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오피니언
[선데이 칼럼] ‘가짜’ 방치하면 사회 썩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12.17
오늘날 세상은 새로운 중세로 되어 가는 듯하다. 진실이 권력의 박해 대상이 되고, 사실을 말하는 이들이 마녀사냥의 희생자로 전락하는 중이다. 『권력은 어떻게 현실을 조작하는가』(북하우스)에서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레사는 말했다. “우리는 사실 없이 진실을 알 수 없고 진실 없이 신뢰할 수 없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공유하는 현실도 없고,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 모든 의미 있는 노력은 끝장나고 만다.”
주관적 믿음보다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고 상호 비판과 교차 검증에 바탕을 둔 ‘지식의 헌법’을 창출한 일은 근대의 위대한 성취였다. 이로써 인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기꺼이 이를 받아들여서 더 나은 진실을 향해 갈 수 있었다. 권력의 방해도, 이념의 왜곡도 결국 과학 탐구나 비판 언론이 제시하는 사실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변했다.
진실보다 탈진실에 끌리는 시대 잘못된 정보 바로잡지 않으면 오류가 사회에 빠르게 퍼져나가 ‘가짜’ 물리치려면 더 부지런해져야 |
선데이 칼럼
소셜 미디어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증거보다 감정에, 사실보다 대안적 사실에, 진실보다 탈진실에 더욱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듯하다. 2008년 클레이 셔키 뉴욕대 교수는 “소셜 미디어가 확산되면 ‘선출판 후여과’ 방식만이 유일하게 현실성 있는 시스템이 된다”라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했으나, 실제로 여과는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같은 SNS 업체들은 오히려 알고리즘을 조정해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끼리만 서로 어울리게 함으로써 사회 곳곳에 장벽을 세우고 사람들을 ‘메아리방’에 가두었다. 진실의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그들은 지식의 헌법을 무력화하고, 가짜 정보의 확산을 부추겼으며, 집단 갈등을 심화시켜 사회를 갈가리 찢기게 했다.
책에서 레사는 특히 국가 권력과 소셜 미디어의 야합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멸 위기에 몰아넣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어떤 온라인 사회 관계망이 반복해 거짓을 공유하는지를 추적 관찰함으로써 필리핀 정부가 소셜 미디어에서 벌였던 정보 작전의 실체를 폭로했다.
레사는 말했다. “오늘날 우익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서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현실을 무너뜨린다.” 우리나라에도 국정원과 군대가 운영하는 댓글부대가 있었다. 권력자가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무시하며 이를 지적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릴 때 세상은 거짓의 지옥으로 변한다. 문제는 가짜 뉴스에 사로잡혀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는 점이다.
리 매킨타이어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원의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위즈덤하우스)에 따르면, 현실 부정의 뿌리는 ‘과학 부정’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처음 사회문제가 된 것은 1950년대이다. 돈에 눈이 먼 대형 담배회사들은 홍보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력화했다. 이들은 잘못된 정보들을 토대로 하면서도 성공적 여론몰이를 할 수 있는 수법을 그 후예들에게 제공했다. 이후, 과학 부정론자는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백신 효과를 의심하거나 기후변화 문제를 무력화할 때 줄곧 비슷한 수법을 악용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과학을 무시하며 가짜 진실을 좇아서 오류에 빠지는 사람들은 5가지 특징이 있다. 이들은 음모론에 집착하고, 자기주장에 맞는 증거만 선별해서 받아들이고, 가짜 전문가들에 의존하고, ‘백신이 100% 안전한가’와 같은 과학에 대한 불가능한 기대치를 주문하고, 비논리적 사고를 고수한다. 이들이 결코 무지하거나 비이성이어서가 아니다.
이들이 공부를 덜 해서 기후변화 같은 명백한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이들도 충분히 똑똑하다. 다만, 이들에겐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믿음과 주장을, 즉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증명할 때만 한정해서 지성을 사용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오류를 지적하면 분개하고, 타인의 사소한 잘못은 힘써 과장한다.
가짜 뉴스가 처음 퍼지려 할 때 이를 방지하는 데는 명확한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등 잘못된 신념에 깊이 사로잡힌 경우, 과학적 증거로 이들을 각성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매킨타이어는 현실 부정론자를 설득하려면 치밀한 논리보다 사적 신뢰의 구축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먼저라고 얘기한다. “증거가 제시되는 방식이,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대안 사실에 집착하면서 자기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과 대화하는 일은 무척 힘들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방치하고 이를 바로잡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오류가 빠르게 퍼져나가 사회 전체를 썩게 만든다. 히틀러의 잘못된 주장과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힘을 얻도록 내버려 둔 결과는 전쟁과 학살이었다.
얼마 전 만난 이슬아 작가는 나에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비극적 참사를 설명할 때는 절망을 말하면 안 돼요. 반드시 어른들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한다고 말해야 하죠. 사회에 대한 아이들의 기본 신뢰가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이죠. 아이들 앞에서 희망을 말하려면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 돼야겠구나, 하고 생각해요.” 가짜 진실을 무찌르고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우리는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Free Opin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朝鮮칼럼 The Column] 전체주의의 추락, 2022년의 세계사적 의의 (2) | 2022.12.19 |
---|---|
[스크랩]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0) | 2022.12.19 |
12년 만의 가동…신한울이 주는 교훈 (0) | 2022.12.16 |
[사설]법인세 인하, ‘이념’ 아닌 ‘국익’ 관점에서 보라 (0) | 2022.12.14 |
[사설]100대 기업 실적 ‘피크아웃’… 법인세 인하 서둘라 (0) | 2022.12.12 |