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건국 때처럼 요동치는 한반도…닮은꼴 정세가 이승만 재소환
중앙일보
입력 2024.02.20 00:11 업데이트 2024.02.20 01:21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예상 밖의 흥행 몰이 중이다. 사진은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 자동차 행진을 하는 장면으로 영화에도 담겼다. [사진 김덕영]
70만 관객을 돌파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흥행을 ‘586세대의 이승만 찾기’로 정의하고 싶다. 주로 비판만 받았던 이승만이 2000년대 들어 유영익 교수 등에 의해 재인식됐다면, 이번에는 586세대인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으로 재정의되며 다큐 관람 열풍으로 이어졌다. 관객 역시 50~60대가 주를 이룬다.
586세대의 이승만 찾기
작품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승만의 업적을 조명했다. 이승만 정부가 수행한 농지개혁의 의의를 세계사와 비교해 설명한 부분이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성과, 세계적으로도 매우 앞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사실, 제1공화국 시기의 교육 열풍이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됐다고 평가한 것 등이다.
특히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토지개혁으로 평가 받는다. 지니계수가 0에 가까우면 평등, 1에 가까우면 불평등하다는 뜻인데, 1960년 한국의 토지 분배 지니계수는 0.3 수준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토지 분배가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였다. 세계은행의 『세계경제발전 보고서』(2006)는 세계적으로 토지 분배가 상당히 평등했던 한국·대만·일본이 높은 장기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대만·일본보다 지니계수가 낮은 것은 물론 공산국가인 중국보다도 낮았다. 이는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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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다르거나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은 옥의 티로 느껴졌다. 다큐가 지적한 대로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한강인도교 폭파 당시 수백명이 폭사·익사했다는 주장과, 당시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음성이 계속 방송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인도교 폭파 시기가 적절했는가 여부와, 이승만 정부가 전쟁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수많은 국민들이 피난가지 못하고 납북되거나 북한군 치하에서 신음했다는 점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승만 정부에게 무조건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말이다.
지난 12일 서울 시내 영화관 매표기에서 관객이 영화 포스터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3·15 부정선거에 관한 묘사에서도 맹점이 드러난다. 선거 부정의 범위를 부통령 선거 과정으로 한정하고 이승만은 대통령 선거 출마자이자 단독 후보였다는 이유로 면책 논리를 구성하는데, 국정 최고 통치자인 이승만에게 선거 부정에 대한 잘못과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또 이승만 단독 주연이라는 설정에 충실하다 보니 국가 건설의 조연들이 등장하지 않거나 평가절하됐다.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고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키며 이승만을 형님으로 모신 김구는 차치하더라도, 김규식의 경우 그가 대한민국의 탄생을 긍정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여러 자료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도 부정적으로만 묘사한 것은 시간 제약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이승만 열풍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승만의 시대와 현 시대의 유사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승만 시대를 ‘시대 전환기’로 규정할 수 있는데, 현재의 우리 또한 유사한 성격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수백 년 걸린 근대화 여정을 한국 사회는 불과 수십 년의 여정, 즉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이어지는 압축적 근대라는 형태로 경험했고, 이에 우리 사회는 전근대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 충돌하고 공존하는 장이 됐다.
구한말에 태어나 근대 국가를 세우고 지도자가 된 이승만은 그런 다중적 시간을 최전선에서 통과한 인물이다. 이승만 내부에는 전통과 근대,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계몽주의와 유교적 가부장주의가 공존했고, 이는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체제도 마찬가지였다. 4·19 혁명의 발발은 이승만 개인의 문제나 잘못으로 국한되는 게 아닌, 우리 역사의 궤적에 내재한 모순의 폭발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탄핵’과 ‘정권 교체’를 기점으로 극심한 정치 변동을 경험했다. 진보·보수 모두 전 근대적 요소들과 공존하는 현 상황을 많은 이들이 개탄하고 있다. 국제정치적으로도 ‘시대 전환기’인 것은 이승만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투는 G2 시대에 살고 있고, 패권의 향방에 따라 서로 다른 문명권을 수용하고 또 편승해야 하는 시대를 살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있다.
객관적 평가는 MZ세대의 몫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 시대가 이승만의 시대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근대 국가를 완성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근대 국가 건설을 시작한 이승만과 그의 시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이 이를 느끼고 있고, 이런 정서가 진원지가 돼 보수와 노년층을 중심으로 이승만 열풍이 강하게 일고 있는 건 아닐까.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중 참변(거창 양민학살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의 희생자와 후손들이 존재하기에 이승만 평가에 대한 감정적 저항이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지금부터 시작된 것이며, 모든 은원(恩怨)과 이해관계를 초월한 후손들인 MZ세대에 의해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과 그의 시대가 역사의 화석으로 남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시대 전환기’ 속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채 휩쓸려가고, 진정한 근대로 완전히 진입하지 못하는 한 이승만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재소환될 것이다.
이택선
☞이택선=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대학원에서 해방전후 한국정치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우남 이승만 평전: 카리스마의 탄생』(2021), 『죽산 조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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