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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이재명의 '보수 영토' 점령 작전

鶴山 徐 仁 2025. 4. 20. 14:54

오피니언 칼럼

[박정훈 칼럼] 이재명의 '보수 영토' 점령 작전

기존 좌파적 주장은 한마디도 안하고

줄기차게 '성장'만 외치는 李후보…

우파 어젠다까지 차지할 목적이겠지만

본능적 좌파 DNA는 숨기지 못한다

박정훈 논설실장

입력 2025.04.19. 00:05


지난 대선 때인 2022년 1월 이재명 후보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처럼 터틀넥 셔츠, 청바지 차림에다 무선 마이크까지 달고 신경제 비전 발표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후 이 후보와 민주당은 반기업 반시장 입법 폭주로 경제 성장에 역행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조선일보DB

이재명 민주당 예비 후보의 경제 철학, 이른바 ‘이재노믹스’(이재명+이코노믹스)의 요체는 ‘국가 주도 성장’(국주성)이다. “국가 주도의 강력한 부흥책”을 통해 경제 파이를 키우고 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것이다. 2022년 대선 때 그는 터틀넥·청바지 차림으로 스티브 잡스 코스프레까지 하며 소득 5만달러, 주가 5000, 세계 5대 강국의 ‘5·5·5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가슴 뛰는 웅장한 비전이었지만,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반기업·반시장 폭주를 3년 내내 계속하며 성장의 가치와 대척점에 섰다.

‘국주성’은 정통 경제학이 오래전 폐기한 모델이었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몰락이 보여주듯, 국가가 주도권을 쥐는 순간 필연적으로 자원 배분의 왜곡과 비효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 측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을 모델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나 뉴딜식 공공 지출은 불황용 경기 부양 처방이지 지속 가능한 혁신 성장책은 아니었다. 이 후보는 “전 국민 현금 지원”을 주장하며 세금 쓰면 그 이상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승수(乘數) 효과’도 내세웠다. 하지만 한국의 승수 효과가 1에 못 미친다는 사실이 코로나 지원금 분석에서 드러났다.

오늘날 어떤 나라도 국가가 성장을 주도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전(全) 지구적 경쟁이 펼쳐지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정부는 제도 설계와 심판 역할만 맡을 뿐, 직접 ‘선수’로 뛰는 나라는 없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조차 경제만큼은 기업의 역동성이 주도하는 시장 원리에 맡긴다. 만약 이재명식 ‘국주성’이 진짜 효과를 거둔다면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일이다. ‘성공하면 노벨상 확실’이란 지적이 나온다.

조기 대선이 다가오자 이 후보는 ‘K엔비디아’ 구상을 내놓았다. 정부 주도로 엔비디아 같은 초우량 기업을 육성하고, 지분의 30%가량을 국유화해 배당금을 국민이 나눠 갖자고 했다. 세금을 ‘소비’ 용도로 뿌리자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신산업 ‘투자’에 쓰자는 쪽으로 전환한 것은 평가할 만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여기에도 치명적 모순이 있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순간 ‘제2의 엔비디아’는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엔비디아의 성공은 정부가 도와줘서가 아니다. 미국 정부가 한 것은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창업·교육·금융 인프라를 조성한 것이 다였다. 혁신 기업은 관(官)이 기획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가 제2의 엔비디아인지, 누가 차세대 젠슨 황인지, 정부는 가려낼 능력이 없다. 정부가 돈을 대 기업을 세우고 대주주가 되어 경영에 개입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는 있을 수 없었다.

이 후보는 ‘불편한 진실’에도 입을 다물었다. 엔비디아 신화는 밤낮없이 연구·개발에 몰두한 ‘중노동’의 결과라는 사실 말이다. 젠슨 황은 일벌레로 유명했다. 한밤중에도 회의를 소집하고 주말에도 일을 시켰다. 저녁이면 연구소 불이 꺼지는 한국식 주 52시간 규제였다면 엔비디아의 성공은 불가능했다. 이 후보는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를 조금만이라도 보완해 달라는 산업계 호소조차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K엔비디아’를 키우겠다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좌파가 성장 담론에 약하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평등·분배에 매달린 나머지 우열·격차가 수반되는 시장 경쟁 원리를 불신하는 탓이다. 그래서 좌파의 성장론은 구호뿐인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권의 소득 주도 성장이 대표적이었다. 세금으로 저소득층 지갑을 채워주면 경제가 커진다는 논리는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좌파 정치권이 선거철만 되면 성장 담론에 발을 담그는 것은 ‘산토끼’를 잡을 목적일 것이다. 우파 어젠다에 침투해 외연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지난주 출마 선언 이후 이재명 후보는 줄기차게 ‘성장’만 외치고 있다. 기본 소득이나 재난 지원금, 지역 화폐, 국토 보유세 같은 기존의 좌파적 주장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대선 1호 공약도 AI(인공지능) 정책이었다. 전략 물자인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5만개 비축하고,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하며, 1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국가 주도 AI’ 비전을 내놓았다. 과거처럼 세금 뿌리기가 아니라 교육·제도·금융 같은 인프라 조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전형적인 우파식 처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성장을 막는 주 52시간 과잉 규제나 노란봉투법, 중대재해법, 노동 개혁 등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아무리 ‘잡스 코스프레’를 해도 DNA에 새겨진 좌파 본능을 숨길 수 없다는 뜻이다. 이 후보로선 중도·보수의 영역까지 점령해 대선 승리를 굳히려는 전략이겠지만, 결국 문제는 진정성이다. 그동안 그는 이쪽에선 이 말, 저쪽에선 저 말 하며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곤 했다. 이 후보가 우클릭하면 할수록 ‘존경한다고 하니 진짜인 줄 알더라’던 그 유명한 어록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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