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 저성장이 우리 실력"이라는 암울한 고백
조선일보
입력 2025.02.27. 00:25업데이트 2025.02.27. 06:59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대폭 내린 뒤,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도 1.8%로, 2년 연속 1%대 저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용 총재는 “그게 현재 우리의 실력”이라고 했다. “그동안 구조 조정도 하지 않고, 새 성장 동력이 될 만한 산업도 키우지 않은 채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이란 것이다.
고착화된 저성장은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이루지 못한 채 있는 것만 까먹고 있는 한국 경제의 병(病) 때문이다. 중국의 공세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는데도 구조 조정을 미루는 바람에 조선, 해운업이 위기를 겪은 데이어 최근엔 철강·석유화학이 곤경에 처해 있다. 이런 산업이 앞으로 줄을 이을 것이다.
뼈를 깎는 구조 조정 대신 각종 금융 지원으로 연명시켜준 탓에 상장 기업의 3분의 1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 상태다.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PF)에 대한 정리 작업을 계속 미루면서 건설 산업도 기약 없는 늪에 빠져 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블록체인 등 디지털 혁신에 기반한 신산업은 기득권 이익 집단의 저항과 이들에게 영합하는 정치권의 규제 탓에 태동 단계부터 부진하다. 세계 100여 국이 하는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 영업이 한국에선 금지됐다. 이를 우회하는 사업 모델로 개발된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는 회원 170만명을 넘어설 만큼 호평을 받았지만 택시 업계가 반발하자 정치권이 금지법을 만들어 사업을 원천 봉쇄했다.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보편화된 원격 의료가 한국에선 의사 단체의 저항에 발목이 잡혔다. 변호사와 사건 의뢰인을 인터넷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는 변호사 단체가 숨통을 죄고 있다. 반값 부동산 수수료를 앞세운 부동산 중개 플랫폼도 공인중개사 단체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반도체 연구 주 52시간 예외는 노조에 막혔다.
정치권은 이해 관계자 간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를 통해 혁신 산업의 돌파구를 열어줘야 한다. 그게 정치의 할 일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은 어느 쪽에 표가 많은 지만 따진다. 혁신이 발붙일 수 없는 나라다. 그 결과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사업 모델 중 57개가 한국에선 아예 창업이 불가능한 황당한 규제 환경을 갖기에 이르렀다. 산업의 역사는 혁신 역주행이 소비자 피해로 돌아오고,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걸 보여준다. 1%대 저성장은 환자가 약 대신 설탕물을 먹은 우리의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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