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첩 혐의자 100명 적발하고도 수사 못했다니
조선일보
입력 2024.09.19. 00:25
'창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2023년 1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국가정보원이 2년 전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등 3개 간첩단 사건을 수사하면서 북한과 연계된 혐의자 100여 명을 포착하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이 올 1월부터 시행된다는 것을 감안해 2022년 11월 당시 명백한 증거가 있는 피의자만 수사해 11명을 기소하고, 내사 단계인 100여 명은 수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전직 국정원 간부는 “2~3년의 내사 기간만 더 있었으면 간첩단 조직 실체를 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공 수사권이 이관되는 바람에 간첩단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국정원이 혐의자 100여 명의 명단을 경찰에도 넘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안보수사단을 신설해 대공 수사 조직을 만들었지만, 국정원은 경험이 부족한 경찰의 수사력으로는 간첩단 수사를 감당하기 어렵고 보안 유지도 어렵다고 판단해 명단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100여 명은 간첩단과 자주 접촉하고 북에 포섭 대상으로 보고된 인물들이다. 그런 간첩 혐의자들이 지금 아무 감시도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막힌 상황을 만든 것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다. 문 정권은 2020년 12월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세계 각국이 정보기관 권한을 강화하는 속에서도 한국만 거꾸로 국정원의 핵심 기능을 무력화했다. 운동권 출신이 중심이 된 민주당 의원 11명은 안보 범죄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권까지 박탈하는 법안도 제출했다. 국정원의 대공 기능을 사실상 무장해제시키겠다는 것이다.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위협 받고 있는 나라가 이래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간첩 사건 수사 노하우와 해외 방첩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3개 간첩단 사건 피의자들과 북한 공작원의 접선은 주로 해외에서 이뤄졌고, 국정원의 수사는 7~8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런 수사가 가능했던 것은 국정원 수사관들이 오랜 기간 같은 자리에서 근무하며 쌓아온 전문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경찰은 아무리 수사 의지가 있어도 잦은 인사이동으로 장기간 수사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국정원법을 다시 개정해 하루라도 시급히 국정원의 수사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민주당 반대로 원상 회복이 어렵다면 국정원과 경찰의 대공 수사 인력을 합쳐 별도의 안보수사청을 만드는 방안이라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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