르면 7만 쪽을 열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00일에서 최장 300일”이라며 기록을 볼 시간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앞서 본 바와 같이 민주당의 사법개혁 6대 의제 중 하나인 ‘대법관 수 증원’의 근거 중 하나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투는 1, 2심과 달리 확정된 사실관계에 대한 적용 법리를 따지는 법률심이다. 모든 기록을 봐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얘기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입니다. (재판·수사 기록 가운데) 압수수색영장, 압수물 목록, 이런 걸 볼 필요가 있습니까? 절차적 위법성이 문제가 되거나 채증(採證) 법칙상 쟁점이 있으면 봐야 하지만요.
이재명 대통령 허위사실공표죄 사건은 매우 간단한 사건이에요. 저보고 판단에 필요한 사건 기록을 읽으라고 해도 이틀이면 다 읽을 만한 사건입니다. 권순일 당시 대법관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친형 강제입원(2019도13328·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사건의 경우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례적으로 한 달 만에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때는 왜 지금과 같은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들한테 유리한 결론이 날 때만 정당한 재판이고, 그렇지 않으면 심리가 부실했다는 건가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했을 때 통진당 측이 똑같은 주장을 했어요. 기록이 몇만 쪽인데 재판관들이 그걸 다 읽지 않고 해산 결정을 내렸다고요.”
“대법원은 법률적 쟁점 보는 게 중요”
박일환 전 대법관. 사진=조선DB
박재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실제 법률적인 판단은 재판 기록을 다 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판연구관들이 쟁점을 정리하면 (대법관들은) 이것을 위주로 검토할 것이고, 기록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여부 자체가 대법원의 재량(裁量)”이라고 설명했다. 또 “재판 기록에는 쟁점과 무관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사실상 대법원이 사건 기록을 모두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법원에서 수사 내지 재판 기록을 볼 때 실무상 기준이 있는지도 따져 봤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일환 전 대법관의 얘기다.
“대법원은 상고한 부분에 대해서만 판단을 합니다. 기록 중엔 범죄도 여러 개, 피고인도 여러 명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민사의 경우에도 원고와 피고가 여러 명씩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심과 2심을 거쳐 오는 동안 상당 부분은 해결이 돼서 옵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에선) 무엇을 보느냐, 상고이유서를 보면 쟁점이 적혀 있으니 그 부분을 봅니다. 예컨대 쟁점이 10개가 있어도 9개는 해결되고 나머지 한 개만 상고되면 그 한 개와 관련된 부분만 추려서 보는 겁니다. 당사자 측에서 써놓은 상고이유서를 보고 대법관들은 오랜 경험에 비추어 쟁점을 추려서 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대법관이 한 달에 100건 내지 200건씩 (사건을 처리)하는데, 기록을 다 봐야 한다고 하면 한 건당 1000페이지로 가정했을 때 10만 페이지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다 봅니까. 말이 안 되는 주장이죠. 사건을 해결하는 범위 내에서 관련된 걸 봅니다.”
지난해까지 수도권 소재 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한 A 변호사도 “대법원은 법률심이고, 법률적 쟁점을 보는 게 중요하지 기록 전체를 보라는 건 사실관계를 다시 보라는 것과 같다”며 “대법원의 역할은 1, 2심에서 확정된 사실을 전제로 법률적 오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록을 봤냐 안 봤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기록을 다 보는 건 다른 사건에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법률심이라는 특징을 봐서라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李 파기환송해서가 아니다”
반면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록을 다 읽게 하자는 게 대법관 증원의 핵심 취지는 아니다”라며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 과정에서 6만 페이지가 넘는 기록을 안 본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게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사건을 들여다보기에 물리적으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임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프랑스나 독일에선 심지어 (대법관 수가) 100명, 140명이라서 우리도 그 정도까지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5 사법연감》 741쪽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이 7만 3654건이고 이 중 실체적 판단이 들어가는 본안사건이 4만 4818건이다. 지금 대법관은 14명이다. 이 중 전원합의체가 아닌 통상적인 상고사건 대부분을 처리하는 소부(小部·4명의 대법관이 재판)의 구성원에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대부분의 재판을 하는 대법관의 수는 12명이다. 12명이 한 해 4만 건 넘는 사건을 들여다봐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대법원의 업무 과중 문제를 하필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불리한 선고를 내린 직후,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들고 나와서 임기 안에 대법관 12명을 새로 끼워 넣겠다는 데 대해 “여당이 의심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현행 14명인 대법관 수를 향후 3년간 총 12명 증원해서 26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차진아 교수는 “평소 (대법관) 증원에 대해 찬성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며 “순차적으로 증원할 수는 있지만, 전원합의체 판도에 영향을 미칠 만큼 100% 증원(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 제외한 12명의 2배)하면 편향성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박일환 전 대법관은 “이명박 정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대법관을 늘리겠다고 했을 때 민주당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제 반대의 상황이 됐다”며 “아무리 정치인들이라지만 어떻게 그렇게 원칙도 없고 소신도 없는지”라고 토로했다.
“대법관 수만 늘린다고 재판 빨라지지 않아”
대법관 증원에 앞서 사건 수 부담을 줄일 다른 방안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재윤 교수는 “대법원의 업무 부담에 대한 우려는 지속돼 왔지만, 정원은 사법 예산이나 전체 법조 인력의 배분과 맞물려 있는 문제”라며 “대법원은 상고허가제나 상고법원과 같은 제도를 원했고, 이것이 중요 사건에 전원합의체 유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상고허가제·상고법원제는 모든 사건이 상고만 하면 대법원으로 가는 현행 제도와 달리, 재판연구관 등으로 상고 허가를 전담하는 부서를 구성하고 대법원이 판단할 만한 사안인지를 걸러 내도록 하는 제도다. 대법원 근무 경력이 있는 판사 출신 B 변호사는 “대법관 한 명에 판사인 재판연구관 전속조(組) 서너 명이 들어간다. 공동조까지 합치면 대법관 한 명당 10명까지 보기도 한다”며 “대법관을 12명 늘리면 100명 가까운 판사가 추가로 필요한 셈인데, 하급심 지연이 더 심각한 와중에 지방법원 한 개 규모의 판사들을 대법원으로 보내겠다는 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셈”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하급심 판결을 강화하고 상고허가제를 도입하는 등 선행 과제가 있음에도 대법관 증원만을 강조하는 건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신속한 재판’이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하급심 판단의 지연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일환 전 대법관은 “사건 수는 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법원이 수만 건을 처리하는 건 마찬가지고, 대법관을 늘린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건 미국의 예를 봐서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은 “대법원에서 실제 근무하는 법관 수를 비교하면 독일의 경우는 전체 법관 중 2% 남짓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5% 정도 된다”며 “대법관을 증원하면 그 비율이 8~10% 정도로 증가하게 된다”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은 이어 “독일의 대법원에 근무하는 법관을 모두 대법관으로 보기 어렵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재판연구관이 상고심을 담당하는 법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제 업무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2010년 당시에도 재판연구관의 기능을 이렇게 봤다”며 “독일의 대법관 수가 400명 된다는 주장은 독일 대법원의 구성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얘기다.
“대법원, 하급심 강화 노력했나?”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뉴시스
“대법원에서 실제 재판 업무를 하는 법관 수를 비교해야 된다는 얘기죠. 독일은 법관도 레벨을 구분하고 있는데 물론 상고심 법관은 레벨이 높은 법관이 배치되지만 400명 모두가 최고 레벨의 법관으로 구성되지는 않으므로 모두를 우리의 대법관처럼 인식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핵심은, 하급심과 상급심 법관의 비율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야 잘된 조직이고 효율성이 있는 조직이냐입니다.
그리고 신속한 재판이라는 건 1심과 2심, 3심을 다 따져 봐야 합니다. 많은 사건들이 대법원에 오기 전에 이미 지연돼서, 대법원까지 올 수 있는 당사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소송)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포기를 해버리는 거죠. 대법원의 신속한 판단에 치중하는 것보다, 1심과 2심에서 신속히 해결하고 대법원에 오지 않도록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1심과 2심에서 지면 재판에 불만이 있어도 포기해 버립니다. 하급심이 더 급하죠. 1심, 2심이 2~3년 걸리는데 대법원에서 6개월 내지 1년 안에 끝난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와 관련해 임지봉 교수는 “대법원에서 대법관 증원 주장이 나올 때마다 반박 논리로 주장했던 게 하급심 강화인데, 묻고 싶다. 그동안 대법원이 하급심 강화를 위한 노력을 했는지”라며 “대법원은 안 했다. 법원은 하급심 판사 수를 늘리지 않았고, 법관정원법상 각급 법원 판사의 정원을 늘려 달라고 국회에 열심히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헌재 사무처장은 관련성·대표성 없어”
박재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한국외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에도 손을 댈 것이라고 민주당은 예고했다. 우선 현행 10명인 추천위원회 정원을 12명으로 증원한다. 여기에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법관을 종전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리고, 지방변호사회 회장 과반수가 추천하는 한 명을 추가한다. 또 기존의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고,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새로 포함된다는 내용이다. 특히 헌재 사무처장이 법원행정처장 대신 들어간다는 점에서 비판이 거셌다. 박일환 전 대법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판사 중에서 (대법관을) 뽑는데 법원행정처장이 안 들어가고, 판사를 알지 못하는 헌재 사무처장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헌재 사무처장은 헌법재판관이 아니고, 설령 헌법재판관이더라도 법원을 떠난 사람이 어느 판사가 잘하는지를 추천한다는 건 난센스죠. 다분히 감정적인 입법입니다. 법원행정처장이 전국 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고 인사 자료를 다 들고 있는데, 판사를 알지 못하는 외부 인사가 어떻게 합니까?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이기에 부장급 이상의 판사들에 대해서 10~20년간 소문도 들을 일이 많고 업무적으로도 관련이 있으니 판사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봐야죠.”
박재윤 교수도 “법원의 문제에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헌재 사무처장은 아무런 관련성과 대표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결국 대법원장의 헌법상 제청 권한을 보좌하는 역할인데, 이를 법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임지봉 교수는 “법원행정처장이 법관 개개인에 대해서 어떻게 잘 아느냐”며 “법원행정처장도 (인사) 자료를 받아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원행정처장이 받아 보는 인사 자료를 그 업무를 대신할 다른 누구에게 주면 된다는 얘기다. 그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구성을 다양화하는 게 핵심 취지라며, 현행 추천위원회는 법원 내부 인사들이 위원 전체의 과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모두 대법원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에, 법원 밖의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시각이다. 이에 헌재 사무처장을 콕 집어 포함시킬 만한 이유가 있는지를 묻자 임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헌재는 대법원과 다른 기관이잖아요. 둘 다 사법 작용을 하는 최고 기관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경쟁 관계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컨트롤할 수 있는 인사가 아니면서도 넓은 의미의 사법기관의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헌재 사무처장을 포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면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의 수족과 같은 사람 아닙니까.”
반대로 차진아 교수는 “헌재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헌재 사무처장은 헌재소장의 의중에 따라 임명되기 때문에, 지금 (정부·여당의) 말을 안 듣는 법원행정처장을 빼고 여당 몫을 넣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차 교수는 “법원 안에서 일반 법관들이 대법관으로 존경하고 따를 만한 인사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아는 건 법원행정처장”이라며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이고 헌재 사무처장은 재판관이 아닌 실무 라인으로 급이 다른데, 대법원의 지위를 격하하고 철저히 굴복시키려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권력 눈치 보는 변호사회가 법관 평가?”
아울러 민주당은 법관 평가 제도를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법관 인사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는 법관인사위원회 위원 총 11명 가운데 법관 3명을 임명할 때 대법원장과 전국법원장회의,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각각 한 명씩 추천하는 식으로 변경해서 법원의 폐쇄적인 구조를 바꾸겠다는 게 민주당의 설명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각 지방변호사회의 법관 평가도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임지봉 교수는 “법관에 대한 평가는 이제껏 폐쇄적, 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며 “법관 평가의 기준도 굉장히 애매모호해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고 주장했다.
법관에 대한 평가 자체가 상당히 모호하다는 건 법조계 중론(衆論)이다. 인사 이동이 잦은 법관의 직역 특성상 3월에 부임한 법원장이 특정 판사를 12월까지 지켜본 결과만으로 평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민사 사건을 맡느냐 형사 사건을 맡느냐 등 업무 분담에 따라 정량적 평가가 쉽지 않아서다. 비교적 가벼운 단독 사건(판사 한 명이 맡는 재판)의 경우 공과(功過)에 티가 잘 안 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지방변호사회의 법관 평가를 반영하자는 데 대해선 반응이 엇갈렸다. 변호사가 자기 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는 좋은 평가를,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는 나쁜 평가를 내릴 수도 있는 이해당사자여서다.
차진아 교수는 “교수의 학문적 우수성과 강의의 질을 학생들의 강의 평가에 근거해서 평가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순 있겠지만, 평가에 반영하면 법관이 변호인에게 끌려다니는 구조가 된다”고 했다. 차 교수는 민주당이 법관인사위원회 위원으로 새로 포함시키려는 구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민주당이) 사법농단 운운하며 법원행정처를 공격했을 때 만들어진 게 전국법관대표회의입니다. 여기에 친(親) 민주당 성향 법관들이 자원했어요. 정통 법관들은 거기에 나서는 것 자체를 법관의 직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회의 태도는 많은 법조인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사법 체계의 한 축을 이루는 변호사회가 권력의 눈치를 봅니다. 변호사회는 영리 목적이 아닌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단체라는 헌재 판례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장을 국정감사에 불러 모욕하고 대법원에서 점령군 행세를 하는 행태를 벌이고 있음에도 변호사회에서 성명서 하나 안 내지 않았습니까. 구체적인 재판에 개입할 목적의 국정감사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에도 위배되는데 그런 국감에 부르고, 법을 도구화하고, 기준이 불리하면 바꾸면 된다는 식의 위인설법을 하며 법을 농락하고 있는 상황에서도요.”
박재윤 교수도 “지방변호사회의 평가를 참고로 활용하는 것은 좋으나, 당사자인 변호사는 자신들의 사건 결과와 관련이 있기에 이를 직접 반영하는 것은 사법의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이해 충돌 지적에 대해 임지봉 교수는 “극단적으로 좋게 또는 나쁘게 평가된 결과는 제외하고 중간 영역에 있는 결과의 평균치를 반영하거나, 사건을 맡지 않는 변호사들을 평가에 참여시키는 방법 등이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해 충돌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다”고 했다.
“판결문 공개로 하급심 판결 수준 올라갈 것”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에 관해선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양날의 칼’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확정되지 않은 1, 2심 판결문에 대해서도 열람과 복사를 전면 허용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방침이다. 이를 통해 하급심 재판부가 검찰 공소장을 긁어다 붙여 넣는 경우나 질이 떨어지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하급심 판결문 원문을 보는 방법은 경기 고양시 일산 소재 법원도서관에 ‘판결서 방문열람’ 신청을 사전에 한 다음, 1~3호(검사·변호사·기자 등)에 해당하는 이들만 각자의 제한된 목적 하에 40분 동안 보는 것뿐이다. 이마저도 사건번호 외에 메모를 해 갈 수 없으며 전자제품도 반납해야 한다.
차진아 교수는 “유일하게 (6대 의제 가운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차 교수는 “평소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것”이라며 “하급심 판결이 더 충실히 이뤄질 수 있는 실익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하급심 판결문이 부실한 경우가 너무 많아서 심지어 사실관계와 날짜가 틀리는 판결문도 있다”고 했다.
임지봉 교수도 “하급심이 멋대로, 함부로 성의 없는 재판을 하지 못할 것이고 판결의 질과 수준도 올라갈 것”이라며 “판결문이 공개되면 하급심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들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일반인들이 자신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의 판례를 보고 변호인의 조력을 적게 받고도 재판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접근성과 투명성에 한층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개인 정보 보호 측면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박재윤 교수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비(非)실명화 등 기술적 처리에 대한 예산 확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 변호사는 “일반인에게 법률적 정보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분명 좋은 점이 있지만, 확정되지 않은 판결이 마치 진실인 양 중구난방 돌아다닐 수 있다”면서도, 역시 “공개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박일환 전 대법관은 “당사자들의 개인 정보가 들어 있는데, 원하지 않는 이들이 많을 수 있다”며 “결국 비실명 처리를 해야 하는데, 한 해에 100만 건씩 나오는 사건을 전부 비실명화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감당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소원은 한국에서는 불필요”
헌법소원 가운데 재판을 대상으로 한 ‘재판소원(訴願)’ 제도도 여섯 가지 의제 중 하나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헌재에 소원 제기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임지봉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소원 제도는 독일에서 발달했습니다. 헌법소원 제도가 발전한 큰 이유 중 하나가 법원의 잘못된 판결에 의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사례였어요.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정부 하에서 사법부의 잘못된 재판으로 독일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때 잘못된 재판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국민의 권리 구제(救濟)를 위한 제도로 발전한 것이 헌법소원입니다. 우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에도 있지만, 공권력의 행사나 불(不)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헌법소원이기도 하고요. 여기서 ‘공권력’엔 행정권과 입법권은 물론 사법권도 들어갑니다. 다시 말해서, 헌법소원 제도 탄생의 핵심 취지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87년 개헌 1년 후인 1988년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할 때 법 제68조 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했어요. 그건 아무런 법리적 이유가 없는 겁니다.”
박일환 전 대법관은 “독일과 우리는 제도가 다르다”며 “독일은 상고를 못 하는 사건이 많다”고 반박했다. 이어지는 박 전 대법관의 설명이다.
“(독일에선) 소액 사건의 경우 항소·상고를 못 하기에 지방법원 판결에 대해 재판소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법원까지 다 갈 수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 하는 재판소원이 필요가 없는 구조입니다. 또 독일에선 바로 (헌재에) 제청하는 게 아니라, 법원에서 합헌이라고 하면 바로 판단을 (확정)합니다. 그것조차도 당사자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 실제로는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두 가지 루트가 모두 제도적으로 해결돼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일에서도 하는 걸 우리나라는 왜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모든 사건이 대법원까지 갈 수 있고, 독일에서도 재판소원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수십 년간 몇 건 없죠. 그런데 (한국 사법 체계 하에서 재판소원 제도를) 열어 놓으면 모든 당사자들이 헌법소원을 낼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몇 년에 한 건 (인용이) 나올까 말까 한 것 때문에 사건에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이 재판소원 끝날 때까지 권리 행사를 못 할 것 아닙니까. 사실상 4심이 되는 건데 그걸 아니라고 하면 말이 안 되죠.”
“헌재-대법 간 균형 유지돼야”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되면 현재 아홉 명의 헌법재판관들이 밀려드는 사건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에선 임지봉 교수도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라고 동의하면서도, 재판소원 도입 자체는 시행 초기의 혼선을 감내할 가치가 있을 만큼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에서도 헌법소원(재판소원)을 시작한 초기엔 사건 수가 폭증했어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지금도 그래요. 다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차츰 판례를 통해 제기 요건들을 굉장히 엄격하게 확립했습니다. 그러한 엄격한 제기 요건 때문에 이젠 대부분 각하됩니다. 그래서 점차 사건 수가 많이 줄었죠. 준비 과정은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재판도 공권력의 행사인데 법리적 이유 없이 재판을 헌법소원에서 제외하는 현행 법체계를 유지할 순 없다고 봅니다.”
재판소원을 도입해선 안 될 법리적 이유가 없다는 데 대해선 재반박이 제기된다. 한국의 경우 헌법 제101조에 따라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며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 또 제107조 2항은 법률보다 하위의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박재윤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에는 대법원의 최고법원성(性)을 밝히는 조문이 여럿 있어요. 제101조와 107조 2항도 마찬가지죠. 재판소원은 이러한 헌법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경시키는 것이라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헌재는 헌법의 보충성 규정(법에 정한 구제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만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는 원칙-편집자 註)에도 불구하고 헌법소원 권한을 지나치게 확장해 왔어요. 우리 헌법소원은 독일과 다르게 보충성의 예외를 마련해서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중대한 기본권 위반 등에만 헌법소원을 허용한다고 해도, 그동안의 헌재의 관행에 의하면 자의적으로 이런 쟁점을 넓힐 가능성이 큽니다. 이 쟁점에 대해 헌법학자나 헌재 관계자들이 지나치게 자신들과 밀접한 헌재의 이익에만 충실한 주장을 펴온 것은 문제라고 봐요. 지금의 균형 상태는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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