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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중국 간첩 99명 체포' 괴담과 언론

鶴山 徐 仁 2025. 3. 14. 15:26

오피니언 칼럼

[양상훈 칼럼] '중국 간첩 99명 체포' 괴담과 언론

사실 보도 언론은

백안시되고

사실로 위장한 거짓들은

대박을 터뜨린다

사실과 다른 길 갈 때

맞을 결과는 명백해

언론의 사명과 숙명을

다시 생각한다

양상훈 기자

입력 2025.03.13. 00:15업데이트 2025.03.13. 09:06


지난 1월 어느 자리에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선관위 선거연수원에서 중국 간첩 99명을 체포해 주일 미군 기지로 압송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전문직에 계신 분이었다. 그분께 뉴스의 출처를 물었더니 무슨 유튜브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새 진짜 뉴스는 신문·방송에 안 나오고 유튜브에 나온다”고 덧붙였다. 그 ‘뉴스’가 너무 놀라워서 ‘그 유튜브에서 사실 확인 과정을 밝히고 있느냐’고 했더니 그분은 “그 유튜브를 하는 사람은 정의롭고 옳은 말만 하기 때문에 다 사실일 것”이라고 했다.

그 유튜브를 보니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어떤 매체의 기사를 그대로 옮기면서 자신의 추측을 덧붙여 자극적으로 선동하고 있었다. 초보적인 사실 확인 과정도 없었다. 주한 미군은 물론, 미 국방부와 우리 국방부 모두가 허위라고 공표했지만 이 밑도 끝도 없는 ‘중국인 99명 체포설’은 마치 ‘은폐된 진실’인 양 퍼져나갔다.

그 후 필자는 이 괴담을 사실로 믿고 있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이름을 들으면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사람들도 있다. 이분들은 ‘관계 당국이 모두 허위라고 발표했고, 조선일보 취재진의 현장 사실 확인에서도 아무런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필자 설명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상당수는 필자의 설명을 믿지 않는 듯했다.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최근 KBS ‘추적 60분’이 언론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보도를 했다. KBS는 계엄 사태 직후 선관위 관련 인터넷 댓글들이 이리저리 짜깁기 돼 ‘중국 해커부대 90명 체포’라는 소설로 만들어지고, 한 매체가 이를 첫 보도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뭔가 ‘꺼리’를 찾고 있던 유튜버들과 정치인들이 확성기 역할을 시작했다. 이들 중 아무도 사실 여부를 알아보려 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았다. 광우병, 천안함, 세월호, 사드 전자파, 후쿠시마 등 모두가 비슷했다.

그러자 스스로 미 CIA ‘블랙 요원’ 마이클 피터스 대위라고 주장하는 안모씨가 그 매체에 자신이 ‘중국인 99명 체포에 관여했다’고 ‘제보’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다니는 안씨는 중국 대사관에 진입하려다 최근 구속됐다. 조사 결과 그는 한국군 병장 출신으로 미국에는 가 본 적도 없었다.

구속 전 안씨는 KBS에 나와 매체 관계자와의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이 매체는 안씨와 연락하며 ‘국내 체포 중국 간첩 99명 한·미 부정선거 개입’ ‘중국 부정선거 간첩단 일부 미 본토 압송’ ‘미 압송 중국 간첩, 한국 실업급여 받았다’ ‘하나님이 한국에 (중국인 체포) 영웅을 보냈다’는 등 허무맹랑한 기사를 ‘특종’이라며 계속 내보냈다. 결국 안씨는 KBS에 자신이 “다 속인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도 그 매체의 송년회에 전직 국무총리가 나와 “지금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언론”이라고 칭송했다. 이 매체 대표는 “우리가 옳았고, 우리가 이겼다”고 했다. 헌재에서 대통령 측 변호인이 ‘중국인 99명 체포’를 확인하기 위해 계엄을 했다고 변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안씨는 사람들을 속인 이유에 대해 탄핵 반대 세력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 양분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려 한다. 이런 사회에서 ‘불편한 사실’은 분노를 주고, ‘솔깃한 거짓’은 희망을 준다. 사실을 검증하고 보도하는 언론은 백안시되고, 거짓과 과장으로 선동하는 유튜브는 인기를 끈다.

많은 사람이 필자에게도 유튜브식 ‘희망’을 구하고자 한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이 너무 큰 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들께 “조선일보가 결과적으로 누구의 편을 들거나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문은 사실을 확인하고 전달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분들 상당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필자는 2020년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때 ‘사실(fact)만을 붙들고 독자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지금도 조선일보 기자 수백 명이 매일 찾으러 다니는 것, 왜 찾아다니느냐고 욕먹는 것, 찾아내 보니 대중의 요구와 달라 증오를 사는 그것은 사실(事實)이라는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사실을 찾는 언론이 ‘사실로 위장한 거짓’과 싸우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거짓이 더 그럴듯해지고, 더 대담해지고 있고, 거짓이라도 믿고 싶어 하는 군중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매체는 신문윤리위에서 중징계를 받았지만 정정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탄핵 반대층에 인기를 끌며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무리 홀대받고 무시당해도 결국 역사와 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과 다른 길을 가는 나라나 집단이 맞을 결과는 명백하다. 조선일보 105년은 한마디로 ‘사실을 찾다가 성공하고 실패한 기록’이다. 사실을 찾는 일엔 보상도 없기 때문에 언론이 없으면 사실도 없다. 언론의 사명이자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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