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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발표날, BTS 틀었다…자타공노 대가’ 현택환

鶴山 徐 仁 2023. 2. 18. 08:41

 

 

0.1%를 만나다Leader & Reader 0.1%를 만나다노벨상 발표날, BTS 틀었다…자타공인 ‘나노 대가’ 현택환

 

노벨상 발표날, BTS 틀었다…자타공노 대가’ 현택환

노벨상 발표날, BTS 틀었다…자타공노 대

  •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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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남윤서


 

0.1% ‘월클’ 박사들의 특강
학문의 세계에도 ‘월드 클래스’가 있습니다. 축구계의 ‘월클’ 손흥민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학계에서 ‘엄지척’을 망설이지 않는 연구자들이죠.
일반인에겐 생소한 글로벌 학술정보 기관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가 매년 발표하는 HCR(Highly Cited Researchers)이 대표적입니다. HCR은 다른 연구자들에게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상위 1%를 쓴 학자나 연구원을 말합니다. 그의 업적을 인용하지 않고서는 그 분야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설명하기 어려운 대가들이죠.
매년 6000여 명이 선정되는데 이는 세계의 연구자 1000명당 한 명꼴입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이면서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하는 상위 0.1%입니다. 이 중 한국인은 약 50명. 중앙일보 남윤서 교육팀장이 그 ‘월클’들을 만나 첨단 과학의 현재와 미래, 남다른 연구 열정을 들어봤습니다.

 

NOT TODAY, BUT…

2020년 10월의 어느 날, 서울대의 한 강의실에서 그룹 BTS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 제목은 ‘NOT TODAY’, 노래를 튼 사람은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였다. 그해 내외신 보도에서 노벨 화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 현 교수가 노벨상 발표 직전 강의실 주변에 대기한 수많은 기자와 수강생들에게 “오늘은 아니야”라는 답변을 BTS의 노래로 대신한 것이다. 노벨 화학상은 프랑스와 미국의 학자에게 돌아갔다.

현 교수가 ‘오늘은 내 차례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언젠가 올 수 있다’라는 완곡어법이기도 하다. 그는 여전히 세계 학계가 꼽는 한국인 첫 노벨 화학상 수상 후보감이다. 나노 연구 분야에서만큼은 스스로 ‘정상급’도 아닌 ‘정상’이라고 말하는 그다. ‘0.1%를 만나다’ 첫 번째 주인공이 된 것도 현 교수가 자타공인 최고의 나노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관악산 중턱 서울대 302동에 있는 연구실에 들어서자 여러 대의 컴퓨터 모니터 사이로 현 교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에 하이톤의 목소리는 당대 석학을 만난다는 기자의 부담감을 덜어줬다.

보라색 금

그를 정상에 올려놓은 건 나노다. 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미터의 아주 작은 단위다. 나노(nanos)라는 말도 고대 그리스어의 ‘난쟁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물질을 작게 쪼개고 쪼개서 나노의 세계로 들어가면 눈으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고 현 교수는 말했다. 그래도 멍한 표정의 기자에게 현 교수는 작은 병에 담긴 보라색 액체를 보여줬다.

현택환 교수가 나노미터 단위로 만든 금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포도주스처럼 보랏빛이 나는 액체다. 장진영 기자

 

“포도 주스나 와인 같죠? 그런데 이게 금이에요. 금을 10나노미터 정도로 만들어놓은 겁니다. 나노 크기가 되면 우리가 보던 것과 색도 다르고 물성도 완전히 달라져요. 일단 그게 재미있는 점이에요. 모든 과학은 재미있는 것에서 출발해요.” 석학의 친절한 예시가 문외한에게도 관심을 살짝 불러일으켰다.

‘나노’라는 구원투수

작게 만드는 게 왜 중요합니까.

“나노는 역사가 아주 짧은, 젊은 학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연구한 게 25년, 길게 잡아도 30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한마디로 ‘도우미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라면 칩 사이즈가 점점 줄어들어야 같은 면적에 넣을 수 있는 게 더 많아지거든요. 그러다 보면 한계가 와서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어요. 그때 나노가 구원투수로 들어가 한계를 돌파하는 겁니다.”

현 교수에 따르면 휴대전화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도 나노기술이 적용된다. 휴대전화의 수많은 소자를 구성하는 재료를 아주 작게 쪼개면 기존에 갖고 있던 성질의 한계를 돌파하고 완전히 새로운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성과, 최고의 작품은 뭔가요.

“QLED TV의 바탕이 된 기술이죠. 쉽게 말하자면, 반도체를 나노입자로 만들어 자외선을 쬐면 형광 빛깔이 나오거든요. 아까 보여드린 보라색 금처럼 전혀 다른 색이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입자 크기에 따라 나오는 색이 달라요. 50나노미터 정도로 만들면 빨간색이 나오고 35나노미터로 만들면 녹색이 나오는 식이죠. 결국 입자 크기가 색을 결정하는데, 여러 사이즈가 섞여 있으면 선명하지 않고 흐리멍덩한 색이 나오겠죠. 완전히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입자 크기가 똑같아야 해요.”

같은 크기 입자를 만드는 게 어려운가요.

“이전까지는 여러 크기가 섞인 혼합물을 만들고 그중에 필요한 크기를 골라내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2001년에 처음으로 같은 크기 나노입자를 단번에 판으로 찍어내듯 만드는 기술을 발표했어요.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 학계에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죠. 이 논문이 저의 가장 중요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엔 더 값싸고, 안전하고,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을 발표했고요.”

균일한 나노입자를 만들어내는 그의 논문 2편은 5000회 넘게 다른 학자들에게 인용됐다. 그야말로 ‘원천기술’이기 때문에 나노입자를 만드는 어떤 연구도 그의 연구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삼성의 QLED TV 개발에 현 교수가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원천기술에서 출발한 셈이다. 학계에서는 나노기술의 20여 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의 하나로 ‘퀀텀닷(균일한 나노입자)’을 꼽는다. 현 교수가 노벨상 후보로 꾸준히 언급되는 이유다.

“뭔가 다른 것을 하라”

현택환 교수의 핵심 연구 성과로 꼽히는 논문들. 장진영 기자

 

어떻게 선두에 설 수 있었습니까.

“If you wanna be somebody, you have to do something different. 계속 새로운 것을 고민하는 겁니다. 사실 서울대 교수가 되고 나서 처음 10년간은 쉬웠어요.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의 등을 보고 쫓아가면 됐거든요. 그런데 선두가 되니 아무도 없고 사람들이 저만 쳐다보고 있어요. 손흥민이 지난해 골든부츠(득점왕)를 차지했는데, 앞으로 더 힘들 겁니다. 정말 힘든 건 계속 1등을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힘들어도 재미가 있어요.”

뭔가 다른 것(Something different)은 어디서 찾습니까.

“어린아이처럼 계속 묻는 겁니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캐내는 작업이 과학자에겐 전부다’라고 얘기해요.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읽어야 해요. 저는 남들의 논문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게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 있는 카톡에 올려요. 같이 생각해보자. 아이디어를 내고 질문을 던져봐라. 귀가 닳도록 얘기하죠. 아이디어 내는 작업을 멈추면 내 연구 인생도 끝나는 거예요.”

논문 읽고 연구하는 것 외에 다른 생활은.

“제 삶은 매우 단순해요. 뭔가 큰일을 하고 싶다면 삶이 단순해야 해요. 테니스를 좋아해 테니스장 아니면 연구실에 있어요. 하루에 10~20분 행정적인 업무를 보고, 나머지 시간은 논문을 읽거나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인터뷰 마치면 논문 3편을 검토해야 돼요.”

현 교수의 표정은 ‘할 일이 쌓인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렇게 연구가 재미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정말 재미있어요. 안 재미있으면 이거 못 해요”라고 답했다.

지난 2021년 8월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를 인터뷰한 영국왕립화학회는 현 교수를 테니스 선수처럼 묘사한 그림을 기사와 함께 게재했다. 홈페이지 캡쳐

 

“천재는 아닌데, 독특했다”

어려서부터 천재였습니까.

“천재는 아니에요. 좀 독특한 건 분명해요. 항상 들떠있거든요. 늘 약간은 흥분되고 각성된 상태라 커피도 마시지 않아요. 너무 들떠서 집중이 잘 안 되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 밖에 특이하다 할 만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제 커리어를 정했다는 것일까요. 과학자가 되겠다고. 그때 시골 학교에 다니다 우연히 군내 과학 경연대회에 나가 은상을 받았는데 ‘나는 과학에 소질이 있구나’ 생각한 거예요. 순진했죠.”

어린 시절 장래희망이 쭉 이어졌네요.

“고등학교 와서 과학을 배우는데, 화학이 좋더라고요. 물리는 너무 어렵고, 생물은 외울 게 많아서. 화학은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느낌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과학자가 되겠다, 고등학교 때 화학자가 되겠다 생각했는데 결국 화학자가 돼서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죠.”

현택환 서울대학교 석좌교수.2016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했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권혁재 기자

 

대학교 입시는 어땠습니까.

“목표가 명확했으니 입시는 오히려 쉬웠어요. 고등학교 때 대구·경북 전체 2등까지 했었어요. 그때도 주변에서 공부 잘하면 의대를 가라고 했는데, 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대구 시립도서관에서 문 닫힐 때까지 공부하고 집에 가면 무조건 7시간을 잤어요. 지금도 밤샘 연구는 하지 않아요. 무조건 7시간은 자야 해요.”

대구시 달성군의 농가 출신 소년은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현 교수는 대입 학력고사를 망쳤다고 했지만, 넉넉하게 합격했다). 대학 2학년 때는 수강생 절반 이상이 0점을 받는다는 응용수학 과목에서 100점을 받아 교내에 작은 전설을 남겼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화학 전공으로 박사가 된 그는 서울대 공대 교수가 됐다.

자연과학대가 아니라 공대 교수가 된 계기는.

“제가 가장 잘한 일이 공대 교수가 된 겁니다. 당시만 해도 자연과학과 공학 사이 벽이 굉장히 높았어요. 공과대학에서 보기에 저는 완전히 ‘듣보잡’이었거든요. 바깥에서 굴러온 돌이죠. 그런데 그때 공대에 계시던 분들이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필요하다고 보고 저를 뽑아준 거죠. 공대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하나님 은혜다 싶어요.”

신을 믿는 과학자

현택환 교수가 연구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장진영 기자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대화 중에 종종 ‘하나님 덕분’ ‘하나님 섭리’ 등의 말을 했다. 자연스레 종교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과학자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객관적으로 나노 분야에서 세계적 거장이죠. 그런데도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굉장히 한정돼 있어요. 연구할수록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데 창조자가 계시고 지금도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나면 나머지는 쉬워집니다.”

창조냐 진화냐, 과학자의 딜레마가 있지 않나요.

“세계적 유전학자인 프랜시스 콜린스는 DNA 연구의 최고 거장으로 노벨상 후보입니다만 신앙을 갖고 있죠. 저도 과학자로서 고민이 있지만, 함부로 재단하기는 어려워요. 콜린스 같은 분들을 보면서 과학을 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하고 극단적이지 않은 건전한 신앙을 가지려고 할 뿐이죠.”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주역인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국립보건원 선임연구원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양립이 가능하다고 보는 과학자다.)

기초와 인간관계

어릴 때부터 공부에 매진하는 한국 학생과 학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식들 공부 잘하는 거야 누구나 바라죠. 결국 나중에는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어떤 공부를 하든 기초를 튼튼하게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좋은 성과는 협력(Collaboration)에서 나오더군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고 좋은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아직 풀지 못한, 더 풀고 싶은 문제가 뭔지 물었다. 역시나 여전히 뭔가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현 교수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질병 중에 아직도 약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노 기술을 이용해 세상에 없는 치료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치료제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신명나게 설명했지만, 비전공자인 기자에겐 점점 외계어로 다가왔다. 기사로 옮기기 힘든 설명을 마친 그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런 걸 개발하는 게 참 너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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