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동아시론/서균렬]우리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06-03 03:00업데이트 2023-06-03 03:00
23년 전 무기급 우라늄 농축 성공, 기술력 높아
단기 핵무장 가능하나 경제·외교 부담 살펴야
日처럼 핵 개발 잠재력은 끌어올려 놔야 한다
국제법 질서는 상호주의에 따라 ‘핵에는 핵’이 답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의 격언은 3차 세계대전 억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배경엔 ‘상호확증파괴’ 전략이 있었다. 압도적 군비 증강을 통해 상대국에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전쟁을 예방한다는 개념이다. 북한의 핵 위협에 “서울을 치면 평양도 사라진다”고 새겨줘야 감히 남침하지 못할 것이다. 양측의 힘이 비등하지 않는 한 평화는 춘몽이다.
한국과 같이 북핵 위협에 놓인 일본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일본은 현재 핵탄두 6000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50t을 이미 추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핵국가 중 보유량이 최대 규모이고, 기술력도 최고 수준이다. 동북아에 핵무장 경쟁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플루토늄도 추출하고 우라늄도 농축해야 하지만, 일본은 그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 1994년 영변 핵위기 당시 일본 구마가이 히로시 관방장관은 “기술적으로는 3개월이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이 고도화되면서 독자 핵무장도 공론화되고 있다. 국내 핵 보유 지지 여론은 지난 10년간 60∼70%대로 유지돼 왔는데, 최근 77%까지 올랐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 워싱턴 방문 때 “대한민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 1년 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는 핵 보유에 따른 비용 대비 이익, 위험 대비 기회 등에 대해서도 숙의해야 할 때다. 핵 보유 지지 여론은 높지만 핵 보유에 따른 정치적 부담과 외교적 책임에 대한 논의도 점화해야 할 것이다.
그럼 우리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앞서 2000년 원자력연구소 레이저연구팀은 특수금속에 이어 우라늄 농축을 실험했다. 첫 실험에서는 농축도가 12%였지만 추가 실험에서 농축도가 77∼90%로 올라 무기급 수준을 달성했다. 당시 농축 우라늄의 양은 0.2g에 지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시간과 재원만 확보하면 핵무기를 양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당시 실험 장비는 우리 기술로 직접 제작한 것이어서 우라늄 농축 성공에 버금가는 성과였다. 아쉽게도 당시 실험 장비는 모두 해체됐지만, 기술과 자료는 남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재정적 역량이 충분한 국가다.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레이저 우라늄 농축 기술은 세계가 괄목할 경지에 있다. 또한 핵 개발을 위한 고폭, 기폭, 유도장치 등 기술을 상당 수준 보유하고 있으며, 플루토늄탄의 경우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상실험을 통해 핵실험을 대체할 수 있다. 우라늄탄은 핵실험이 아예 필요 없다. 국내에 있는 사용후핵연료에는 플루토늄이 있으며 순도를 높인다면 핵무기로 사용 가능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핵위협으로 5대 핵보유국(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에 의한 국제안보 체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북한의 핵 법령화와 지속적인 핵보유국 선포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북핵은 이미 상당 기술을 확보했다. 북한은 기술적으로 볼 때 핵실험을 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이미 소형화, 경량화를 마치고 50기 넘게 실전 배치량을 늘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해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북핵 위기를 결코 미래 세대에 물려줘선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핵무기 생산의 소요 기간과 비용, 필요 인력과 유관 기관 등을 사전에 적확하게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한국이 핵무장을 결정했을 경우 예상되는 국제사회의 반응, 국민이 감내해야 할 경제 사회 심리적 부담, NPT와 한미 군사동맹 등 외교 군사 안보적 현안 등도 엄정히 중립적으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확장억제의 전략이냐, 확증파괴의 균형이냐. 미국 핵 자산만 바라다볼 게 아니라 한국 자구책도 더불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편승하다가는 뉴욕을 구하러 서울을 떠나는 미군을 보면서 만시지탄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유사시에 대비해 최소한 일본만큼은 핵 개발 잠재력을 끌어올려 놔야 할 것이다.
동아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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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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