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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독일에서 본 한국의 명암

鶴山 徐 仁 2024. 3. 2. 09:53

오피니언 특파원 칼럼

[특파원 리포트] 독일에서 본 한국의 명암

베를린=최아리 특파원


 

 

입력 2024.03.02. 03:00

독일에 처음 도착하고 느낀 것은 달라진 한국의 위상이었다. 1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왔을 때만 해도 “일본에서 왔느냐? 중국에서 왔느냐?”는 말이 먼저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묻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길거리에서 “한국인이냐?”며 “한국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먼저 물어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요즘은 함부로 한국어 욕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 나쁜 표현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에서 한국 친구와 얘기하면 종업원이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 인사를 하거나, 마트 직원이 한국 사람인 걸 알아보고 “(드라마) 도깨비를 좋아한다”며 한국 배우를 바탕화면으로 한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축구는 잘 안 본다는 프랑스 친구도 “너네 나라에는 ‘손(손흥민)’이 있잖아”라고 하고, 아시아 마트에서 장을 보다 “김치찌개를 하려는데 이 재료가 맞느냐”고 물어오는 학생들도 만났다. BTS, 블랙핑크 등 한국 가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기자는 미처 몰랐던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의 이름을 줄줄 대는 외국 친구들도 있다. 나는 한 게 없는 데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떨떨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이와 다르게 독일에서 한국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민을 결심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을 둔 40대 부부는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 찌드는 게 싫어 독일을 택했다. 학교에서 다양한 스포츠와 공연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아 기쁘다고 했다. 한 30대 회사원은 합리적인 ‘워라밸’을 찾아 독일로 왔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일을 더하려 하자 “네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상사에 놀랐다. 연차와 병가를 눈치를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것도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노후 안정이 보장되지 않아, 직장 생활의 감정 노동에 지쳐, 비교하는 문화가 싫어 등 각자 한국을 떠나온 이유를 얘기하다 보면 공감대가 쌓여 금방 성토의 장이 됐다. 타향살이가 쉽지 않지만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이유들이다.

모두에게 내가 살 나라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자유롭게 주어진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때 한국은 얼마나 경쟁력 있는 나라일까. 어떤 이들에게 한국은 동경의 대상이지만, 선뜻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을 떠나온 이들이 말하는 이유가 하나하나 공감돼기 때문이다. 합계출산율 ‘0.65명’이라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이를 해결할 제도와 정책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지금,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권력 싸움에 몰두한 이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