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계 미국인 에스티 로더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를 만들었다. 로더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향수가 일부 부유층에서만 사용하던 사치품이었다. 그래서 1950년대 미국에서는 향수는 직접 사는 것이 아니라 선물 받는 개념이 지배적이었고 나만의 향수라는 개념도 없었다. 로더는 ‘청춘의 이슬’이라는 저가 향수를 출시해 향수가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언제든지 필요한 여성 필수품이라고 소개했다. 로더의 성공으로 향수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시장을 바라보는 선견지명과 거기에 맞는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이 향수 산업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로더와 같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이스라엘 스타트업 업계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이 같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정신을 ‘비추이즘(Bitzu’ism)’이라고 부른다. 비추이즘은 ‘어떤 일이든 이루고 말겠다는 이스라엘식 실용주의’를 뜻한다. 이스라엘이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국가이다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는 기본적으로 비추이즘이 녹아 있다. 이 비추이즘이 이스라엘을 인구당 스타트업 수 1위인 창업 국가로 만드는 원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
비추이즘 정신으로 탄생한 스타트업의 대표적 사례로 스토어닷이 있다. 이 회사는 실리콘 음극재 소재를 활용한 셀 수백 개를 모아 5분만 충전해도 종일 달릴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를 제조하는 회사다. 201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재료공학 연구진이 창업했다. 2013년 삼성벤처스가 초기 단계 투자에 참여하면서 국내에 알려지기도 했다. 전기차의 치명적 약점인 충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는 점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다임러AG, 메르세데스벤츠그룹 등이 투자에 참여했다. 스토어닷은 전 세계 15개 자동차 회사와 테스트를 통해 배터리를 전기차에 적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량 생산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2024년까지 실리콘 기반의 배터리를 5분 이내, 2028년까지 반고형 배터리를 3분 이내, 2032년까지 포스트 리튬 배터리를 2분 내 충전하는 로드맵을 세우고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비추이즘은 ‘역발상’을 통한 창업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중 부동산 관리 플랫폼 게스티가 대표적으로 역발상을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든 케이스다. 게스티는 2013년 권위 있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Y콤비네이터’ 졸업생인 쌍둥이 형제 아미아드 소토와 코비 소토에 의해 설립됐다. 숙박 공유 서비스 기업 에어비앤비가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많은 국가에서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갖고 시장에 진출한 스타트업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게스티는 이런 숙박 공유 서비스 기업이 늘자 역으로 부동산 소유주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선보였다. 부동산 관리자가 단기 임대 운영을 쉽게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부동산 관리 모델이다. 독특한 사업 모델 덕분에 창업 이후 2022년 8월까지 총 6번의 투자를 통해 약 350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런 역발상의 힘은 국토의 70%가 사막인 이스라엘을 농업 강국으로 만들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정부가 세워지기 전 1920년부터 연구소를 설립해 농업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더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씨앗을 개발하다가 탄생한 것이 지금은 세계적인 품종이 된 방울토마토다. 이스라엘은 늘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 재활용 기술 개발에 몰두해왔다. 한 번 사용된 물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기존 생산량의 약 50%에 가까운 작물을 더 키울 수 있었고,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물을 주는 ‘점적관수’를 통해 70%의 용수를 절약할 수 있었다. 정보기술(IT)로 농업을 혁신하는 ‘애그테크’는 이스라엘이 강점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 분야 중 하나다. 수확 최적화, 관계 시설 개선, 해충 방지, 대체 식품 등의 영역으로 세분되는 애그테크 분야에는 6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세계 진출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이처럼 혁신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의 기본 정신에 비추이즘이 녹아 있다. 기존의 안락함에 머물기보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택하는 기업가정신과 통하는 면이 크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70호에 실린 ‘안락함 대신 모험 택하는 ‘비추이즘’의 힘’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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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백민 상명대 지능·데이터융합학부 조교수 bmchun@smu.ac.kr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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